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스위스에서 스톡홀름 가는 비행기에서
지난 3년 동안 나의 실명보다 회사에서 쓰는 닉네임을 압도적으로 많이 들었다. 2년을 자취하다 보니 집에 가도 딱히 날 부르는 사람이 없었기도 하고, 회사 동료들이 아니라 판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나를 닉네임으로 불렀다. 1년 정도 셰어하우스에 살 때는 모두가 영어 이름을 쓰는 게 더 재밌고 편하다고 해서, 집에서 마저도 나를 닉네임으로 불렀다. 처음에는 내 이름이 솔라인 것이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내 실명을 부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병원에 진료받으러 갔을 때뿐이었다.
이름은 여러모로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독일에 갔을 때는 외국인들이 내 이름을 진짜 어려워했지만, 나는 왠지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도 발음하기 어려운 독일 이름, 프랑스 이름들을 기꺼이 외우고 부르니까 그들도 나를 위해 그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맘으로 영어 이름을 끝까지 안 썼다. 발음하기 어려워해도 잘할 때까지 내 이름을 계속 가르쳐줬다. 그렇게 까지 했는데 한국에서 한국회사에 다니면서 영어 이름으로 살게 될 줄이야... 가끔은 내가 너무 솔라로 지내는 시간이 많은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이름이라 듣기 싫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자각하게 하는 이름인 것은 분명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사에 입사한 지 6개월도 채 안되어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외부에서는 이 사건을 분사를 했다고 표현하지만, 나 개인에게는 한 회사의 탄생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기업의 탄생과 성장과정에 관심을 갖는 것이 원래 내 전공이다 보니 이 경험은 나에겐 좀 더 특별했다. 게다가 학부생인데도 M&A나 PMI (post-merger integration)의 세계가 궁금해서 실제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무작정 찾아가 봤을 정도로, 난 이상하게 금융상품이나 금융업계 보다 기업의 탄생과 성장과정에 좀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 졸업 즈음엔 스타트업에 꽂혀서, 직접 해보려고도 하고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스타트업에서 시작하게 된 것 인지도 모르겠다.
초반 2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모두가 서로 얼굴과 이름을 아는 규모에서 시작해, 어느새 새로 온 분들을 알 수 없게 되고 나중엔 두 번이나 사무실을 이사해야 하는 규모가 되기까지 다이나믹한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속한 팀과 회사의 인원이 조금씩 바뀔 때마다 매번 피부로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들은 당장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다 보니 학교 다닐 땐 나와 제일 무관한 과목 같던 HR의 영역에서 흥미로운 관점들이 많이 생겼다. 직업을 바꿨으니 개발에 대한 공부만 신경 쓰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이 제일 빗나간 영역이었다.
내가 타고 있는 로켓은 여태껏 비행 중에 별의별 사건을 다 겪었다. 이제는 ‘남들이 MBA에서나 다룰 케이스를 직접 겪는 일이 다 있네. 공짜로 배우고 좋네.’라고 생각하면서 넘기는 요령도 생겼다. 배울 점이 생기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 내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로켓이 요동칠 때마다 탑승객인 나는 그 안에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 해야 할 일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로켓이 마주하는 온갖 기류와 장애물들은 한 사람의 탑승객이 감당하기에는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내가 창업한 회사도 아닌데 이 정도인데, 직접 띄운 로켓이 이럴 때는 어떻게 감당해야 되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여러 사람들과 일해 보고 나서 회사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동료들과 일하고 싶다. 물론 이 회사도 인간계에 있는 여러 회사 중 하나인 만큼 모두가 다 천사인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때로는 그렇지 못한 순간이 많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럼에도 회사를 떠올렸을 때 너무 가기 싫은데 마지못해 끌려가는 기분이 들지 않고, 심각한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다수의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전에 회사에 다니면서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기분은 나에게 회사 생활 건강 지표가 되었다. 좋은 사람이 뭘까 정확히 정의해 내긴 어렵지만, 차라리 그 반대를 설명하기는 쉽다. 회사 크루들 다수를 가만히 떠올렸을 때, 그 사람들의 존재가 딱히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전에는 회사 내 소수의 사람들만 좋은 존재였고, 다수의 사람들은 각각 여러 가지 이유로 생각만으로도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존재로 다가왔다. 과거에는 그런 극소수를 희망의 지푸라기 삼아 억지로 꾸역꾸역 회사를 다녔다면, 지금은 적어도 그렇지는 않다. 내가 창업해 내가 채용한 사람들이 아닌 조합에서 다수의 좋은 사람들과 3년 동안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
