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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싶다 Jul 31. 2018

퇴사 후 - 스마트폰을 꺼놓을 자유

    스마트폰에 쏠리는 관심을 끊기는 참으로 어렵다. 제아무리 눈에 안 보이게 서랍 속에 넣어 두고 뒤집어 놓는 등 별짓을 다해도, 어딘가에서 미묘한 소리가 들리는 거 같으면 혹시 누군가에게서 급한 연락이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 보지만 들어와 있는 건 아무 의미 없는 광고 알림 문자들을 보며 미미한 허탈함을 느낄 뿐이다. 이미 스마트폰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졌고 너무나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스마트폰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게 만든다. 스마트폰은 그렇게 나의 주의 집중력을 흐트러 트렸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 소비자조사협회 저널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지 능력에 제한이 오며, 그 때문에 다른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인지 자원이 감소하고 인지 수행 능력마저 저하된다고 한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소리, 상사나 동료들의 갑작스러운 호출, 과다한 업무 등 집중하지 못할 환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런 일들은 회사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 통제할 수 없기에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업무와 관련 없는 스마트폰이 빼앗아 가는 주의 집중력은 야금야금 업무 능력을 저하시켰다.


    뭔가에 집중할라치면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리는 상황이 너무나 성가시던 찰나, 스마트폰의 ‘방해 금지 모드’를 알게 되었다. 이 기능을 사용하게 되면 스마트폰은 소리나 진동 등 여타 방법으로 사용자에게 알람이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는 스마트폰에 방해받지 않고 집중적인 업무 시간을 돕는 정말 유용한 기능이었다. 그래서 이 기능을 항상 활성화해 두고 연락이 올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 경우에만 비활성화 해 두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방해금지 모드를 해제하는 걸 잊은 채 출근한 날이 있었다. 상무님이 출근을 하시면서 내 곁을 지나며 슬쩍 “이 과장, 핸드폰 안 보나?”라고 했다.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를 않아 핸드폰을 서랍에서 꺼내 보니 상무님의 부재중 전화가 2통이 와 있었다. 출입증을 안 가지고 온 상무님이 내게 전화로 문 좀 열어달라고 전화를 걸었었던 것이었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와중에 그런 말이 민감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 날부터 ‘방해금지 모드’를 해제하고 다니기로 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상무님을 비롯한 직장 내 사람들과 언제나 연결이 되어 있어야겠다는 일종의 압박감이 마음속에 자리했다. 이런 사적이라면 사적인 용무부터 시작해 회사에서 혹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즉각 내가 반응하지 못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좋은 평가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직장은 그렇게 내게 반강제적으로 연결될 것을 강요했다.




    퇴사 이후, 나는 회사 사람들과의 연결되어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방해 금지 모드’에 두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나는 온전히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나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내게 무언가 왔을 연락들을 확인하는데 주의력을 소진하는 대신, 긴 호흡이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 평소 읽기 힘들었던 두꺼운 책을 집중력을 발휘해 읽기도 하고, 더 차분하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미래 계획을 세우고 있다. 거기에 더해 글을 좀 더 확장해서 쓰는 능력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긴 독서와 생각이 긴 글을 쓰도록 유도하고 있다. 비록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유행하는 세상이라지만 아직 세상에는 긴 호흡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읽고 깨달음을 얻어야 할 책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책들을 머릿속으로 받아들일 시간을 위해서, 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내 호흡을 흐트러뜨리는 스마트폰의 알람을 꺼놓을 자유는 소중하다.



    <가디언>지의 기자 올리버 버크먼은, 다른 사람의 주의력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빼앗는 일이 믿을 수 없이 쉬워지면서 우리가 각종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주의를 끌려는 시도를 거절하는 것조차도 우리는 일정한 주의력을 사용하며 이것 또한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하는 비용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돈의 개념으로 비유하는데,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원할 때마다 허락도 없이 당신의 은행 계좌에서 몇 달러씩 인출해 갈 수 있다면 당신이 당연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듯이, 이런 식으로 우리는 주의력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있다고 한다. 그 다른 사람을 매개하는 물건이 스마트폰이다. 이 작고 아름답고 똑똑한 기계로부터 나는 지금 내 소중한 시간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상시 연결된 사회에서 그 연결을 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또 연결되고 싶을 때 연결될 수 있다는 자유를 얻는다는 건 작지만 엄청난 행복감을 주는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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