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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싶다 Sep 03. 2017

<킬러의 보디가드> 후기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에서 의외의 인생 교훈을 얻는 때가 있습니다.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는 시원시원한 총격신과 속도감 있는 자동차와 보트 추격신, 그리고 주연배우들의 맛깔 나는 입담 대결만으로도 킬링 타임용으로서 본전은 충분히 뽑을 수 있는 영화이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관점을 하나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되는대로 살아가는 이들. “따분한 게 최고다”라는 인생 모토를 가진 경호요원 ‘마이클’은 전자를 대표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항상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고려하고 위험 요소를 파악한 후 움직입니다. 경호 업계에서 공인인지 비공인인지는 알 수는 없는, 그가 틈만 나면 언급하는 ‘트리플A’ 등급은 그의 자부심이지요. 하지만 최고의 경호 요원으로서의 그의 커리어는 2년 전 의뢰인이 저격당해 사망하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 후 변변찮은 의뢰인들을 경호하면서 근근이 삶을 이어가고 있던 중, 자신의 옛 여친인 루셀에게서 어떤 남자의 경호를 요청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경호 대상, '다리우스 킨케이드'는 마이클과 과거의 악연만큼이나 철저히 반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마이클이 매사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서 행동한다면 다리우스는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이지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초조해하고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마이클에 비해, 다리우스에게는 일단 계획이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이죠. 먼저 행동으로 나서는 다리우스를 지근거리에서 보호해야 하는 마이클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상황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움직이는데도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다리우스를 보면서 마이클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내뱉습니다.


“X발, 저 인간은 죽지도 않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인터넷에서 영화에 대한 감상평들을 훑어 보던 중, 총탄이 그렇게 많이 날아오는데 주인공들이 한 방도 맞지 않는다면서 영화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몇몇 글들을 보았습니다. 영화들 중 이른바 그런 ‘주인공 보정’이 없는 영화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은, 저는 이 영화의 ‘주인공 보정’에 대해서 나름 변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다리우스에게만 한정된 얘기가 되겠지만, 극중에서 그 누구도 다리우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는 이는 없습니다. 같은 편인 마이클이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그는 시야에서 없어져 버리는 장면이 많지요. 그 누구보다도 다리우스를 잘 이해하고 있는 그의 아내가 그를 절대 죽일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즉, 그의 ‘예측 불가능성’이 그를 절대 죽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링크>와 <버스트>의 저자인 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예측 가능한 인간이다. 놀랍게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의 93퍼센트가 예측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아직 진실의 순간과 맞닥뜨리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직장생활을 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아랫사람들은 윗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다. 윗사람들만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이 읽히고 있다는 것을 모를 뿐이다.         

- 김영하, <보다> 中 -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삶은 대부분 예측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업들은 이런 예측 가능한 사람들의 패턴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려고도 하고 있지요. 대표적인 게 빅데이터입니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어떤 행동 빈도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향후 행동 패턴을 예측하여 거기에 맞는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었던 행동들이 사실은 기업에 의해 계산된 고도의 함정이라는 것은, 나쁘게 말해 소비자는 자신도 모르게 ‘호갱’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 가진 힘은 여기서 나옵니다. 행동 패턴에 대한 데이터가 불규칙하다면 그 사람을 예측하기 힘들어집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삶을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모든 변수를 다 고려한다는 자체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렇기에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웠던 마이클도, 다리우스가 300m 바깥에서 원래 본인의 타겟도 아니었던 마이클의 의뢰인을 저격한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이클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다리우스 인생 최고의 저격이 바로 그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마이클보다는 다리우스가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무고한 사람을 암살하라는 독재자의 명령을 거절하고, 아내에게 사고가 났다는 사실에 속아 인터폴에 체포되었으며,  결혼기념일에 맞추어 탈옥을 하는 등 인간미 넘치는 로맨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따지자면 마이클에 가까운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다리우스가 가진 그런 성격은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극중 마이클이 다리우스와 함께 다니면서 느꼈을 감정들을, 영화를 가볍게 즐기고 나오는 길에 깨닫게 되는, 그런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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