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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싶다 Jun 13. 2017

<대립군> 후기


임진왜란의 참상을 기록한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에서 온 사신 '야스히로'는 연회에서 술에 취한 척하며 후추를 한주먹 꺼내 자리에 뿌렸는데 기생과 악사, 심지어 고관대작들까지 후추를 주우러 달려들어 연회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답니다. 외국 사신을 앞에 두고 생긴 엄청난 국가적 망신이었으나, 누구도 이를 신경 쓰는 이는 없었고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야스히로는 숙소로 돌아와 통역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나라가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나라의 질서와 사람들의 태도가 이 모양인데 어찌 나라가 온전 키를 바라겠느냐."


실제로 건국 후 200여 년에 걸친 평화는 나라 전체의 기강, 특히 국방력의 심각한 약화를 초래합니다. 조선은 '양인개병제'라 하여 16세 이상 60세 이하 양반을 포함한 모든 양인 남성에게 군역을 부과하였으나 지배층인 양반은 돈을 내고 군역을 거의 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자연히 군역은 양인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들의 입장에서 군역은 큰 부담이 되었기에 도망치는 이들이 많았고 결국 남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몫까지 군역을 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들을 '대립군'이라고 합니다.




도망친 이들을 대신해서 군대에 와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대립군들은 가진 것도 없고, 든든한 배경도, 도망갈 곳도 없는, 양인 중에서도 가장 처지가 안 좋은 사람들이었지요. 주인공 토우(이정재 분)를 비롯해 곡수(김무열 분) 등은 그렇게 대립질로 여진족과 대치하던 중 전란을 맞습니다. 이런 와중에 명나라로 도망가려 하는 선조는 왕세자 광해(여진구 분)에게 자기 대신 조선에 남아 전쟁을 지휘할 것을 명합니다. 얼떨결에 세자의 호위를 맡게 된 대립군들은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세자를 호위해 목적지로 향합니다.




그런데 세자를 노리는 것은 비단 왜군만이 아니었습니다. 임금인 선조부터 광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사실도 드러나며, 광해를 붙잡아 왜군에게 넘기려 하는 동족인 조선인들의 공격까지, 그야말로 사방이 적에게 둘러싸인 형국이 되고 맙니다.




대립군들의 모습은 당시 의병들의 모습과 흡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국난 앞에서 일신의 안위만을 걱정한 조정 대신들과는 달리 가산을 털어 전비를 마련하고 목숨을 내던져 왜적과 싸운 의병의 존재로 인해 조선은 불리한 전세를 뒤집고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전후 의병들은 대체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임금을 비롯한 지배층들은 그들의 공적을 시기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까지 했지요. 그런 식으로 왜적이 아니라 같은 조선인에게 목숨을 잃은 의병들도 수두룩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관리들은 대립군들에게도 횡포를 부립니다. 대립질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칼로 윽박지르는가 하면, 왜군에게 추격당하는 와중에도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했으며 낙오자들이 죽는 걸 방치하는 등 온갖 패악질을 해 댑니다.


하지만 스스로 떨쳐 일어난 의병과는 달리, 대립군은 기본적으로 용병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더 이상 대립질을 할 이유도 없었고, 따라서 광해를 호위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의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목숨을 바쳐 싸우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고, 대립군들은 끊임없이 수장인 토우에게 불만을 토합니다. 


“이제 그만 좀 합시다. 우리 할 만큼 했소!”




영화 '대립군'은 이 물음에 대해 속시원히 답해주지 못한 채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불만 가득한 동료들에게 토우는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나라가 망해도 우리 팔자는 안 바뀌어.” 


대립군들에게는 도망갈 곳도, 그들을 받아줄 곳도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에 항상 배수진을 치고 싸우게 되지요. 이런 그들의 감정의 밑바닥에는 '체념’이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싸운다는 느낌입니다. 광해에 대한 토우의 인간적인 연민과 기대를 끼워 넣어서 영화를 굴러가게 하려 하지만, 여전히 대립군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이유로는 한참 부족하기에 수많은 전투 장면은 당위성을 잃은 채 지루해지고, 애국심은커녕 반대로 그들을 이렇게 가혹한 전쟁터로 내몬 국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합니다.





사방이 절벽인 세상에서, 민초들이 할 수 있는 게 체념뿐이라면 그런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이 영화를 보면 전시 상황만 아닐 뿐이지 생존 경쟁에 하루하루 목매며 지옥 같은 삶을 이어가는 대한민국을 일컫는, ‘헬조선’이 자연스레 오버랩됩니다. 그 헬조선에서 쉽사리 탈출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를 임진왜란 당시 민초들에 대비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절망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입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살기가 워낙 팍팍해 이민이나 가야겠다고 말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위에 마음먹은 대로 이 나라를 떠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일생을 보내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땅을 떠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 선조 임금 정도 급의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요.





토우는 광해에게 "두려워도 견디어 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함께 싸우는 이들에게는 왜 견디어 내야 하는지는,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훗날 성군이 될지도 모르는 광해를 위해서, 혹은 이 나라를 위해서라고 말하기에 대립군들이 치르는 희생과 대가를 생각하면 과하다는 느낌이 들며, 장렬했어야 할 그들의 최후도 어딘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도망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점차 희망을 포기하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없이 체념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 그런 나라가 얼마나 오래갈 것이며, 설령 오래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희망은 찾을 수 없고 체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확인하는 것 같아 2시간의 러닝 타임이 지겹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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