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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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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정결핍 Mar 07. 2024

남의 일기 2

일단은 재미있고 싶어

“어떤 제목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어.”


이런저런 글을 쓰고 싶다가도, 결국엔 그 글에 <주제>가 있어야 하고, <제목>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보면 결국 쓰지 않거나, 쓰다가 멈추곤 한다.


그래서 내 브런치에는 쓰다 만 ‘저장글’들이 많다.


좀 전에도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 쓰려다가 저장해 뒀다.

사실 그냥 떠다니는 마음과 생각으로 두면 가벼워질 일들이

기록으로 남겨두고 글로 쓰는 과정에서 <기정사실화> 될까 봐 두렵기도 해서,


아무튼 그 친구 얘기는 나중에 쓸 수 있으면 마저 쓰기로 하고,

생각나는 글을 써보겠다. 이건 ‘나의 일기’니까


오늘 아침부터 흐릿흐릿하더니 오후 카페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쯤 비가 내렸다.

1층에 내려와서야 그 사실을 알았지만 오히려 좋았다.

나는 좋은 날씨의 카페도 물론 좋지만,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카페는 1+1 같은 느낌이라 더 좋아한다.


창밖에 눈, 비 내리는 모습, 사람들이 우산 쓰고 급히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집에서 혼자 작업을 하다가 잘 풀리지 않거나 아니면 그냥 심심하거나 답답하면 집 근처 스타벅스를 간다.

아이패드, 그림 그릴 노트, 책 등을 챙겨 들고 자리 잡고 앉아있으면 그래도 ‘뭐라도 한다.’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는 다른 카페들에 비해서 ‘카공족’이 많기 때문이다.

콘센트가 있는 자리도 많아 자연스럽게 노트북 등을 갖고 와서 공부나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으면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맹모삼천지교’라고 하지 않던가. 나에게 스타벅스는 열정을 충전할 수 있는 장소다. 자매품으로는 교보문고가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었고 좋아했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내 그림을 보여주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SNS로 치면 포스팅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좋아요와 팔로워도 많았고.

자연스럽게 중 3 때까지 내 꿈은 만화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나는 맏이로 자라 유독 부모님께서 엄하게 키우셔서 그때의 나는 그 반대를 이길 힘이 없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께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하셨는데 그분의 삶이 아버지의 눈엔 녹록지 않아 보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친구분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극장 영화간판을 그리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그림 그리는 일 말고, 잘하는 ‘국어’ 쪽으로 더 공부를 해서 교사 혹은 강사를 하거나 공무원이 되기를 종용하셨다.

중 3 겨울방학 때쯤 그렇게 내 꿈은 사라졌다.


어찌어찌 그래도 엄마의 도움 덕분에 미술입시를 해서 미대를 들어가긴 했다.

대부분의 ‘그림 좋아하다가 입시를 하면서 그림의 재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러했다.


인스타에 그림을 올리면서부터 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업로드하기 직전까지 대충 반응을 예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꼭, 그림이 아니라 내가 내놓는 모든 작업물들에 대해 나도 모르게 대중의 시선을 의식한다.

비록 내 방구석에서 하는 행위일지라도 내가 내놓는 작업물들이 어떤 반응을 받을지 신경 쓴다.

그러다 보면 그리다가, 쓰다가, 만들다가 맥이 탁 풀려버리는 것이다.

방바닥에 엎드려서 그림 그리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던 어린 내 모습이 그립다.

누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0.03초 만에 ‘만화가’라고 답하던 때가 그립다.


지금도 사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쓰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목표는 생각나는 글을 쓰되, 마무리 짓자.

이 글만은 저장글에 보내지 말자.

주제고, 제목이고 모르겠지만 사실, 일기에 주제고, 제목이고 뭐가 필요한가 싶다.


이 글은 발행하자.


지금 생각해 보니 며칠 전에 유튜브 영상용으로 그림 그렸던 때는 좀 재미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림을 그리는데 유튜브에 쓸 수도 있으니 겸사겸사 영상을 찍어둔 것이긴 하지만.


오일파스텔로 손 가는 대로 그렸더니 재미있더라, 영상을 만들지, 유튜브에 올릴지, 조회수가 개판일지 몰라도

일단은 그때는 재미있었다. 얼룩덜룩해진 손도 꽤 마음에 들었고


앞으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일단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아, 소제목이 방금 정해졌다.

“일단은 재미있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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