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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싶다 Aug 06. 2018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데 스마트폰이 최선일까?

건널목 앞에서 스마트폰에 대해서 생각하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건너편을 보니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이들이 언뜻언뜻 눈에 띄었다. 신호가 바뀌자 그들은 잠시 앞만 슬쩍 살피고는 여전히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면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옆사람들의 움직임을 감지한 것일까, 신호등도 보고 있지도 않았는데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그들을 신기하게 여기면서 그들이 나아갈 길을 내어주며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만약 내 쪽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걸어오는 이가 있다면, 그들과 부딪히지 않으리라 장담을 할 수가 없었으리라.


부딪히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부딪혀서 그들이 가진 스마트폰이 떨어졌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 시작하면 당연히 피곤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스마트폰을 안 보고 걷는 사람들이 조심하는게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다만 스마트폰에 집중하다가 생길 수 있는 불의의 사고는 전후좌우를 살피지 못한 본인의 책임이 클 것이니, 횡단보도처럼 차가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장소에서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스마트폰을 자제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종종 사용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말 그대로 자투리 시간에 알림, 문자, 카톡 등이 혹시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만약 그런게 없다면 밀린 웹툰 하나를 챙겨보곤 한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인들과의 약속 확인, 잡담, 아까 보다가 만 포스팅, 혹은 게임일 수도 있겠다.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길면 2분 가까이 되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나 또한 이것이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믿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움베르트 에코는 “우리의 삶은 틈새로 가득차 있다”고 했다. 그는 그 ‘틈새’를 잘 활용해 수많은 학문적 저작과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자신을 방문한 손님이 초인종을 울리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문 앞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그는 현재 쓰고 있는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움베르트 에코가 원래 재능과 학문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기에 나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변명하기에 앞서 내가 자투리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돌아보면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고 있었던 적이 더 많았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 시간은 종종 내가 생각하는 자투리 시간의 범주를 훨씬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알아보니 어떤 곳에는 바닥 신호등을 설치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횡단보도 앞에 바닥 신호등이 생겼을까. 그만큼 많은 이들이 신호등을 기다리는 1,2분 남짓한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방증이리라. 하지만 나는 바닥 신호등이 생긴다는게 과히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횡단보도에서 사용을 자제할 수 있는 의식이 생겼으면 한다. 바닥 신호등의 확산은 사람들을 잠시나마 스마트폰에서 벗어나게 할 순 있겠지만 종국에는 스마트폰에 더더욱 길들여지게 할 뿐일테니까 그다지 좋은 방향은 아닐 것 같다.


 횡단보도 앞에서의 1~2분은 분명 자투리 시간임에 맞지만, 스마트폰 말고 다른 행동으로 그 시간을 이용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 시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로 했다. 비단 나의 안전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너무 스마트폰에 빠져서 고개를 숙이고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때마침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이 창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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