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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Apr 28. 2022

빌 황 체포, 테슬라 급락, 그리고 영화 '마진 콜'

월가의 롤러코스터로 다시 떠오른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마진 콜' 이야기

월가가 시끄럽네요. 12조원 손실을 가져온 뒤 체포된 빌황,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선언 뒤 주가가 급락한 테슬라... 이들을 이어주는 키워드는 '마진 콜'(Margin Call) 입니다. 

마진 콜의 정의는 이렇게 되어 있네요.

"금융시장에서 자기 자금 비율이 투자 이전에 정해 놓은 유지 증거금 비율보다 떨어졌을 때, 자기 자금 비율을 초기 증거금 비율까지 올려야 하는 것"

무슨 뜻일까요? 

증거금 계좌에 돈이 모자라 '마진'이 너무 작아졌고, 따라서 돈을 채워넣으라는 전화가 오는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트위터를 사려고 하는데, 돈 빌린 뒤 테슬라 주가가 많이 떨어지면 전화를 받게 됩니다. 주식이든 뭐든 담보를 더 채워 넣으라고요.

이 전화가 바로 '마진 콜'인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머스크가 테슬라 주식을 더 팔아 돈을 채워넣든지 빚 못 갚겠다고 디폴트를 선언하든지 하는 상황이 되겠지요? 못 갚으면 은행은 담보로 잡았던 테슬라 주식을 팔려고 시장에 쏟아내겠지요? 그러면 주가는 더 폭락하겠지요?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테슬라 주가가 급락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재미삼아 다음 글도 참고해주세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연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했던 월가 금융인들에 대한 영화 <마진 콜>에 대해 제가 썼던 영화평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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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평론가가 본 영화 <마진 콜>


2004년이었다. 나는 월스트리트의 한 금융컨설팅 회사에서 인턴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투자은행인 골드먼 삭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하나 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측 보고서였다. 그 때 유가는 30달러 남짓이었는데, 시장에서는 그것도 너무 비싸다고 아우성이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유가는 정말로 100달러를 넘어섰다. 골드만 삭스는 옳았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 유가 상승의 배후에는 골드만 삭스가 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았다. 골드만 삭스가 석유 관련 금융상품을 대규모로 매수하고 나서, 유가가 오른다는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내면서, 석유 선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다른 투자은행들이 여기에 가담해 조직적으로 유가를 끌어올렸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든, 결과적으로 골드만 삭스와 그곳에서 일하는 은행가들, 그리고 그 투자자들은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쓸어담았다고 한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에서는 밤에는 일찍 불을 끄고 대중교통의 냉난방을 줄이면서 전기를 아껴쒀야 했다.


영화 <마진콜>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의 하루 동안 (아마도) 골드만 삭스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델로 만들어진 영화다. 골드만 삭스는 이 위기에서도 가장 먼저 위험자산을 시장에다 팔고 빠져 나와 안전하게 살아남은 투자은행으로 꼽힌다.


1. 금융인이 개보다 못한 이유


회사에 폭풍이 몰아친다. 위기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고, 흉흉한 소문이 나돈다.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서류가방을 잔뜩 들고 사무실에 들이닥친다. 경영진이 보낸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이들은 앉아서 일하는 회사원들 중 한 명씩을 회의실로 부른다. 그리고 해고 사실을 통보한다. 회의실에 있는 시간 동안 그의 회사 이메일 계정은 삭제되고, 휴대전화는 끊기고, 컴퓨터 접근권은 박탈된다. 그리고 퇴직에 따른 회사 쪽의 보상을 알려주면서, 새 출발을 위한 제 2의 인생 설계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은 <앞날을 바라보며>(Looking Ahead)라는 인생설계 팜플렛 하나를 들고 맨몸으로 회의실을 나선다. 참담한 표정으로 회사를 나서는 관록의 투자위험관리 전문가 에릭 데일(스탠리 투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마진콜>은 금융위기를 앞둔 월스트리트의 한 금융사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출발점이 그 배경이다. 영화는 그 사무실에 있는 트레이더(증권 중개인)의 80%가량이 해고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잠시, 영화에 나오지 않은 월스트리트 이야기를 해 보자. 2008년 금융위기 때 파산한 리먼브러더스 이야기다. 잘 알려졌다시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당시 미국발 금융위기의 신호탄이 됐다. 그 회사의 주요 간부들은 거품을 양산해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원흉으로 지목받았다.


