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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엘리 Aug 17. 2021

집 나간 고양이가 돌아왔다

14살 고양이의 세상 첫 외출



남편은 결혼 전부터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다. 정확히 말하면 키웠다기보다는 함께 생활한 것일 테지만. 어쨌든 초코와 밀키, 이렇게 두 마리를 키웠는데 초코가 귀가 들리지 않는 밀키를 자꾸 괴롭혀 할 수 없이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냈고 밀키는 지금까지도 쭉 함께 해오고 있다.


결혼을 하고 3년쯤 됐을 때였다. 밀키가 갑자기 힘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자는 줄만 알았는데 분명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불안한 마음에 동물 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검사를 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신부전증이란다. 게다가 6개월에서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한다.


항상 다른 방에 있어 얼굴 보는 날도 많지 않았고, 나한테 살갑게 다가오는 아이도 아니었지만 남편과는 9년을 함께한 아이였고, 나와도 3년을 함께 산 아이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 당시 나는 임신 8개월 차였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50개월이 되도록 밀키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가끔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일 때도 있긴 하지만 츄르라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팔팔해진다.


나름 잘 먹고 잘 자면서 잘 지내고 있는데 딱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면 털이 고르지 못하고, 털들이 뭉친 채 피부와 분리가 된다. 처음에는 피부병인 줄 알고 병원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신부전증에 걸린 고양이들이 그루밍을 잘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밀키가 신부전증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마취를 하고 미용을 했는데, 이후에는 밀키의 나이와 건강상태를 고려해 무마취 미용을 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들은 후로는 웬만하면 미용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몸의 상당 부분 피부와 털이 분리되어 가뜩이나 마른 밀키가 더 안타까웠다.


병원에서는 신경안정제를 투여해서 밀키가 나른해졌을 때 털을 깎이는 것을 제안했다. 전문 미용처럼 예쁘게 되진 않진 않았지만 전보다 말끔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동물 병원 원장님이 말씀하시길 신부전에 걸려 6개월에서 1년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아이가 3년을 넘게 살고 있는 것은 기적이라고 한다. 게다가 재검사 결과 그때보다 나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털이 많이 자랐는데 아무래도 14년을 살았고, 사람 나이로 치면 73세이니 신경안정제조차도 불안해 가끔 집에서만 털을 밀어주고 있다. 사실 신부전증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지 말라고 하는데 언제 고양이 별로 떠날지 몰라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잘 먹이자며 밀키가 가장 좋아하는 츄르도 먹이고 있다.


하루에 츄르 하나를 주는데 더 먹고 싶은지 밀키는 계속해서 냉장고 앞을 서성였다. 그러다 츄르가 다 떨어졌는데 한동안 먹이질 못했더니 더 이상 냉장고 앞에도 서 있지 않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츄르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역시나 밀키가 다시 냉장고 앞에서 야옹야옹 거리며 츄르를 달라고 떼를 썼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밀키가 엄청 똑똑하네. 집 나가도 잘만 찾아오겠어.'


15년 전 키우던 강아지가 시장에서 없어진 적이 있는데 혼자 집에 찾아와서 문을 두들기던 게 기억이 났고 밀키도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이틀 후, 오랜만에 환기를 시키려고 밀키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혹시 몰라 상자들로 현관 앞을 막아놓기까지 했다. 그때가 오후 5~6시쯤 되었던 것 같다.


남편이 오후 7시쯤 일어나 밥을 먹고 일을 나갔다 새벽 5시에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야옹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는 게 아닌가. 게다가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집안을 둘러볼 새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나 밀키였다.

밀키를 얼른 안고 들어와서 남편에게 문 열 때 밀키 나간 거 아니냐고, 못 봤냐고 물었다. 절대 아니란다. 그럼 못 봤을 리가 없다고.


그런데 오후 7시 반에 일 나가면서 옆집 문 앞에 우유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왜 우유가 놓여 있을까 잠시 생각했었다고도 했다. 아무래도 환기시키려고 문 열어 놓았을 때 나갔던 것 같다. 발을 보니 잠시 나갔다고 하기엔 꽤나 지저분하기도 했다. 남편은 현관문을 열 때의 불빛을 보고 따라온 것 같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아파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하튼 거의 12시간 가까이 밖에 있었다는 건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병원에 갈 때 빼고는 바깥세상 구경 한 번 못해 본 아이인데. 안쓰러운 마음에 츄르를 세 개나 주었다. 더 달라고 하는 거 그나마 자제한 게 세 개다.


조용히 구석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은 아이라고는 하지만 나간 지 12시간이 되도록 몰랐다니 진짜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밀키의 목소리를 바로 알아들어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새벽 5시에 현관문을 열리는 없었을 테니까. 그 후로 한 번씩 밀키가 집에 잘 있나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으로 세상 구경한 14살의 고양이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건 진짜 기적이다. 아무래도 내가 잠시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 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어쨌든 잘 돌아왔으니 앞으로도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겠다. 그런 김에 오늘은 츄르 두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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