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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Nov 06. 2023

턱시도 고양이와 이별

길거리생활을 마치고 고양이 별로 떠난 고양이..

일요일 아침, 모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늦은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당에서 집안으로 들어온 남편이 지나가듯 이야기를 합니다.


"밖에 고양이가 죽어있네.."

"어디에?"

"응 당신 차 밑에 쓰러져 있네"

"교통사고를 당했나?"

하고 마당으로 나와서 바로 우리 집 담장 너머 주차되어 있는 나의 자동차를 내려다보았더니, 운전석 앞바퀴와 뒷바퀴 중간쯤에 고양이 한 마리가 길게 누워 있습니다.


그 고양이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주변을 느릿느릿 돌아다니며 나의 눈에 자주 뜨였던 길고양이입니다.


6월 초, 며느리가 저의 생일선물로 남편과 함께 초대해 주었던 '뮤지컬 캣츠'를 관람하고 와서 우리 집 대문 앞을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그 고양이를 발견하는 순간 '와~ 턱시도를 입은 마술사 고양이다!' 하고 반가운 마음을 갖게도 했지요.


우리 집 2층 화분에 어느 고양인지 자꾸만 똥을 싸 놓아서 그 똥을 치울 때마다 싫은 마음에 구시렁거리기도 했지만, 왠지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 보다는 점잖아 보여서 나의 잔소리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뮤지컬 '캣츠'의 턱시도 입은 고양이를 닮았던 고양이


저의 자동차 아래에 쓰러져 있는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의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여서, 어쩌면 잠을 자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고양이를 살펴보았습니다. 고양이는 머리를 다쳤는지 머리 부분에 피를 흘린 모습이었습니다. 숨이 멎은 지 제법 시간이 흘렀는지 몸은 뻣뻣하게 경직이 되어있습니다.


저는 집으로 들어와서 검은 비닐봉지를 몇 개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양이를 검은 봉지에 넣는 순간, 고양이는 제법 컸고, 무거웠습니다.


저는 턱시도 고양이 보낼 곳을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어두운 밤, 우리 집 근처 골목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고양이를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어둔 골목을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 온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아서 집으로 달려와서 챙겨 간 비닐봉지에 고양이를 담았습니다. 숨이 끊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고양이 몸은 부드러웠고 따뜻한 체온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때 그 고양이를  집 근처의 언덕 가로등 아래에 묻어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2년 전에는 탯줄이 달린 채로 어미에게서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구조하여 9일 동안 보살펴 주었지만, 끝내 고양이 별로 떠난 새끼고양이 '버터'를 묻어 주었던 그 언덕에 턱시도 고양이를 묻어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 집에는 삽이 없어서 골목 안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삽을 빌리러 갔습니다. 삽은 텃밭에 가져다 놓아서 없고 호미와 작은 곡괭이가 있다고 빌려 주십니다.


우리 집 근처의 언덕 가시오가피 나무 아래의 흙을 곡괭이와 호미로 팠습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은 탓인지 땅이 제법 단단해서 애써 힘을 주어 땅을 팠습니다. 턱시도 고양이의 체구가 큰 탓이어서 한참동안 깊고 크게 구덩이를 파야했습니다. 이만큼이면 되겠다... 싶은 크기의 구덩이를 파고, 턱시도 고양이를 종이백과 비닐봉지에서 꺼내어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턱시도고양이를 위해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이제는 고단했던 길거리 생활에서 벗어나서 고양이 별에서 여기저기 마음껏 뛰어다니기를 바랐습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떠난 고양이와 새끼고양이 '버터'를 친구 삼아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소리 내어 이야기했습니다.



집 근처 낮은 언덕, 가시오가피 나무 아래 잠든 고양이




일요일 저녁부터 부슬부슬 내린 비가 월요일 새벽에는 제법 굵은 빗줄기를 뿌렸습니다. 남편이 출근을 한 아침에도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비에 자꾸만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제 언덕에 잠든 턱시도 고양이의 무덤이 별 일은 없는지 마음을 졸이다가,  아침 10시가 넘어서 빗줄기가 잠잠해진 틈을 타서 꽃삽과 작은 양동이를 들고 턱시도 고양이가 잠든 언덕을 찾았습니다.


많은 비가 내렸음에도 고양이의 무덤은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양동이 하나 가득 흙을 담아서 고양이의 무덤 위로 쌓았습니다. 그리고 발로 꾹꾹 힘을 주어서 눌러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이후에야 '이제 됐다'라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이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언덕 근처를 지날 때마다 저는 한동안 턱시도 고양이에게 안부를 물을 것입니다.


  '고양이 별 그곳에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쫓기는 삶을 살지 말고 잘 지내라고.. 고단했던 그동안의 삶은 잊고  마음껏 뛰어놀면서 지내라고..'



 고양이 무덤의 안전을  확인하고 오는 길, 먹구름이 걷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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