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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Nov 11. 2018

취향의 가격

영화 <소공녀>(2017) 리뷰


주인공 미소의 취향은 분명하다. 확실한 취향 덕분에 그녀가 하는 선택 또한 '유니크'하다. 그녀는 하우스푸어가 넘쳐나는 이 시점에 과감하게 집을 포기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위스키, 담배를 선택한다. 위스키,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미소의 표정엔 진심이 담겨있다.


정말? 너 정말 그거면 돼?

라고 재차 물어도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같은 대답을 할 것만 같다.


담배값이 2천 원 올라 원래 피던 에세를 포기하고 디스를 사는 미소


미소의 유니크한 선택은 담배값이 2천500원에서 2천 원 올라 4,500원이 되면서 시작된다. 가사도우미로 일당 4만 5천 원을 버는 미소에게 담배값은 수입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 그녀의 또 다른 행복 위스키 한 잔의 가격은 1만 2,000원으로 수입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미소가 행복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을 정리해보면 하루 1만 6천 원이다. 일당 4만 5천 원에서 1만 6천 원을 제외한 2만 원 9천 원으로 집세, 세금, 식대,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막기 위해 먹는 약값을 지불하면 미소에게 남는 것은 없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생길 뿐.



취향의 가격


영화에는 미소가 다이어리에 가계부를 쓰는 장면이 몇 번 등장한다.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기 바로 직전, 미소가 인상된 담배값을 위해 오른 집세를 포기했을 때 한 번, 위스키 가격이 2천 원 올랐을 때 정도다.


가계부 쓰는 미소


미소가 가계부를 적을 때마다 내 머리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 수입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취미와 취향을 위한 비용을 줄인다. 내가 미소였다면 가장 먼저 줄였을 것이 위스키와 담배를 위한 비용이었을 것이다. 당장 줄이기 어렵다면 위스키는 이틀에 한 번만 마신다거나, 담배 한 갑을 이틀에 나눠 피운다거나.



미소가 담배를 입에 물 때마다 괜히 내 마음속이 조마조마했다. 소비를 줄일 수 없다면 일을 더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수입을 늘리면 확실히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하지만 미소는 절대 일을 늘리지 않는다. 물가는 오르지만 미소의 수입은 전혀 나아질 줄을 몰랐다. 쓸데없이 과한 몰입을 해버려 슬슬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흐르는 세월의 가격


집을 포기한 미소는 대학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을 찾아간다. 가장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잠자리와 화장실을 부탁한다. 이제 모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친구들은 방 한 칸 구할 수 없는 미소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너무도 다른 삶을 선택한 미소에게 대놓고 불편한 티를 내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미소의 눈에는 그들 모두 삭막한 삶 속에서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잠자리와 화장실을 제공받는 대신 미소는 집안일을 돕거나 따듯한 밥을 해주며 신세를 갚는다.


모두 변했지만 확고한 취향 덕에 스무 살 모습 그대로인 미소를 보며 친구들은 양가적인 감정을 받는다. 미소와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불쌍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여전히 애틋한 감정을 받기도 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듯함에 울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에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미소가 여전히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선택의 가격


우리 모두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선택을 존중받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저마다의 값을 치르며 신중하게 선택을 하는데 우린 상대가 치른 값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나만 하더라도 영화 속 주인공 미소의 독특한 선택에 잔뜩 감정을 이입해가며 숨 막혀하지 않았는가. 영화가 끝날 무렵이 돼서야 어렴풋 미소의 취향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랑하던 남자 친구를 외국으로 보내는 장면에서였다. 오랜 친구들에게 박대를 당하면서도 울지 않았던 미소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를 때 그녀가 치른 선택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친구에게 삼시세끼 초밥만 먹고살아도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삶을 영위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내게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그렇게 살 수 있어. 네가 초밥을 먹는 삶이 행복에 있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되거든."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내 취향의 가격은 얼마일까? 취향을 선택한 가격은 얼마일까? 과연 이 값을 숫자로 환산할 수 있을까?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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