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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용성 Nov 15. 2017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기만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들

Arbeit macht frei [ˈaɐ̯baɪt ˈmaxt ˈfʁaɪ] [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한 소설에서 유래된 독일어의 격언, 관용어구라고 한다. 

여기에 있는 '아르바이트'가 바로 그 '알바' 맞다.

원래는 일, 노동이라는 의미이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보통 단기 시간제 노동자(part-time jop)의 뜻으로 쓰인다. 고는 하나 의도치 않게 실제적으로 약간의 비하하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문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제1아우슈비츠 정문에 박혀있다.

직역하면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정도가 되겠는데 이는 유태인 수용소를 총괄하던 골수 나치 회스 중령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이런 미x놈) 아우슈비츠는 이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 일명 '절름발이 악마'

나치는 선전, 선동, 대중조작에 능했는데 히틀러의 입이라고 불리던 괴벨스는 나치의 선전장관으로서 선전선동에 악마적 재능이 있었다.

괴벨스는 유년시절부터 몸이 허약하고 오른쪽 다리가 굽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내성적이고 차가운 사람으로 성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한 일련의 이야기들은 지금 들어도 무서울 만큼 대중을 속여 넘기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거짓도 천 번 하면 진실이 된다." /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근데 2차 대전에 패해 진실을 추궁당함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저서. PR의 영원한 고전, Propaganda

나치의 이런 전략은 모두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에 속한다.

공교롭게도 괴벨스가 탐독했다는 책이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쓴 '프로파간다'이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꿈의 해석'으로 유명한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조카이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 구스타프 르 봉의 군중 심리학에 영향을 받아 선전, 홍보를 통해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일을 하게 된다. 책에도 소개가 되어있지만 20세기 초반, 여성의 흡연율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담배회사 럭키 스트라이크는 자사의 상품을 더 많이 팔려면 애연가들이 늘어야 하는데 남성 흡연자를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여성 흡연율을 높일 방안을 고심하고 있었다. 뉴욕에 PR사무실을 차리고 있던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바로 젊은 여성 모델을 고용해 담배를 피우면서 뉴욕 시가지에서 퍼레이드를 하게끔 했다. 그는 이때 여성의 공공 흡연권이라는 이슈를 내세웠으며 매스컴에다가는 여성의 흡연을 ‘자유의 횃불’이라고 선전해댔다. 세련된 혹은 교묘하게 기만적인 이데올로기 작업을 통해 여론몰이에 성공했고 이는 물론 럭키 스트라이크의 매상과 직결된다. 

만약 당신이 PR전문가이고 베이컨 소비가 시원치 않아 고민하는 육류업체 대표가 와서 상담을 하면 어떻게 광고전략을 짤 것인가?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지역 의사들을 섭외해 매일 조간신문에 '아침에 베이컨을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라는 논지의 글을 정기적으로 싣게 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미국인의 아침밥상에 베이컨이 올라가 있는 이유가 된다.

20세기를 연 3명중 한명, 다른 한명은 니체 또다른 한명은 프로이트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생산과정에서 만들어진 상품이 유통과정에서 팔리는가 안 팔리는가 하는 문제를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자본주의에서 기업 및 상품의 홍보, 선전 및 마케팅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목숨을 건 도약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만적인 요소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소외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분업화를 통해 효율적으로 상품을 생산하지만 정작 상품을 만든 노동자는 분업의 일부 과정에만 관여하여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으로 전락해 버려 노동자는 주체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자본가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게 되며 결과물은 노동자 본인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잉여생산물을 자본가에게 착취당한다. 노동의 결과로 받을 수 있는 임금은 자본가과 노동자의 타협에 의해 노동가치를 평가받는 만큼 임금을 받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는 계속 하락하게 되므로 결국 노동자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신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멀리 돌아왔지만 사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

이러한 일련의 기만적인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혹자는 맹수를 만난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파묻고 현실을 보려 하지 않겠지만, 반드시 고민하고 내다봐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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