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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Jul 27. 2021

지리산에 무릎 놔두고 왔습니다

올 초 내가 세운 올해의 목표이자 확언은 '지리산 등산'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등산을 했다. 2021년 6월 5일, 새벽 3시부터 시작해 총 27.11km를 걸은 그날의 등산. 성취감이 남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남지 않은 것도 있었다. 무릎. 7월 말을 넘어 곧 8월 초가 되는 지금도 무릎은 지리산에 다녀오기 전의 상태, 즉 100%의 힘을 갖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수술 등의 조치가 필요할 만큼 심각한 질환이 생긴 건 아니고 '많이 무리해서' 회복까지 시간이 꽤 필요한 것이라 한다.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지리산에 두고 온 무릎, 서서히 찾아오고 있는 어느 날에 쓴 기록.


코스 정보를 꼼꼼히 공부하고 가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지리산...


한라산, 치악산 등 한국의 '명산'들을 올라봤고 관악산은 산책하듯 올랐지만 지리산은 여러 면에서 그들 산과 달랐다. 지리산은 정말 크다. 알다시피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시군을 아우르고 있다. 가로길이로만 40km, 세로 길이는 어디로 하산하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5km~10km는 된다. 단순히 길이만 봐도 '힘듦'이 체감되는데 산이기 때문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반복되는 걸 감안하면 더 말해서 무엇할까.


쉽게 볼 수도 없지만 쉽게 봐서도 안 되는 산. 그만큼 '공부'와 '준비'가 필요하다. (당연하지.) 나는 공부도, 준비도 부족했다. 공부는 블로그를 30분 정도 검색해보는 것이 전부였고 준비는 등산화와 물, 간식을 포함한 식량이 끝이었다. 스틱, 테이핑 등 기본적인 등산 도구도 없었다. 지금까지 가본 모든 산들이 그 정도의 공부와 준비로만 '완주'됐던 게 과거의 나에게는 '운수'였고 지리산에 간 나에게는 '패인'이었던 것 같다.


그와 같은 '상태'에서 목표로 했던 코스는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간 뒤 중산리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끝에서 끝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도 하루 안에 가려고 했다. '불가능할 텐데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했다기보다 애초에 '그 코스는 누구나 하루 안에 갈 수 있는 거리다'라고 알았다. 30분밖에 탐독하지 않은 블로그들에서 그나마도 잘못된 정보를 본 건지 아니면 제대로 된 정보를 나 혼자 잘못 본 건지, 아무튼 그랬다.


여러 번 만나야 더 매력적인 산


6월 4일 오후 11시 55분,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랐다. 거의 동시에 그곳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3~4대는 되었던 것 같다. 약 3시간 뒤 성삼재에 도착하는 이들 버스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산꾼' 포스 잔뜩 풍기는 이들 사이에서 이내 잠이 들었고 비몽사몽 버스에서 내리니 까만 하늘에 별이 알알이 빛나는 지리산 자락이었다. 춥다, 졸음을 떨치고 싶다, 어둡다는 생각이 순서 없이 찾아왔다.


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지 등산로 초입의 카페도 불이 켜져 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고 걷기 시작했다. 2년 전쯤에는 10월 말에, 노고단 일출만 본다는 목표로 오전 6시부터 이 지점을 걷기 시작했다. 친구랑 같이. 그때도 그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샀는데. 실은 이 카페가 새벽 3시에도 문을 여는지 몰랐어서 이번엔 가방에 편의점 커피를 따로 준비해 갔었다.

휴대폰 카메라로도 찍히던 별.


랜턴이 없어서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걸었다. 앞뒤에서 오는 사람들의 랜턴 불빛에 신세를 지면서 걷기도 했다. 별은 여전히 하늘에 가득해서 별이 하늘의 자리를 빌린 게 아니라 하늘이 별의 자리를 빌린 것 같아 보였다. 밝지만 국소적인 땅의 빛, 조금 어둡지만 드넓은 하늘의 빛 그 둘과 함께 한 등산 초반부. 충분했지만 든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히, 춥고 어두웠다.

노고단에 가까워 오자 땀이 슬며시 나기 시작했다. 잠도 어느새 달아났다. 사전에 입장을 예약해둔 노고단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가 새벽 4시. 입구에서 기계를 통해 QR코드 인증이 됐고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깜깜하기만 하던 하늘이 아주 먼 곳에서부터 '여명'이라 할 만한 빛을 데려오고 있었다. 색감이 마법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2년 전에 왔을 때처럼 노고단의 바람은 어마 무시했다.

