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오래 걸릴 한국 적응기 1
아일랜드에서 알렉산더 테크닉을 배우며, 3년 내내 내려놓는 법을 익혔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사실 그놈의 Non-doing이 말이 쉽지, 그것이 맘처럼 잘 안되어서 나는 조금 극단적으로- 하기 싫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지냈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어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의 충동이 멈추지 않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1년이 지나고야 조바심과 죄책감과 불안의 밀도가 아주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비바람을 헤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며, 아주 최소한의 생활을 하고, 많이 걷고, 매일 바다와 노을을 보고, 울고, 노래 부르고, 멍을 때리고, 미드를 보고, 우울과 무기력에 한없이 들어갔다가, 빵을 굽고, 정원 일을 하고, 말과 아이들을 만나고, 발효 장인의 꿈을 꾸고, 손가락을 움직여 가방과 목도리를 만들고, 부족한 베지테리언이 되고, 지구와 나를 살피고 애끼고...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삶이 아니라, 되는 대로, 가는 대로 살아보았다. 생각보다 산입에 거미줄 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그래서 계속 나의 일상을 소박하지만 풍성하게 하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어느새 졸업을 했다. 그래서 내려놓는 법을 짠하고 익혔냐 하면? 그저 내가 만들고 쌓은 작은 일상의 루틴과 환경이 나를 그렇게 도왔다. 자연과 연결될수록 새로운 감각이 찾아왔고, 그렇게 작은 빛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어둠 속에 묻혀 아무것도 안보였다면, 이제는 빛이 들어와 더 깊은 어둠의 골짜기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ㅎㅎ 그런 고로, 빛과 함께 해피엔딩이 아니라, 더 엄청난 시작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코로나와 함께 눈물의 졸업식을 마치고,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떠나고는 잊었던 갖은 자극들이 나에게로 원상 복귀되었다. 일, 가족, 관계, 코로나, 돈, 성취 문화, 그 밖의 한국의 갖은 공기..등등등 등등등 하! 이래서 내가 이러단 죽겠다 싶어 다 버리고 아일랜드에 갔었지..하는 기억도 복귀하고..ㅎ 특히나 화와 적대로 가득 찬 한국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아일랜드의 뭐든 느긋한 농담 따먹기로 가득한 친절함과 너무나 대비되며 뼛속까지 침투하는 기분이었다. 무자극 상태에서 3년을 살다가, 갑자기 휘몰아치는 자극들 앞에 서서.. 예전처럼 반응하며 움추러드는 나를 만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 나와도, 무너졌다가도 엉엉 서럽게 울고는 다시 웃기게 균형을 잡는 나도 만났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정말로 맘껏 해도 된다니!!! 하는 마음에 신이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뭐든 처음이고 너무 바닥부터의 시작이라 정말 이래도 되는건가 불안도 했다가. 그러다가 또 마음이 금세 달리기하는 법을 까먹은 계주 선수처럼 뛰기 시작해서 괴로웠다. 찬찬히 가야지 하다가도 가랑이가 금방 찢어질 위기에 봉착하고, 일찍 자야지 하다가도 또 늦은 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예전의 나와 만나 여기에 이러고 있다. 지나온 3년이 말한다, 될 일은 다 될 때, 되게 되어있다고. 밥이나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식물을 가꾸고, 걸레질을 하고, 빵을 굽기 시작하라고, 그리고 바다에 가라고. 그러니 우선은 잠의 세계로 가본다, 아일랜드의 너그러운 바다가 내 꿈에 나와 줄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