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AZURE POET Aug 23. 2024

시간을 저어가는 삶은

시간을 저어가는 삶은

 

                                                 김 민 휴

 

폭풍우 몰아치는 산포 들녘 복판 모정(茅亭) 가에서

살이 쭉 빠진 포플러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맞서고 있다

 

길쭉한 마네킹 다리 같은 온 몸이 휘어지며

통째로 땅에 닿을 것 같다

저러다 부러지나 저러다 뽑혀 눕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죽지 않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 저 나무는

일어서려고 버둥대서 잠깐씩 일어서다 다시 쓰러지는

백척간두에 선

저 위태로운 나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화살기도를 하고 있을까

당신의 뜻대로 하시라고 위선의 기도를 하고 있을까

 

전부를 다 걸고 맞서야 하는 삶의 시간들은

주일 교회 의자나, 온가족 둘러앉은 저녁 식탁이나

침대 맡에서 엎드려 드리는 동화 같은 기도로

구해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뽑힐 둣 뽑힐 듯, 멎을 듯 멎을 듯

힘든 삶을 지탱하게 해주고

다시 눈을 뜨고, 자리를 박차고, 밥 한 숟가락 뜨고

신발 끈을 고쳐 메고, 허리띠를 동여메게 하는 ...

 

절망을 살리는 밥은, 피는, 그 분의 은총은

살려달라는, 살 게 해달라는 기도의 응답이 아니다

살겠다고 살겠다고 살아남아야 하겠다고

견딘 결과이다 버틴 결과이다

삶은 견다는 것이다 버티는 것이다

 

세찬 폭풍우 몰아치는 삼포면 들녘  한가운데 벌판에서

연약한 포플러나무 한 그루가

부러지지 않기 위해, 뽑히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견디고 있다, 버티고 있다

.

작가의 이전글 그 거울 앞에 서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