마음으로는 부지런히 감동을 느끼고 몸은 추위를 떨치려 몸서리치는 와중에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해 뒤를 돌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직원이었다. 알고 보니 노고단 입장 가능 시각은 오전 5시부터이고 그 점이 입구에도 안내돼 있는데 나를 포함한 몇몇이 그전부터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구에서 QR코드가 찍히던데요?" 살짝 읍소도 했지만 과태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원래 10만 원인데 조기에 납부해서 8만 원으로 끝냈다.)

싱숭생숭. 추위는 절정에 달하고 해는 생각보다 금세 뜨지 않고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나와 같이 과태료가 부가된 이들은 해가 뜨기 전에 내려갔다. 조금만 더 있어보기로 한 나에게 오전 5시가 넘어서자 '태양의 기운'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태양의 기운. 시각적으로도, 촉각적으로도 태양이 나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이 사람들도 더 많이 올라왔고 나는 생애 두 번째 노고단을 생생히 맞아들였다.

해가 뜬 노고단을 뒤로 하고 걷는 길.

노고단을 뒤로하자 날도 밝았고 추위도 완전히 물러갔고, 걸음이 가벼웠다. 산에서만 보이는 작고 낮은 꽃들, 풀들 사진도 틈틈이 찍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었다. 노고단을 주변을 기점으로 코스 갈림길도 많아지다 보니 천왕봉을 향해 가는 내 등산길에는 사람도 전보다 없었다. 집 주변에서 이른 아침 조용히 혼자 걷는 그 기분을 지리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일상 같으면서 일상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대피소는 안 나오고 계단이 나오네...


'중산리에 해가 질 때쯤 도착하려면 지금쯤 연하천 대피소가 나와야 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걷는 것 같지?' 휴대폰 시계를 보는 횟수가 점점 더 늘었다. 몸이 풀리면서 걸음은 계속 가벼워지는데 마음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 갈 무렵, '드디어'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내 마음은 두 가지 방향을 오갔던 것 같다.

숲길 같은 길 그리고 힘들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틈 사이 풀들

언제 나올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갈 때 느끼는, 포기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살짝 지쳐서 느끼는 지루함. 그리고 '숲길'에서 느끼는 포근함. 후자의 숲길은 그 코스에서 자주 보이던 길의 모습을 내가 표현한 단어이다. 나무들 사이로 좁은 오솔길이 옴팍 패인 듯 나 있고는 했는데 흙과 모래가 밟히는 소리만을 곁에 두고 조금씩 보폭을 옮기다 보면 포근했다. 그 길의 좋음이 지금 이 글을 쓸 때는 지루함보다 더 크게 와닿는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노고단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제대로 앉아 쉬었다. 물만 부으면 끓는 캠핑용 식사와 간식을 먹었다. 시원한 물도 내가 챙겨 온 게 넉넉했지만 그곳에 들르자 '그럴 필요 없었겠다' 싶었다. 물은 대피소에도 충분하다. 그곳엔 물만이 아니라 벌도 많다. 처음엔 겁을 먹었는데 대피소 직원 분 말씀으로는 사람을 쏜 일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도 주변에 모여드는 기세에 비해 순했다(?).


"선생님 제가 오늘 천왕봉 찍고 중산리로 내려가려는데 시간이 될까요? 저기(대피소에 있던 '지점별 소요시간 안내도'를 가리킴) 보니까 시간이 도저히 안될 것 같은데 저는 되는 걸로 보고 왔거든요. 뭐가 잘못된 건지." 새벽에 라이트를 켜고 걷느라 금방 닳은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바로 옆의 직원 분에게 여쭈었다. 그분은 그 정보를 어디서 봤는지부터 물었다.

각 대피소의 전화번호도 상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블로그에서 봤다고 하자 직원 분이 안타까워하며 이러시는 게 아닌가. "지리산 등산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지리산의 각 대피소에 직접 전화를 해서 문의하는 게 제일 정확하고 빨라요." 블로그마저도 충실히 알아봤다고 자신할 수 없던 상태였기는 하지만 직원 분의 말씀이 충분히 수긍이 갔다. "저는 제가 여기까지 너무 느리게 온 건가 했어요." 그 말에 덧붙이신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급하게 가려고 하지 마요. 가는 길에 꽃도 보고 이 좋은 날씨에 하늘도 보고 지리산을 충분히 즐겨야지. 하루 안에 종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몸에 골병 나. (웃음) 지리산은 한번 왔을 땐 경상도에서 시작해서 전라도에서 내려가 보고 다음엔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그런 식으로 여러 번 온다 생각하고 여유 있게 다녀가는 게 제일 좋아요. (코로나 이후에) 대피소 숙박 다시 시작되면 며칠 자면서 가보기도 하고."


