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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Jun 30. 2020

우리 사이에 공용어가 없다.

17. 새로운 동료 루시의 등장

Mai 11, 2012 Donnerstag

하루 종일 이메일 속에 파묻혀 있다가 7시에 퇴근을 했다. 새로 온 인턴인 루시에게 일을 알려주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녀는 프랑스인이다. 그래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잘하고, 나는 그 두 언어를 못한다. 우리 둘 사이엔 만만하게 쓸 공용어가 없다. 이곳이 독일이고, 회사는 프랑스 회사지만, 나는 한국인이고, 그녀는 프랑스인이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둘 모두에게 불편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영어로 대화한다. 독일에 와서야 나는 영어가 미국의 것도, 영국의 것도 아닌 그저 전 세계가 중간지점에서 만나게 해주는 공용어라는 데 동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미국인처럼, 영국인처럼 발음하거나 유창하게 해내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들은 운 좋게 공용어와 모국어가 일치할 뿐이다. (그들은 나와 루시에게 없는 행운을 누리는 것이지.)


루시가 처음 해보는 일이라 해결하지 못한 연체 건 까지 내가 넘겨받았다. 그녀가 퇴근한 지 두 시간 뒤에야 나도 퇴근할 수 있었다. 같은 일을 하는 또래 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은데, 내가 불어를 배우는 게 더 빠를지 아니면 독어를 다시 배워야 되나 고민하게 된다.(3달 뒤에 출국인데...) 루시도 얼마나 헷갈릴까...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모두 알파벳을 쓰지만 다르게 읽는다. 내가 영어로 설명해주는 업무 매뉴얼을 본인의 모국어로 메모하는 하는데, 주변에선 독일인 동료들이 말을 걸고 뇌가 몇 개쯤 필요한 기분일 거다. 내가 이전 인턴에게 인수인계받은 스크린샷으로 가득 찬 각종 매뉴얼을 그대로 복사해주면 좋을 텐데, 당시의 나도 최대한 일을 빨리 배우려고 온통 한글로 메모해두었다. 한 치 앞도 못 본 내 잘못이다.


난 아예 프랑스어를 모르니, 동료들이 프랑스어로 얘기하면 나에겐 그냥 듣기 좋은 소음이다. 단어의 뜻을 모르고 억양만 들리니 노래하는 것처럼 들린다. 독일어는 어중간히 몇몇 단어만 아니까 블랭크가 가득한 암호문처럼 들린다. 영어를 들을 때보다도 답답하다. 그렇다고 영어가 모국어도 아니고, 겨우 생존하는 수준이라 내가 말하고 싶은 표현을 그대로 못하고, 때로는 정말 아무 단어도 생각이 안 나 버릴 때도 있다. 하루에 한국어를 쓸 수 있는 건 혼잣말할 때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더 불쌍한가? 적어도 루시는 회사에 같은 모국어를 쓰는 동료들이 많다.


도대체 하루 중에 고객 말고 내가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기는 한 걸까. 프랑스 회사의 독일 오피스에서 팀 7명 중에 보스 빼고, 팀원 6명 중에 2명이 독일인, 3명이 프랑스인, 한국인 1명까지. 팀원을 다수결로 보면 우리가 프랑스어를 배워야 할 듯하다. 그렇지만 나만 빼고 7명 중 6명은 독일어로 일 하고, 회의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공용어가 없는 것은 내 문제인가? 내가 독일어를 못 알아들은 채로 3개월이 지났는데, 그래도 이 팀이 잘 돌아가는 것이 경이롭다. 이런 게 시스템으로 일한다는 걸까?


2020.6.30

하고 싶은 말을 못 해서 답답한 감정을 느낀 지 꽤 오래되었다. 모국어로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표현하고, 부당한 대우에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알고 있는 지식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소중하다. 이렇게 하지 못했을 때, 늘 마음이 시원하지 못했고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팀원이 제각각의 모국어를 가졌음에도 회사가 평화로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시스템이 잘 갖춰진 회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저 때의 경험으로 나는 큰 회사에서 아주 작은 한 부분으로 일한다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못 알아 들어도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고민이 되었다.


내가 계속 이 직무를 택한다면, 회의 같은 건 못 알아 들어도 될 만큼 매우 정형화된 일을 담당하는 것임을 의미했다. 또한 이렇게 큰 회사에서 한 개인이 언어를 못해서 소통이 안되어도, 회사 일에 아무 지장이 없을 만큼 개인은 회사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작은 부품이 될 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또 해외에서 자리를 잡고 계속 산다는 것은 주변 동료들이 이미 갖추고 있는 모국어라는 당연한 능력을 채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면서, 한편으로는 내 모국어로 순간순간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할 기회는 잃어버리는 것임을 의미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해외에 남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고, 돌아와서는 대기업의 재무팀에서 일할 생각을 접었다.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다른 문화에서 일해 보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해외로 이주할 경우 모국어로 일할 수 없고 나를 표현할 수 없는 그 답답함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서 인지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질 않는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 안 통해서 섬처럼 지낸 그 때의 시간들은 나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극도로 외향적인 사람에서,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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