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넌 내 맘을 모른다
한국 문화에서는 술자리가 매우 흔하다. “나중에 한잔하자”, “내가 술 한잔 살게”라는 말은”같이 밥 한 끼 먹자” “언제 커피 한잔 합시다”보다는 훨씬 친밀감을 나타내는 말이다. 기다란 바에 각자 앉아 술 한잔 씩을 앞에 두고 홀로 혹은 두셋이 앉아 자유롭게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 도하는 미국 바(Bar) 문화와는 달리 한국의 술자리에는 엄연한 서열과 규율이 존재한다.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모여있어도 술을 가장 먼저 받고, 안주를 결정하고,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이런 모임을 엿듣다 보면 조언을 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확연히 구분되는데 그 기준점이 되는 게 주로 나이다.
한 살만 더 많더라도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이해할 거다”, ” 취업이나, 결혼, 애를 가지면 알게 될 거다”라는 아리송함으로 시작해서 “지금 얘기해도 모를 거다”라는 말로 끝난다. 나만 하더라도 매일 보는 후배와 술을 한잔 마시더라도 왠지 침묵이 길어지면 뭔가 덕담이나 진지한 조언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이 생긴다.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그럴싸한 말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나에게만 해당하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얘기 거나 나 스스로 하는 결심을 마치 조언인 양 뱉을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에는…”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란 말로 운을 띄우고 “…그런 것 같아”나 “… 아닐 수도 있고” 하며 말을 마친다.
내가 단언하는 말을 되도록 삼가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상대방을 절대로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누가 나에게 “너는 분명히 이렇게 행동할 거야”라고 말했을 때 듣기 불쾌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근거를 기반한 예측이었지만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여지를 묵살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대부분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고민의 대한 해답을 이미 알고 있다. 가장 좋은 조언의 방법은 귀를 내어주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묻지 않는다면 굳이 조언하지 말자. 오지랖이다. 그래도 물어온다면 얼은 강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한 태도로 대답해야 한다. 단언컨대 단언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