그런데 파산 직전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배니티 페어>기사를 통해 살펴보자. 조 그레고리는 리먼브라더스의 명실상부한 2인자였다. 그의 사무실은 미국 뉴욕 맨해튼 본사에 있었다. 집이 교외에 있어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자, 그는 출퇴근용 개인 헬리콥터를 구입했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헬리콥터를 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는, 다시 수상비행기를 한 대 샀다. 맨해튼 옆의 강에 착륙하면 출근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2006년에는 우리 돈 210억원을 주고 집을 한 채 구입했다. 단골 식당에서는 22만원짜리 식사를 하고, 기분이 좋은 날은 팁으로 200만원을 주기도 했다. 집에서 하는 저녁식사 때에는 4600달러(500만 원)짜리 접시에 요리를 담아 먹었다.


조는 월스트리트에서는 이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금융인들은 로버트 드 니로가 동업해 차린 맨해튼의 정통 일식당 ‘노부’에서 100그램에 10만원짜리 와규 스테이크를 즐겼다. ‘뉴 아메리칸 퀴진’의 대표주자인 레스토랑 ‘크래프트’에 가서는 한 병에 220만원짜리 ‘스크리밍 이글 까베르네 쇼비뇽’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했다. 일식당 ‘마사’에서는 세금과 팁과 음료수를 빼고 메인 메뉴만 66만원짜리 식사가 인기였다. 


<마진 콜>에서 회사 중간관리자인 윌 에머슨(폴 베타니)의 연봉은 28억여원이다. 그는 그 돈을 한 해 만에 쉽게 써버린다. 세금으로 절반을 내고 난 뒤, 부모님 몫과 집과 차와 옷과 식사와 유흥비를 빼고 나니 금세 4억여 원만 남는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 월스트리트의 소비 행태를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회장인 존 털드(제레미 아이언스)의 연봉은 960억원 가량 된다. 신참인 세스 브렉맨(펜 배글리)의 연봉도 2억 7천만원이나 된다.


미국발 금융위기 뒤 투자은행들의 행태는 모든 미국 언론의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었다. 은행들이 돈을 빌려줬다 회수한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해고되고 있었다. 그 기업들에는 미국인들의 연금이 상당부분 투자되어 있었고, 이 기업들의 파산과 함께 미국인들의 미래도 함께 파산했다. 은행들이 빌려준 돈으로 집을 샀던 이들은 집값이 폭락하면서 엄청나게 높은 이자를 물거나 대출을 강제로 되갚게 됐고, 결국 상당수가 집을 빼앗겼다. 


이 은행들과 이 은행에서 일하는 금융인들이 벌어들이던 천문학적인 연봉이 다시 관심거리가 됐다. 한 때 그 연봉은 평범한 미국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내가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나앉게 된 상황에서는, 이 연봉은 고급 도둑질로 비춰졌다. 이런 정서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까지 이어진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직원의 80%를 해고한 날, 윌 에머슨은 직속 상사인 샘 로저스(케빈 스페이시)의 방에 들어가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샘은 34년을 이 회사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며 돈 앞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승부사다. 그런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당황스러워한다. 잠시 뒤 샘은 그 눈물의 이유를 밝힌다. 그의 애완견이 암 판정을 받았다고. 


마음을 추스른 샘은 부서에 남은 직원 33명을 모아 짤막한 연설을 한다. “당신들에게 기회가 왔다. 떠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당신들이 더 나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이런 일은 마지막이 아닐 것이고, 이런 방법으로 이 회사는 107년 동안 성장했다.” 샘은 박수 속에 밝은 표정으로 회의를 마무리한다. 아픈 개를 위한 눈물은 있지만 해고된 동료 금융인을 위한 눈물은 없었다.


2. 회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방법으로 회사가 107년 동안 성장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정수를 보여주는 명대사다. 자본주의 사회는 ‘법인’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에게 인격을 부여한다. 그리고 회사는 스스로 살아남고 성장하려 노력한다. 그 노력의 과정에서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고, 현란한 광고카피로 소비자를 유혹하기도 하고, 직원을 해고하기도 하고, 법을 지키기도 하고 어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람처럼 생존하고 성장하고 사망한다.


기업이 점점 힘이 세지면,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노동자), 그 곳에서 만든 물건을 사는 사람(소비자), 그 곳 근처에 사는 사람(지역주민)의 이해관계보다 회사 스스로의 이해관계가 더 많이 관철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해고도 폭리도 환경파괴도 더 쉬워진다.


