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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적인 표현에서 벗어나라

#문학강의 98

메타버스AI문학학교



   문학평론가 이현우 교수




  메타버스AI문학학교


#관념적인 표현에서 벗어나라

   문학평론가 이현우 교수


첫째, 체험


둘째, 관념적인 표현에서 벗어나라


이미지즘으로 고뇌를 하라는 것하여, 오늘은 이어지는 기분에서 언제나 필요하고 시인이라면, 문학인이라면 필히 갖춰야 하는 것이 있어요

시에서 이것만 하면 전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의식의 창출 과 무의식의 내면화 감각의 기능입니다

만져보고 들어보고 느껴보는 것이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몇 마디 강조하고 넘어갑니다

무의식의 내면화 에서 의식의 창출 사이에 자의식과 타의식이 존재를 합니다


무의식이란, 풀이하면 의식이 없다라고, 그야말로 있다의 반대개념으로서 사전적 지식같지만 천만에 말씀입니다 프로이트가 어떤 자극으로 인해 의식화될 수 있는 성분이 무의식이라고 분석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태계는 끊임없이 무의식이 균열하며 수억만개의 세포를 활성시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의식은 확대할 필요도 없이 존재를 위한 정체성이라 규정할 수 있겠습니다


좀 더 쉽게 접근해 보자 살아간다는 건 곧 생체리듬이다 움직이고 운동하며

또한 생각하며 교감하는것이 삶이다 육신과 정신으로 결합된 총칭을 인간이라 한다면 정신은 육체적인것을 모두 포괄하려는 상위개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신은 육신을 지배한다라는 결론이다

무의식은 정신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는 생성의 목적수단이며 의식의 능동적 욕구입니다.


그렇다면 시에서 무의식은 어떠한 형태로 잠복하는가

모든 감각의 열어두기다 5감각으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등을 활용하여 기관마다 고루 분포하는 일인데 이를 얻기 위한 자료는 인간이 누리는 환경,또는 배경이 제공한다그렇다면 문학에서 시의 무의식은 절대적인것인데 감각으로서 이를 다 하려는 욕구중의 하나가 시에서의 무의식이다


청각이란 것은 귀를 연다라고 볼 수 있는데 모든 소리에 해당하는 것을 불러다 내면에 잠재시킨다삶은 이렇듯 소리로서 생동한다

미각이란 되도록 맛을 보아야 실제로 전달자의 진실여부를 알 수 있다

소나무의 껍질도 바람이라는 공기중의 무중력도 시를 개념화 시키기 위해서는 맛으로서 충분한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후각 또한 만찬가지다 전해지는 냄새가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는 하여 잠자코 그의 여운을 되씹을 일이다 이렇듯 감각이란 늘 열려있어서 모든 전달자의 의미를 그 감각을 통하여 얻게 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이것을 바로 여과없이 표현하고 증발 할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불러들여 시를 위한 잠복기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듯 감각이란 늘 열려있어서 모든 전달자의 의미를 그 감각을 통하여 얻게 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이것을 바로 여과없이 표현하고 증발 할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불러들여 시를 위한 잠복기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시의 무의식이다



나무 한 그루를 보자 가지가 있고 잎파리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분명하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흔들림은 바람에 의해서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감각을 통하여 얻어야

한다는 간단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단지,  그 바람을 누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관건이기도 합니다

살랑인다와 태풍이다와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즉, 살랑이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부러진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부러진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그렇다면 어던 경우냐면 왜 부러진 것인지에 대한 받침의 시어가 존재를 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반전 내지 반어법으로 말입니다


독자가 바라는 건 본대로 적기를 원하지 않습니다.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는 시어가 필요합니다 그런 작업을 하는 게 시인의 일입니다

이제 무의식의 표면화가 무슨 말인지 조금은 이해가 가지요?

