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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 May 07. 2023

할머니와 뚜벅이 여행 - 2

강릉 2

1편에서 호언장담했던 완벽에 가까웠던 나의 계획은 할머니의 배꼽시계에 완전히 무너졌다.  도착하자마자 강원도 음식인 장칼국수와 옹심이를 선보이고 싶었지만 강릉역 앞, 엎어지면 닳을 곳에 있는 시골밥상 집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뒤뚱뒤뚱 발걸음은 확신에 찼다. 계획은 무너졌지만 할머니의 배꼽시계가 정각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정함을 확인받는 기분이 들곤 한다. 또 한 가지, 역시 택시기사님의 맛집은 손맛이 검증 완료다.


예정대로라면 옹심이와 장칼국수를 먹고 오죽헌에서 휠체어를 빌려 관광하는 것이 일정이었다마는 계획은 무슨, 여행은 이미 옹심이에서 백반으로 변경된 이후부터 ‘할머니 마음대로 하는 여행’으로 변경되었다. 많은 이동수단과 장거리로 지친 할머니는 바로 숙소로 들어가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우리 숙소는 주변 상권이 없는 조용한 바닷가이기에 몇 가지 장을 봐야 했다.

나는 7살 때부터 12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와 이모의 손에 자랐다. 그때 우리 할머니는 튼튼한 두 다리와 척추로 온 세상을 여행하며 다녔다. 여행에서 돌아오실 때는 항상 해산물을 사서 오셨다. 반건조 오징어나 생선, 젓갈, 명태 같은 것들을 꼭 사다 주셨다. 아침이나 저녁 상에는 생선을 구워주시며 손수 뼈를 발라 내 고봉밥 위에 올려주시고, 또 다른 날은 생선찜을, 또 어떤 날은 알이 꽉 찬 꽃게탕을 끓여주시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시며 '너는 나를 닮았어, 히히히' 웃곤 하신다. 옛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냉동게와 젓갈, 콩나물, 회와 쌀 그리고 참외 등을 사서 숙소의 문을 열었다.


내가 숙소를 정하는 기준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생선을 구울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가려진다. 할머니와 함께 하는 여행을 다닐 때는 할머니 입맛에 최대한 맞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사는 집과 할머니의 집이 가깝기는 하지만 우리와 따로 사시는 할머니 혼자 밥을 챙겨드시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텔보다는 요리가 가능한 펜션을 선호한다. 강릉 여행에서는 숯불 생선구이를 해드리기 위해 펜션을 예약했다. 운이 좋게도 펜션 사장님께서 버너를 흔쾌히 빌려주셨고 바닷가 바로 앞, 펜션 마당에서 버너와 팬을 이용하여 구워 먹을 수 있게 편의를 봐주셨다. 사장님 덕분에 할머니는 4박 5일 거의 매일 생선을 구워드실 수 있었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힘든 기색을 비치셨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10년 전 디스크 수술을 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데다가, 우리는 ktx 두대를 환승하고 택시를 타야 하는 뚜벅이 여행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도통 움직이기 힘드셨을 몸을 이끌고 큰 용기를 내어 출발한 여행이니 그럴 만도 하셨다. 할머니가 누워서 쉬는 동안 나는 아까 산 냉동 게를 해동하여 콩나물과 고추장, 마늘 등을 넣고 볶아 내었다. 말 그대로 게 볶음을 재빠르게 요리해서 막걸리와 노래로 흥을 돋울 계획이었다. 할머니는 연신 이가 아프다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게 내음에 K.O. 당했다. 그렇게 우리는 막걸리와 게, 그리고 나훈아 할아버지 노래를 들으며 강릉 여행의 첫 시작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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