묘하게도 우리는 개인에게는 윤리와 도덕을 강하게 요구하지만 기업에게는 너그러운 편이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지’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용서되곤 한다. 배임과 횡령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재벌 총수가 ‘경제 상황이 엄중하니…’ 운운하는 판결을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경영자 개인에 대해서도 이렇게 관대한데, 하물며 사람이 아닌 기업 자체에 대해서야 말할 것도 없다. 기업도 사람처럼 생존하고 성장하도록 법적, 제도적 지원을 받는데, 정작 윤리와 도덕은 크게 요구 받지 않는 상황이다. 


오히려 기업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에게는 충성의 윤리가 강조된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본분을 다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윤리에 어긋난다는 식이다. 법인의 이익, 법인의 윤리가 개인의 이익, 개인의 윤리를 압도하는 묘한 상황이다. 사람이 만들어 낸 제도가 사람을 뒤쫓고 사람과 싸우는 <터미네이터>적인 상황 같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사람이 고안한 가상의 세계가 현실세계를 압도하는 <매트릭스>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개를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지만 해고된 동료를 위해서는 그러지 않는 행동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3. ‘공정’(fair)의 함정


물론 샘에게도 회사에게도 할 말은 있다. ‘공정함’(fair)의 윤리가 그것이다.


하루아침에 해고된 에릭 데일은 USB메모리 하나를 부하직원이던 피터 설리반(재커리 퀸토)에게 건넨다. 그 자료를 살펴보던 피터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MBS)의 가치가 폭락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 있는 상태이며, 그 손실을 모두 합하면 회사 전체를 팔아도 메우지 못할 정도라는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보고받은 회장은 그 자산을 하루 만에 모두 시장에 팔아 치우라고 지시한다. 한꺼번에 물량을 내놓으면 헐값이 될 수 밖에 없지만, 이미 값어치가 거의 없는 자산이므로 회사에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매수자들은 보석을 헐값에 샀다고 좋아할 지 모른다. 그리고 하루 뒤에는 쓰레기를 고가에 샀다는 사실을 알고는 또 다른 매수자를 찾아 나설 것이다. 결국 이렇게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시장은 붕괴되고 투자자들은 파산하고 말 것이다. 그 방아쇠를 처음 당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겠다는 사람(willing buyers)에게 공정한 시장 가격(fair market price)에 팔겠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샘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능력 없는 사람을 해고하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더 큰 보상을 주는 공정한 인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있었던 제 18대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은 ‘경제민주화’를 앞에 내 걸었다. 당선인은 ‘공정한 시장’을 강조했다. 워낙 불공정한 거래가 많으니 공정성만 잘 달성하더라도 경제민주화가 되는 것 아니냐는 뜻이라고 해석된다.


그 ‘공정성’의 함정이 이 영화에 숨어 있다. 미국 시장은 공정성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다. 미국에서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총수는 없다. 가족에게 일감 몰아주고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일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소비자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투자자의 대박 심리를 이용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그것을 나눠 가지고 흥청망청 쓰는 집단은 있다. 그 일을 매우 ‘공정하게’한다고 이들은 믿는다. 


회장 존 털드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먼저 하거나, 가장 똑똑하게 하거나, 속여야 돈을 번다. 그러나 우리는 속이지는 않는다.” 맞다. 그들은 누군가 했을 일을 가장 먼저 하면서 돈을 벌어들일 뿐이다. 그게 카지노 자본주의의 본질 아닌가? 최소한 공정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영화 속 중간관리자인 윌 에머슨도 부하직원 세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 능력이 없는 차와 집을 원하는데, 그 때 우리가 필요하지. 우리가 손을 대면 그들이 왕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니까.” 집값 거품을 일으켜 부자가 된 것처럼 돈을 쓰게 만들어주고, 거액 대출을 내주어서 큰 집과 차를 살 수 있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거품이 꺼지면 파산의 아픔을 겪어야 하기는 하지만, 이건 불공정한 거래는 아니다. 사람들의 욕망을 ‘공정하게’ 충족시켜주는 ‘가치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들이 손을 떼고 거품이 꺼지는 일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다들 거품 속에 살고 싶어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빈자보다는 불의한 사회의 부자가 되기를 원하며, 동료가 해고되더라도 내 연봉이 오르기만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그런 욕망을 ‘공정하게’ 채워주는, 놀랄 만큼 효율적인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과정의 공정함을 되찾은 시장이 결과의 정의로움, 결과의 평화로움까지 가지려면, 결국 시장 참여자들이 변신해야 한다. 탐욕의 동물처럼 묘사되는 월가 투자은행가들이 나타난 배경에는, 결국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대로 더 넓은 집과 더 큰 차와 더 많은 냉장고와 더 비싼 휴대전화를 소유하는 데서 삶의 기쁨을 찾는 개인들이 있다.


