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피터팬 아저씨
chapter 1 집에 불러들이는 건 안돼!
"집으로 불러들이는 건 안된다고 했잖아!"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큰 목소리로 아저씨가 소리쳤다. 예상했던 일이다 커다란 고함 소리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나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집어 든다. 몇 번이나 읽었을까? 귀퉁이가 너덜너덜 헤어져 있는 책 속에 머리를 파묻으며 말했다.
" 네~ 혹시나 해서 해 본 말이에요"하고 민망함을 감추며 멋쩍게 대답했다.
Rule no. 1 은신처가 들키면 떠나야 한다.
스몰토크 정도는 가능하지만 집으로 초대를 할 만큼 핸드폰 번호를 교환할 만큼 친한 관계의 친구 만들기는 안된다고 못 박아두고 12살부터 같이 생활 한 지 6년..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아저씨와 살기로 했다.
기대도 안 했지만 최근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만나 친해진 OO에게 집에 초대해서 내 방 게임기도 보여주고 그동안 얻어먹었던 신세도 갚고 싶었는 데 역시나 무리였다. 검정고시 준비는 사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꼭 배워야 한다고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사람 구실 할 수 있다고 시작 한 건데, 7시간씩 학원에서 처음으로 또래들과 같이 지내는데 친구 하나도 못 사귈 만큼 기가 죽어 있을 거라 예상하셨던 걸까? 내가 고아라서?
" 우리 도쿄 갈까? xx 좋아하는 워너브로더스 스튜디오 다녀오자!" 싸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싶으셨는지 아저씨가 능글맞게 물었다.
"네~ 좋아요. 버터 비어도 사주세요." 나는 못 이기는 척 책을 덮으며 아저씨에게 흥정을 붙였다.
"가자! 지금 바로 가자. 에어컨 바람 많이 쐬면 감기 걸릴 수 있으니까 바람막이 하나 챙길게. 아니 XX가 가방에 하나 넣어둬라~" 대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벌씨 외투를 집어 들었다.
이게 바로 아저씨가 나에게 많은 규칙을 정해준 이유다. 텔레포트. 아저씨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바깥세상에 누설하지 않는 대가로 나는 아저씨로부터 이득을 취한다. 방법은 조금 특이한데, 나름 감싸 안고 하늘 어딘가를 활공하다 원하는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다 큰 녀석이 성인 남성의 품에 안기는 것이 징그럽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느낄 수 있는 땀냄새인지 홀아비냄새인지 모를 체취를 한 뼘만큼 가까이에서 맡는 것이 어쩐지 좋았다. 살며시 이마를 아저씨 턱에 기대어 본다. 이 까끌까끌하게 수염에 긁히는 이 느낌이 왜 좋은 걸까?
" 아저씨 면도 안 했죠?"라고 내가 말했다.
"응! 아침에 늦잠을 잤어. 징그럽다 이 녀석아 좀 떨어져라" 말하면서도 아저씨는 잔뜩 힘을 준 턱으로 내 이마를 밀어대면서 두 팔로 나를 감싼다.
아저씨는 최근 유난히 아침잠이 많아졌다. 처음 아저씨와 살게 되면서부터 최근까지는 줄곧 아침 일찍 압력솥에 밥을 지어 국에 반찬에 손수 차려 주셨었다.
"치 치 치 치"추돌아 가는 소리에 눈이 떠지곤 했었는데 부쩍 아침에 못 일어나는 아저씨 덕분에 이제는 내가 아침밥 당번이다.
"자~ 간다!"
"오늘은 소망의 거울 왼쪽 구석으로 가요. 거기는 어둡기도 하고 자기네들 사진 찍느라 바빠서 저희가 나타나도 눈치도 못 챌 거예요. 입구부터 걷기는 다리도 아프고, 화장실 칸에서 남자 둘이 나오니까 쳐다보는 눈길이 좀 불편해요. "
"그래! 거기 거울 앞에 사람들 많이 서있는 데 말이지? 진짜 간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도착했다. 스튜디오 살짝 둘러보며 밖으로 향했다.
"버터 비어 한잔?" 버터비어 카페가 보이자 아저씨가 물었다.
"좋아요. 저기 자리 맡을게요."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내가 대답했다. 두 자리를 맡아 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삼삼오오 모여 호그와트 기숙사 망토를 입고 한 껏 멋을 낸 사람들이 보인다. 저 팀은 또래 친구들과 왔고 저 팀은 폴짝폴짝 엄마 아빠 두 손을 잡고 뛰어다니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가족과 함께 왔구나.
친구, 가족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두 단어이다. 고아가 된 나와 아저씨. 같이 살게 되었지만, 아저씨는 나에게 무엇일까? 가족이라 불러도 될까? 나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후원자가 있음에 감사해야 할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어떻게 아무런 대가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키다리 아저씨도 결국 14살이나 어린 조카의 친구를 후원하다 결혼하지 않았냐는 말이다.
5학년 어느 주말 손기정 공원을 거닐다 첫사랑을 발견했다. 손기정 선수 머리 동상 쪽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어떤 아저씨에게 배우는 듯 보였는데 딱히 갈 곳도 없고 늦게 들어가도 나를 찾을 사람도 없기에 멀찍이 떨어져 안보는 척 그 아이를 몰래 숨어서 지켜보았다.
"자~ 여기 시계" 선생님으로 보이는 자가 리본이 달린 쇼핑백을 주며 말했다.
"와~ 산리오네요~집에 가기 전에는 선생님 돌려줘야죠?" 상자 속 시계에 시선을 고정한 채 a가 물었다.
"응 그러는 게 좋아~엄마가 아시면 다음에 선생님 또 못 만나. 절대 말하면 안 돼~"
그러곤 내가 앉은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다 한 30분 정도 후에 다시 돌아왔다. 다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그 친구를 지켜보았다. 이 선생은 뭐지? 시계를 선물하고 가져가면 안 된다고? 엄마도 아시면 안 되고? 레슨이란 건 엄마가 잡아주시는 게 아닌가? 의문투성이의 레슨.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범죄였을 사건으로 세상 공짜는 없다는 귀한 교훈을 배웠다.
아저씨는 어떤 부류지? 남자아이 좋아하는 뭐 그런 쪽인가? 감히 같이 사는 6년 동안 그런 이상한 낌새는 전혀 없었다.
" 자! 여기~" 꽁꽁 언 잔을 내밀며 아저씨가 말했다.
" 아저씨 한 잔만 사 오셨네요?" 아저씨 주머니사정에 짐짓 미안해진 나는 물었다.
" 아저씨는 이가 시려서 얼은 거 못 먹어~" 히죽 웃으며 아저씨가 말했다.
프라이빗가 4번지, 더즐리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줄을 서고 천천히 움직인다.
계단 밑 해리포터의 벽장 방.
아저씨는 그곳에서 해리를 해방시켜 준 호그와트 입학통지서급의 내 인생의 귀인이다. 아저씨는 나에게 비밀유지를 위한 규칙을 지킬 것만 빼고 어떤 요구도 없이, 아낌없이 나에게 쏟아붓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저씨는 나에게 ‘食' (먹을 식) 자를 써서 같이 밥 먹는 사이 식구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