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box - Everything Is Nothing
누구나 그렇듯이
재생되는 순간, 내가 서 있는 시공간을 뒤바꿔 놓는 음악이 있다.
순식간에
검푸른 하늘이 10년 전 습하디 습한 여름 하늘이 되고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어린아이가 되어 백미러에 비친 젊은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고
셔틀버스에서 가방을 끌어안은 채 자꾸만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던 학창 시절의 내가 된다.
기억력 하나는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점점 기억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지난 기억들이 흐려지고 부서진다.
이제는 음악이 건져올린 기억들만이 앞으로 잠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음악마저 잊어버린다면
나는 영원히 어떤 순간을, 잊어서는 안되는 마음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그 두려움이 나를 모니터 앞에 앉게 했다.
앞으로 내 지난 기억들과 그걸 건져올린 음악에 대해서 짧게나마 기록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곡은
Sweetbox - Everything is nothing이라는 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Nn099Poq8
지금은 거의 활동하지 않지만 스위트박스라는 가수는 20여 년 전, 싸이월드 BGM으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Life is cool>이라던가, <Cinderella>라던가 하는 곡들은 주변 친구들의 미니홈피에서 높은 확률로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당시 내 mp3 플레이어에도 스위트박스의 유명한 노래들이 있기는 했지만, 미니홈피의 BGM으로 구매할 정도까지는 좋아하지는 않았다. 스위트박스의 대표곡들은 유명한 클래식 음악을 샘플링한 것들이 많았는데 어릴 때 피아노를 열심히(?) 쳤던 기억으로 듣자마자 질려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위트박스라는 가수를 난 점점 잊어갔다.
그러다 2010년에 나는 다시 스위트박스의 한 노래를 만나게 되었다. <Everything is nothing>이었다.
당시 나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결정된 입대 날짜에 나는 대학교 1학년 2학기를 남들보다 빨리 마무리하고 입대 전날, 아버지가 근무하고 계신 경북 상주 지역으로 내려갔다. 내가 입대할 훈련소가 바로 대구 지역에 위치한 50사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대구로 내려가는 엄마 차 안에서 한강을 건너고, 몇 개의 톨게이트를 지나고, 키가 낮은 건물과 들이 보일 때까지 몇 번이고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당장 내일이 되면 사회와 단절된 곳으로 가야만 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 불안함이 가시기는커녕 오히려 더 들뜬 마음이 되어 가슴이 불안정하게 뛰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들었다.
난생처음 가 보는 상주의 어느 미용실에서 내 머리카락이 후드득 떨어질 때에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부모님을 거울 너머로 지켜볼 때에도, 짧은 머리에 처음 겨울바람이 지나갈 때에도, 서운해하는 아빠를 두고 혼자서 대중목욕탕에 갈 때에도, 마지막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뚝방길 위에서도, <Everything is nothing>의 멜로디가 내 귀와 마음 한 편에서 맴돌았다.
2024년 9월 22일,
우연히 추억 속의 노래를 검색하다가 이 노래가 기억이 났다.
거의 몇 년 만에 다시 찾아 듣는 것 같았다.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비트와 멜로디가 나오는 순간, 주변의 풍경이 모두 겨울로 바뀌었다. 어느새 차가워진 바람에는 2010년의 뚝방길의 냄새가 났다. 주변 식당에서 고기 굽는 냄새와 물 비린내가 섞인 찬 냄새였다. 그 길 위를 아직도 버리지 않고 둔 폴로 남색 패딩을 입은 빡빡 머리의 내가 걷고 있다.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땅만 보고 걷다가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 나는 무엇이 그리도 불안했을까. 왜 그리도 가슴이 뛰었을까. 이제는 똑같은 모습으로, 같은 마음으로 그 길을 걸을 수 없는데. 그걸 모르는 그때의 내가 그 뚝방길을 몇 번이고 걷고 다시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