4. 회사원을 위한 변명


전태일은 1970년 서울 평화시장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다가 분신했다. 그때 노동자는 저임금에 장시간 부릴 수 있는 기계처럼 취급됐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그의 울부짖음은 한국 노동운동의 전설이 됐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맥락은 좀 다르지만 연봉 수십억원을 받는 마진콜의 등장인물들도 기계다. 금융인은 투자자의 욕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행동을 해야 하는 기계다. 우리 회사원들도 사실 기계다. 주주와 경영자의 욕망을 최대한 구현해줘야 하는 기계다. 자신의 욕구와 윤리는 일과 시간에는 꾹 참았다가 퇴근 후에만 내세울 수 있다. 꾹 참을수록 두둑해지는 월급봉투의 두께가 그 퇴근 후 자유의 양과 질을 좌우한다. 이런 기계들의 세계, 그 자본주의 심장부에 위기가 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까? 그 상황을 <마진콜>은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계들의 세계에서 행복할까? 다시 주인이 되는 방법은 없을까? 공항을 짓고 도로를 놓고 땅값을 올려보겠다는 욕망에서 시작해 대통령을 뽑고 법을 만드는 정치가 아니라, 윤리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토론하며 선거를 치르고 제도를 바꾸는 정치는 가능할까? 대가 없이 기부하고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부자들이 나타날 수 있을까? 소비자와 노동자를 주인으로 섬기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을까?


나는 퇴근 뒤에 조금 덜 쓰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일터에서 주인답게 일하고 싶은 회사원이 될 수 있을까?


현실세계에서는 우리는 누구나 개와 사람 사이에서 산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맹아는 있다. 이익보다 사회기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기업과 공동체 원리를 기업활동에 구현하는 협동조합이 늘어나고 있다. 가난을 해결하는 데 돈을 빌려주는 사회투자도 생겨나고 있다. 사회책임경영을 구현하겠다는 기업도 많아지고, 민간 기부액도 늘어난다. 어쩌면 새로운 정치도, 좌절과 고통 속에서 이미 그 싹을 틔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회사원들의 선택지도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하게 커지고 있다.


보론. 월스트리트에서 마진 콜까지, 금융영화 열전


월스트리트 금융가의 맨 얼굴을 그리는 영화는 많았다. 1987년 올리버 스톤 감독이 만든 <월스트리트>는 역사적 작품이다. 주인공 고든 게코가 ‘탐욕은 선이다’(Greed is good)이라고 외쳤던 명연설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찰스 퍼거슨 감독은 <인사이드 잡>으로 오스카 상을 탔었고, 최근에 마이클 무어 감독은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라는 영화로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고발했다.


그러나 <마진콜>은 이들 영화보다 돋보인다. 현실감이 있어서다. 다른 영화들에서와 달리, <마진콜>은 이들을 악마로 그리지 않아서다.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은 탐욕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그들도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인간이다. 시장바닥의 장사꾼이 갖고 있는 상인정신을 그들도 갖고 있을 뿐이다. 회사원이 갖고 있는 기계적 충성심을 그들도 갖고 있을 뿐이다.


<마진콜>의 감독인 JC 챈더의 아버지는 월가 투자은행 메릴린치에서 40년 가까이 일했다. 그 모습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캐릭터인 듯한 영화 속 인물들은 사악하게 그려지지 않다. 오히려 자기 임무에 충실하다. 샘 로저스는 부하직원인 트레이더들에게 가치 없는 자산을 한꺼번에 팔아치워야 하는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독려한다. 그들이 해야 할 일과 받을 보상을 정확하게 미리 알려주고, 책임있게 집행하도록 한다. 정리해고 뒤 남은 직원들에게는 감동적인 격려 연설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동기에 있는 돈에 대한 욕망 역시 아주 현실감있게 그려낸다. 욕망에 대해 충실하되, 누구도 속이지는 않는 사람들, 영화 속 금융인은 그런 사람들이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던 MBS(주택담보부증권)은 우리가 가진 자산에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준다. 즉 가진 것을 더 부풀려 소비할 수 있게 해준다. 욕망에 지렛대를 대주는 셈이다. 이게 바로 영화에서 정의한 금융의 기능이다. 지렛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구일 뿐이다. 무엇을 떠받치느냐가 중요하다. 탐욕을 떠받칠 것인가, 아니면 선의와 이타심을 떠받칠 것인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이게 <마진 콜>을 만든 챈들러 감독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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