자꾸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해가 어려우면 물어야 합니다 그럼 의식의 창출이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무의식으로 체험한 감각을 다시 건드려 운동을 시키려는

행위인데 이것은 시에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성물질을 다변화 하여 꽃을 만든다든지,시간을 변화시킨다든지 해서,모든 깨어있는 웅변으로서 의식은 무의식의 절대적 항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성물질을 다변화 하여 꽃을 만든다든지,시간을 변화시킨다든지 해서,모든 깨어있는 웅변으로서 의식은 무의식의 절대적 항변이라 할 수 있다


사고의 운동이 곧 의식이고 운동으로 단련된 결과물이 詩의 창출인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詩가 말하려는 의식은 무엇을 내포하는가

내면화된 자의식을 가지고 다루거나 빚어서 물질이상의, 곧 메세지를 이루는 것인데 곧 형이상학에 해당한다 할 수있겠다 여기서 자의식이란 무엇인가의 설명이 필요하다


자아란 원초적 욕망과 양심을 겻들여 설명 할 수 있다 강렬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자가 이에 속하는데 말하자면 감정이나 관념따위와 더불어 대상 또는 사물이 인식되어 지는 경우다 간은 내면에서 무수한 감정 발아를 일을킨다 그것이 보여지지 않을 뿐 삶이든 꿈이든 부여되는 의지가 부정이었다 긍정이었다가 수십차례의 내적갈등을 스스로 일으킨다.


 이러한 욕구는 환경적 지배를 받기 마련인데 갈등의 원인은 곧 타의식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시의 자의식은 아이러니하다 타인의 배경을 수단으로 하되 철저하게 자기기만이며 자의식의 지시로 메타포를 발설토록 한다 자기감정에 충실하려는, 절대적 대화법이나 삼인칭 수사법을 허용치 않는다 결론적으로 타의식은 물질이며 자의식은 성질이자,이드(id)와 자아(ego)를 총괄하려는 무의식의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시의 근원이며 역사이며 추구일 정신이 하는 노동으로서의 인식이다 그것은 사물이 초토화 된 상태를 말하며 시가 이룩하려는 운동의 근원적 요소에 해당한다 결국 불러들인 감각의 현상과 자질 이상을 넘어 그가 진정 지니고 있은 본질과 영혼을 탐구하는 일이 곧 시의 의식화다


꽃을 지워내고 잎을 피우는 나무 나무가 존재하기 전의 내면적 가치를 따지자면 나무는 우주를 이루기 위한 근원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형이상학으로 시는 이처럼 보이는 것을 찾는 무개념이 아니다

모든 사물과 인간의 바탕엔 분명 존재하려는 목적의식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탐구히려는 자세, 의욕이 곧 시인의 의식과 무의식의 추구인것이다

시인의 시는 이처럼 심리적인 것을 태반으로 하여 무의식의 탯줄을 끊고 태동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면 시는 시가 아니라 사물의 주검을 놓고 무덤을 파는 격이되고 만다


날마다 깨어 있어야 한다 오늘도 보고 듣는것이 문명이나 기계가 만들어 놓은것을 그대로 불러다 사용할 것이 아니라 생명이 지니려 했던 원리와 목적을 위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놓아야 한다


그 열어두기란 잠자코 바라보기다 나머지는 감각이 알아서 내면으로 불러들이기다면 의식의 창출화란 본질의 존재론이라 할 수있다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시가 취해야 할 자세다:시가 표방하고 나서야 할 근본이 아닌가 싶다 생과 물질사이에서 은폐의식은 또한 자의식의 발생이다 곧 詩다


나무 밑둥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밑에는, 뿌리에는

물이 흐르고 적당한 온도가 있어야 된다 이를 볼 수 없으나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각을 총 출동시켜야 한다.


좋은 시의 조건 몇 가지


1. 함축성이 있고 입체적인 시를 써라

시와 산문이 다른 점은 시가 지니고 있는 함축성 때문이다.

시는 평면적인 글을 의미전환 시키거나 이미지화해서 그 속에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해준다.


항상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시에서 다양한 수사법(은유, 상징, 역설, 알레고리, 아이러니 등)을 사용하는 것도 평면적인 글을 입체적이고 함축적인 글로 만들려는 노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이나 사회의 어떤 현상과 연결시켜서 바라보고, 그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해석해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우리가 시를 쓸 때 세계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 속에서 세계를 발견하려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이에 반해 투사는 자아의 감정을 세계(사물)에 이입시켜서 자아를 사물과 동일화시키는 것을 말하며,

이를 요약해서 자아의 세계화라고 말한다.

자아와 세계를 동일화하려는 것은 서정시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이다.


2.관점과 표현이 새로워야 한다- 다르게 보기와 낯설게 하기

좋은 시는 시인이 대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미 너무나도 낯익은 것들에 길들여져 있어서 낯익은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지 못하고 기계적이고 관습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시인은 이처럼 관습적이고 기계적인 것들을 일깨워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재창조해내는 자이다.

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의 하나인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대상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바라보고 이것을 자신의 표현법으로 낯설고 새롭게 표현해 내는데서 생겨난다.


