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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엘리 Jul 07. 2021

둥글게 둥글게

둥글어진 건 결국...



둥글게 둥글게 살자.

뾰족뾰족한 마음 여기저기 부딪히며 깨달은 것은 더 날카로워지기보다는 둥글둥글해지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행복하다는 것.


결국 둥글어진 건 내 몸이지만.





와일드하다. 내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다들 팔짱 끼고 화장실 가고 매점 갈 때 나는 화장실도 혼자 가는 게 편했고, 매점 갈 때도 친구에게 먼저 팔짱 끼는 일 따위는 없을 정도로 보통의 여자아이들이 하는 행동들이 낯간지럽고 귀찮았다. 싫고 좋고 가 분명했고 누가 뭐라든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겁 없는 아이였다. 스무 살, 성인이 되어서는 점점 더 무서울 게 없었다. 좋은 점도 분명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제멋대로 살았구나 싶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기분파에 기고만장한 성격 탓에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나는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도 손님들께 막말 시전을 한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이따금씩 그때 일이 떠오르면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가 밀려온다.

한 번은 긴 머리카락을 묶지도 안은 채 서빙을 한 적이 있다. 자주 오던 단골손님 왈.


"머리 좀 잘라야겠네."

"아저씨가 뭔데 머리를 자르라 마라에요?"


지금 같았으면 아차 싶어서 머리를 얼른 묶었을 거다. 그리고 한마디 하긴 했겠지. 아이고, 죄송해요. 머리 감고 깜빡했어요. 뭘 자르라고 까지 해요. 묶음 되지. 이러곤 그냥 웃으면서 넘겼을 것이다. 그 당시 손님은 얼굴이 시뻘게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나름 친했던 손님이 아니었으면 우리 식당의 발길을 뚝 끊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한 번은 5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 손님이 내게


"아가씨, 물 좀 가져와봐."


딱 이렇게 얘기했다. 분명 물 가져오라고 하는 건데, 술집 아가씨 부르는 듯한 말투에 화가 난 나는 손님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 뭐요? 아가씨, 물 좀 가져와봐?"


그 뒤에는 내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고, 그 손님이 직접 물을 가져간 것만 기억난다. 아마도 엄마 식당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잘렸을 거다. 그 외에도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성격이 드세서 그렇지 나름대로 싹싹하다고 소문이 나있어 식당이 망하지는 않았다(어쩌면 내 성격과는 별개로 엄마의 음식 솜씨와 인터넷 커뮤니티가 덜 발달되어있는 상태라 망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거나 상처 받는 일들은 여전히 있었다. 아주 가끔 못 참고 들이박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참아 왔다. 몇 번의 직장을 거치면서 부조리한 일들을 겪기도, 목격하기도 했는데 그럴 땐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아 그만두었다. 그만두지 않았으면 뉴스에 날 뻔한 사건도 있었으니 천만다행이었는지도.


어쨌든 나이가 한 살씩 먹어가며 이리저리 부딪히다 보니 뾰족하고 까칠하게 반응했을만한 일들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아량 혹은 노하우가 생기기도 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도저히 납득을 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 가며 상처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이라 문득 생각나거나, 가슴이 아리기도 하지만 마음가짐을 달리 한 뒤로는 그 빈도 또한 적어졌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람들, 나와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니 저절로 둥글둥글한 성격이 되어간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예전에 나를 알던 사람들은 정말 '유해졌다, 사람 됐다'라고 하는데, 그래 인정. 그때는 한 마리 짐승이었지. 그러니 계속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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