닉네임으로 지낸 시간만큼 내 이름으로 지낸 시간은 사라졌다. 단순히 시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사라진 것만 같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절대적으로 긴 시간을 닉네임으로 지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만큼 회사에 다니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나로 지내는 데에 내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쏟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안식휴가를 시작하고 나서야 내가 이렇게 지내왔다는 걸 깨달았고, 처음 만난 여행자들에게 나를 실명으로 소개하면서 일과 상관없이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넥스트에서는 강의가 없고 과제가 없어도 늘 뭔가를 배우고, 만들고 있었다. 막판엔 청강을 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넥스트 친구들이랑 하는 얘기의 팔 할은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어떡하지,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내가 해내야 하는 업무가 내 역량을 초과하는 것들이라서 반 강제적으로 배우고 학습해 가면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회사가 항공기에서 로켓으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날마다 제정신을 붙잡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들었다. 탑승객들이 늘어날 때마다 자리를 안내하고, 로켓이 출발하게 할 수 있게 뭐든 만들어 보려 애쓰는 과정이 나에겐 최우선이 되어버렸다. 그것만으로도 내 에너지는 집에 가면 바닥나버렸고, 지각 안 하고 출근이나 잘 해내면 다행인 수준이 되었다. 살면서 제일 강력한 내적 동기로 학습했던 넥스트 직후라서 그런지, 학습에 대한 우선순위를 낮춘 나 스스로의 민낯을 마주할 때마다 그냥 외면해버리고 싶을 만큼 싫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 현상은 직업인으로서 내 자존감을 낮추는 데 일조했고 우울감을 안겨다 주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일과 쉼의 중심을 잃게 되는 균형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기계처럼 5:5, 어떤 사람은 3:7, 1:9... 문제는 이 균형점이 무너져 내려서 주저앉은 시소처럼 되어버릴 때 생겨났다. 보통은 일이 쿵 하고 더 무거워질 때의 경우가 문제다. 단순히 일의 절대적인 양과 시간뿐만 아니라, 개인의 여러 상태에 따라 갑자기 일이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살다 보면 개인에 작용하는 중력이 갑자기 달라지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갑작스레 아프다던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거나, 집에 신경 써야 할 일이 생겼거나... 이런 경우 원래 하던 것보다 심지어 적게 일해도 균형이 무너져올 수 있다. 나도 몇 번 정도 이런 순간이 찾아왔는데 대부분은 몸이 아픈 것으로 표출되었다. 몸이 먼저 못 견디고 파업을 해버리는 것이다.
처음엔 다시 균형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잘 몰랐다. 난 취미도 뚜렷한 것이 아니고 체력이 안 따라주니 주말에 나가 노는 것도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아직도 여러 방법을 시도하는 중이지만 높은 확률로 효과가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운동하기, 햇볕에서 산책하기, 도심에서 벗어나기, 음악 들으며 걷기, 산책하며 대화하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패턴을 조금 앞당기기, 친구들과 티타임, 멀리사는 오랜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기... 아직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치트키는 찾지 못했다. 그래도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균형점을 잃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데에 반해, 균형점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훨씬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 나의 균형점에서 너무 멀어져 버리지 않도록 나를 잘 지켜보고, 돌봐주려고 한다.
P.S. 기술적인 회고를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덧붙여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개발자로서의 나는 3년 전에 비해서는 크게 발전했지만, 지나 온 시간에 대비해 많이 성장했는가를 따지자면 냉정하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아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하고 싶은 게 뭔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일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