이처럼 시를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표현법으로 창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정관념을 없애야 한다.우리 주변에는 무수한 사람과 사물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러한 주체나 대상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을 없애고 자유로운 상상력이나 사유(생각)를 통해서 그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재해석해서 새롭게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시문학사를 더듬어 볼 때, 실험시나 해체시가 반복적이고 주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도 시적 ‘새로움’에 대한 시인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어떻게 해야만 되겠는가, 우리가 고정관념의 틀에서 빠져나오려면 우리의 정신과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참고로, 분열된 몽고의 부족을 결집하여 중국과 유럽을 정복한 징기스칸이 만약에 유목민의 후예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런 큰 역사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 본다.


유목을 뜻하는 노마드(nomad/nomade)는 들뢰즈가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현대 철학의 한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유목의 개념은 현대에 이르러서 어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일컫는 말로 정착되면서 새로운 문화적 트랜드로 떠오르게 되었단 말입니다.


이러한 노마드적인 정신이 시를 쓸 때도 필요하다.(유목을 뜻하는 노마드(nomad/nomade)는 들뢰즈가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현대 철학의 한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좋은 시를 쓰려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부수고 자아와 사물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새로운 상상력은 자유로운 정신에서 나오고, 이것이야말로 새롭고 좋은 시의 원천이 된다


*둥근 발작


조말선


사과 묘목을 심기 전에

굵은 철사 줄과 말뚝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십시오

흰 사과 꽃이 흩날리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신경증적인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곁가지가 뻗으면 반드시 철사 줄에 동여매세요

자기성향이 굳어지기 전에 굴종을 주입하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억제입니다

원예가의 눈높이 이상은 금물입니다

나를 닮도록 강요하세요

나무에서 인간으로 퇴화시키세요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부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억누르세요

뺨이 벌겋게 달아오를 것입니다

극심한 감정교차는 빛깔을 결정합니다

폭염에는 모차르트를

우기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나른한 태양, 출중한 달빛, 잎을 들까부는 미풍

양질의 폭식은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입니다

위로 뻗을 때마다 쾅쾅 말뚝을 박으세요

열매가 풍성할수록 꽁꽁 철사 줄에 동여매세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둥근 발작을 유도하세요


*거리에서


이원


내 몸의 사방에 플러그가

빠져나와 있다

탯줄같은 그 플러그들을 매단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비린 공기가

플러그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몸 밖에 플러그를 덜렁거리며 걸어간다

세계와의 불화가 에너지인 사람들

사이로 공기를 덧입은 돌들이

둥둥 떠다닌다


3.현실의 구체성과 진정성에 토대를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라

좋은 시는 우선 허황되지가 않다. 집도 토대가 튼튼해야 좋은 집이 될 수 있듯이, 시도 체험의 구체성이나 진정성 위에 서 있어야 감동을 줄 수 있다.


♧시창작 할 때 고려할 점♧


체험적인 부분에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이 있습니다 간접적은 독서를 말합니다, 아니면 듣거나 하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것은 경험입니다


왜 제목이 망설여지는가 하면 적기 전에 구상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즉, 기승전결에 대한 구상입니다


기는 발상을 일으키는 것이라 했습니다 즉, 시제를 갖다놓을 수 있는 발상입니다 그러니까 발상이 없으니 당연히 승이 없게 됩니다

승이란 발상의 원인을 받침해 주는 것으로서 기를 받들어야 되는데

기가 없어요 받들지 못합니다.그러니 적고도 내 스스로 이해가 안 되거나 어색하게 보입니다 승을 위해 전개를 해야만 되는데 승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을 내리지 못하고 나중에는 결국 글 안에서 제목을 찾으려고 하는 게 오늘 우리 시인들의 습관이기도 합니다.


좀 늦더라도 생각이 좀 둔하더라도 시제를 먼저 결정하고 적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무엇이 필요하겠나요?고뇌를 해야 됩니다

나 같은 경우를 말하면...시제를 정하는데 3일 정도 걸립니다

제목을 정하지 못하다 보면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오느냐면요?시제를 정하는 동안에 이미 구상을 다 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제에 맞도록 구상을 하셔야 됩니다.즉 대상을 향한 게 3가지 정도를 택하시길 바랍니다 대상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그대로 그 대상을 적을 것인가 하나,그 대상이 나를 비유 할 것인가 둘, 그 대상이 나와 그 대상이 합체가 될 것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문학작가회 강의 백강선생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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