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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Nov 10. 2021

오션스 8

그녀들의 멋짐의 정체

* 3년 전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사이트가 사라져서 제 개인 공간에 다시 업로드 합니다.


<오션스8>을 두 번이나 봤지만 태미(사라 폴슨)의 능력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역할들 중 태미의 역할은 디자이너, 해커, 소매치기, 보석 감정사처럼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녀는 다이아몬드 절도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리더인 데비 오션(산드라 블록)에게 필요한 정보와 물자를 공급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슈들을 즉각 처리하는 일을 한다. 직장과 비교하자면 과차장급 중간 관리자와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영화의 포스터는 그녀를 fence(장물아비)라고 소개하지만 영화에서 그녀가 하던 일은 장물아비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역할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기에 그녀의 차고에는 물건들이 코스트코처럼 쌓여있고, 어떤 마법을 썼기에 보그Vogue 잡지사에 이벤트 매니저로 취업할 수 있었는가? 그렇다. 악명높은 안나 윈투어가 CEO인 그 보그(Vogue) 잡지사이다.


까메오 출연하는 보그Vogue지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메릴 스트립, 우)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력서를 작성할 때 거짓말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이력서에 써 있는 것을 할 줄 모르면 들키기 때문이다. 거짓이 들통나는 순간 직장을 잃는다. 누구도 능력없는 거짓말쟁이를 고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극중에서 태미는 거짓 이력서로 보그Vogue지에 취업할 수 있었지만 태미의 거짓은 들키지 않았다. 이력서에 써 있는 만큼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미는 그녀의 보스로부터 신뢰받는 직원이었고, 그 신뢰를 이용하여 원하는 사람들을 이벤트에 심어놓을 수 있었다. 태미의 활약 덕택에 데비 오션의 계획은 성공했고, 세계 최대의 갈라 이벤트 중 하나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자선 갈라도 무사히 마쳤다. 현실 세계의 전문 이벤트 매니저라면 한가지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 만으로도 버거웠을 터이지만 태미는 두 명의 보스를 모시고 두가지 일을 해냈다. 그녀의 이력서는 거짓이었을지 몰라도 능력은 거짓이 아니다. 물론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다.




영화 <오션스8>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주연급 여배우 3명과 세계적인 팝스타도 출연하는 영화이다. 8명의 여배우들 사이에서 중년의 조연급 연기자인 사라 폴슨의 순위는 7위. 인도계 배우인 민디 켈링보다도 순위가 낮고, 8위인 아콰피나라는 동양계 배우는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다. 사라 폴슨은 언제나 그랬듯 이번 영화에서도 조연이었고, 시나리오의 허술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이유는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그녀의 캐랙터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 둔 직장인들이 꿈꾸는 순간 - "빨리 돌아와.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


태미는 현실 세계 여성들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았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 두어야만 했고 아이들을 기르며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다. 아마도 데비가 태미에게 복귀를 권유하는 장면은 육아 때문에 할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어야만 했던 모든 여성들의 로망 일 것이다. 갑자기 예전 직장 상사가 찾아온다. 그리고는 “빨리 돌아와.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라고 말한다. 참 멋진 순간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데비가 모델로 위장하고, 루(케이트 블란쳇)가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더라도 태미에게 더 많은 시선이 가는 이유는 영화의 무대가 세계 최고의 이벤트 행사장이기 때문이다. 이벤트 행사장의 주인공은 이벤트 매니저들이고, 헤드셋을 끼고 현장을 지휘하는 그녀는 누가봐도 매력적이다. 스타 주연들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조연의 매력 따위는 꽁꽁 숨겨야 하건만 잘 숨겨지지가 않는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주방에선 요리사가 가장 빛나고 멋지고 무대에선 가수가 가장 아름답듯이 직장에선 일을 잘하는 사람이 가장 멋지다. 누가 그러던가? 남자 직장인이 가장 멋있어 보일 때는 불꺼진 사무실에서 양복 팔을 걷고 혼자 야근을 하고 있을 때라고… 만일 당신의 직장 상사가 밤이나 낮이나 평일이나 주말이나 당신을 불러 일을 시키고 있다면 분명 당신은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대단히 멋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


대기만성형 배우 새라 폴슨, 작년 개봉작 <런>의 주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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