깨달음 대신 현실


천왕봉 갔다가 중산리로 내려가는 애초의 목표(?)는 불가능하게 됐음을 받아들이고 가는 만큼 가다가 하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연하천 대피소로 가던 길처럼 그 대피소를 벗어나서 다시 나선 길도 앞서의 숲길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릴 만큼 차분했다. 물론 그 때나 이 때나 힘든 바위길 같은 것도 꽤 있었다. 그래도 힘든 줄을 몰랐다. 아니, 몸은 이미 힘든데 내가 몰라줬다.


오른쪽 무릎에 묵직하고 아린 통증이 왔다. 걸음의 높이, 폭, 속도와 무관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등산 다음날 근육통이 심하면 먹으려고 챙겨 온 진통제를 먹었다. 큰 효용이 없었다. 연하천 대피소를 지나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본 '가장 빠른 하산 길'은 그때의 내 컨디션이 휴식 덕분에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지나친 상태였고 이제 남은 하산길은 '음정마을'뿐이었다.

확연히 느려진 걸음. 고루한 표현일지 모를,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울거나 할 일은 아니었다. 전혀.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음정마을 하산길로 향했다. 다만 그렇게 결정하고 움직이기까지 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 대피소의 직원 분은 대피소에 있던 테이프로 내 무릎을 테이핑 해주셨고, 알고 보니 성삼재행 버스를 내 옆자리와 뒷자리에서 같이 탔던 두 여성 일행 분이 하산길을 동행했다.

중산리로 하산할 거라 생각하고 거기에 미리 숙소를 잡아뒀다가 이 사진을 보내며, 죄송하다며 당일 취소를 문의했다. 사장님께서 전액 환불해주시면서 조심히 돌아가라고 해주셨다. ㅠㅠ


내려가는 동안 무릎 통증은 더 심해져 갔다.  두 여성 분 중 한 분은 자신의 스틱을 빌려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통증을 잊기도 했고, 더 솔직하게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마음의 힘을 내기도 했다. 그분들도 이른 시간부터의 산행 탓인지 이번이 지리산이 처음이 아닌데도 힘들다고 하셨다. 노고단에서 화엄사 코스로 내려오는 동안 즐겁기만 했던 내 지난 지리산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도 그들의 생각에 공감.

하산길을 함께 한 두 여성 분과는 숙소도 급히 같이 잡고 거기서 맛있는 저녁도 나눠 먹었다. 시원한 맥주부터 벌컥벌컥 들이켤 때, 얼마나 좋았는지.




지리산은 '한번 가볼까' 해서 가는 이들도 있지만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무언가 잊고 싶어서,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 전 보람을 느끼고 싶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서 등. 나도 올해 꼭 지리산을 한번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유학 전'이기 때문이었다. 유학 전, 지리산에 무사히 다녀온다면 스스로가 멋지게 느껴질 것 같았다. 주변에 자랑도 하고 싶었다. 지리산 다녀왔다고.


지리산은 깨달음보다 현실이었다.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하며 감성을 매만지고 나아가 크거나 작은 지혜를 깨닫는 게 지리산에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지리산이기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기대하거나 의도하면 외려 깨달음은 안개 같아지고 현실은 더 현실다워졌다. 내 몸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통증이라는 현실, 내가 나를 지켜서 무사히 산 아래로 데려가야 하는 현실. 말하자면 생존, 의지, 땀 그런 것들.




성삼재에서 출발해 노고단을 거치고, 최종적으로는 벽소령 대피소까지만 간 뒤 음정마을로 하산했다. 이렇게 내가 이동한 거리가 27.11km였다. 걸음 수로는 4만 2000여 보. "무릎이 안 나가면 이상하지"라고 하던 의사 한 분의 말이 다시 실감 난다. 지리산에 두고 온 무릎을 서서히 되찾아가고 있는 요즘, 씩씩하지만 어딘지 어설프고 처량하던(!) 내 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어딘가 저지르는 듯한 느낌으로 떠나는 유학이기도 하니 유학을 떠나는 마음이 지리산을 오를 때의 마음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렇게 보자면 무언가를 얻어올 것을 기대하며 떠난 지리산에서 현실을 냉철히 마주했던 것처럼 유학을 가서도 그런 상황과 감정을 겪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99% 그럴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일지도. 내가 유학을 결정한 뒤 두루뭉술하게 느끼는 불안이 거기에서부터 오는 것도 같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리산에서 내가 '깨달음보다 현실'을 마주할 때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준 사람, 내 옆에서 발맞춰 걸어준 사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충분한 도움을 준 사람들도 있었음을 꼭 생각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하고 싶다. 유학이라는 큰 도전,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내가 현실에만 파묻히기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아는 낭만의 감각과 지혜를 길어 올리려는 의지를 가꾸도록 도울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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