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 협상 아티클 시리즈
HBR 협상 아티클 시리즈
한 외교관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는 싱가포르라는 작은 나라를 대표하고 있었지만, 그 앞에 놓인 의제들은 국가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들이었다. 유엔 해양법 회의, 리우 환경 정상회의, 미국과 싱가포르 간의 자유무역협정 협상 같은 자리였다. 그는 단지 한 명의 외교관이 아니라, 국가의 이해를 지켜야 하는 협상가였다. 방 안에는 각국 대표들이 긴장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준비된 서류와 두꺼운 문건이 탁자 위에 쌓여 있었다. 누구도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가 처한 조건은 녹록지 않았다. 상대국들은 대규모 연구진과 풍부한 자원을 동원해 협상장을 준비했다.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작은 팀과 제한된 자료로 맞서야 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첫 번째 태도는 포기나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는 준비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불러모았다. 법률가, 기술자, 재무 담당자 등이 그의 곁에 앉았다. 협상이 개인의 역량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팀의 힘으로 완성된다는 점을 그는 알고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로 같은 데이터를 두고도 각국 대표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수치와 사실은 존재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다. 이 장면은 협상장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갈등의 본질은 이해관계 그 자체라기보다는 사실을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에 있다는 점이었다. 때로는 강한 억양과 차가운 어조가 방 안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협상은 논리적 설득의 공간인 동시에 감정과 문화가 교차하는 무대였다.
협상은 길어졌다. 수십 명이 한 자리에 모여 합의를 시도했지만 작은 쟁점 하나에도 의견은 갈라졌다. 교착 상태는 반복되었고, 협상장은 때로는 정적에 잠기기도 했다. 큰 방에서 모든 이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았다. 이 장면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는 협상가라기보다 탐정처럼 보였다. 눈앞의 단서를 조합하며 해결책을 찾아 나갔다. 준비는 당연히 필수였고, 그 준비를 팀워크로 보강했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과제가 있었다. 그는 상대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불필요한 긴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제3의 방법, 곧 교육을 도입했다. 이는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상대와 지식을 공유하며 협상 기반을 함께 다지는 방식이었다. 협상장에서 전문가들이 나서서 상대에게 기술적·법률적 맥락을 설명했다. 그러자 차갑던 표정이 조금씩 풀리고, 대화는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는 또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큰 회의가 막히면 핵심 인물 몇 명을 소규모로 불러 별도의 대화를 가졌다. 작은 방에서의 논의는 오히려 명확했고, 합의가 빠르게 도출되었다. 이렇게 얻어진 부분적 합의는 이후 큰 협상장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작은 합의가 전체 퍼즐의 중심 조각이 되는 순간이었다.
관찰자의 눈에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의 다층적 접근 방식이었다. 그는 단일 협상 테이블만 바라보지 않았다. 동시에 정부 부처, 기업, NGO와도 병렬적으로 접촉하며 작은 거래들을 이어갔다. 이러한 병행 협상은 한쪽에서 얻은 신뢰와 진전을 다른 쪽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전체 합의가 도출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와 같은 다층적 전략이 있었다.
그가 보여준 방식은 국제 협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 간 계약 협상이나 인수합병, 혹은 사내 갈등 해결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준비와 사실 확인, 전문가가 함께하는 팀워크, 핵심 인물과의 소규모 합의,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병행하는 다층적 대화. 이 원칙들은 일상적인 협상 현장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
그의 태도는 협상을 단순한 대결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과정으로 바꿔 놓았다. 상대를 패배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함께 해답을 찾는 파트너로 바라보았다. 협상장에서 보여준 차분한 태도, 체계적인 준비, 그리고 상대를 포함하는 교육적 접근은 협상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협상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길을 함께 모색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의 협상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몇 가지 분명한 교훈을 얻게 된다. 협상은 준비 없이는 불가능하다. 협상은 개인이 아니라 팀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협상은 사실을 공유하는 데서 출발하며, 문화와 감정을 다루는 지능이 필요하다. 때로는 작은 그룹에서의 합의가 큰 합의로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협상은 하나의 테이블을 넘어 다층적으로 진행될 때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은 국제 협상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기업과 조직의 다양한 협상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협상을 지켜본 관찰자의 눈에는, Tommy Koh라는 협상가가 보여준 태도가 단순한 전술의 집합이 아니라 협상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방식으로 남았다. 그는 협상을 탐색하고 조율하며, 결국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길을 찾는 과정으로 재해석했다. 그 장면이야말로 ‘위대한 협상가’라는 이름이 붙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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