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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Jul 29. 2021

고맙습니다, 나의 앞집 마당

유학을 가기 위해 서울에서 지내던 원룸(자취방)을 정리했다. 나에게 특별한 집이었다. 특별한 이유 중 하나이자 어쩌면 전부에 가까운 이유는 바로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 우리 집 마당은 아니었고 앞집의 마당, 그것도 작은 마당이었다. 어딘가에 맡겨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정원이라기보다 주인이 소소하게 가꾸는, 누군가 언뜻 본다면 기억도 하기 힘들 평범한 마당이었다.


창밖으로 넓은 하늘을 보다가 이 집 마당을 보다가,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좋았다. 좋다는 감정은 애틋함과도 같아서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코끝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하루 중에도 새벽과 이른 아침이, 한낮이, 해질녘이, 어두운 밤이 모두 달랐던 마당. 한 해 중에서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또 저마다 달랐던 마당. 때마다 다른 마당을 지켜보는 내 마음만큼은 큰 차이 없이 평온했다.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현재의 상황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나, 그것에 대한 감사가 층층이 쌓여갔다.


이사를 앞둔 어느 밤, 조용히 책상에 앉아 편지를 썼다. 앞집에 전하는 편지였다. 엽서나 편지지에 쓰려다 길어지는 것 같아 워드에 써서 출력했다. 그리고 편지를 롤케이크 하나, 나팔꽃 씨앗과 함께 종이가방에 담아 앞집 대문에 걸어두었다. 아래는 그때 쓴 편지.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편지와 선물에 많이 놀라셨죠? 저는 바로 옆 **에 살다가 7월 3일 이사를 떠나는 이지안이라고 합니다.

2019년 늦여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저희 집에서 창 밖으로 훤히 트인 풍경이었어요. 서울 시내 원룸 중 이렇게 넓은 하늘, 넘실대는 나무가 잘 보이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귀 댁의 마당도 제가 이 집에 사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혹여 남의 집 마당을 염탐한 것처럼 비칠까 걱정인데,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 이른 아침, 창을 열며 하루를 시작하면 귀 댁의 마당이 가장 먼저 저와 인사를 나눈 것 같습니다.

사계절 그리고 매일, 이 마당에서는 초록빛을 중심으로 꽃이 물들었고 눈이 소복이 쌓이는 날도 있었어요. 할머님께서 정성스러운 손길로 풀을 솎아 내시거나 물을 주는 모습, 꽃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으시는 모습을 볼 때는 제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졌습니다.

저는 유학을 가게 되어 이 집을 떠나지만 이 집을 떠나는 게 못내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큰데, 귀 댁의 이 귀하고 아름다운 마당도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조용히 창가에 앉아 귀 댁 마당의 식물들을 보며 마음을 쉬고 그 힘으로 성장했습니다.

내년 봄 이 마당에 서로 색이 조금 다른 철쭉 두 그루가 피는 건 제가 보지 못하지만 늘 그래 왔듯 어여쁘게 피겠죠? 

제가 언제 한국으로 다시 올지, 오더라도 이 집에 다시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제가 살던 집과 귀 댁 그리고 이 마당이 가능한 한 오래 지금처럼, 지금보다 더 정감 있고 멋진 모습으로 각자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기를 먼 곳에서도 바라겠습니다. 

할머님, 할아버님 그리고 그 가족 분들도 모두 건강하시기를 다시 한번 바라며,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 나팔꽃 씨앗도 같이 드리는데요. 그림책 <달에 간 나팔꽃>을 쓴 이장미 작가가 나팔꽃을 심고 씨앗을 받아 다시 심어 기르고, 하는 과정을 10여 년 동안 한가운데 생겨난 나팔꽃 씨앗입니다. 이 마당의 다른 소중한 식물들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아 선물로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나팔꽃을 위한 자리도 마당 한편에 내어주실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대문 앞에 이 편지를 걸어둔 그 몇 시간 뒤, 편지 말미에 적은 내 이메일로 답장이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님이었다. 내 편지만큼이나 긴 그 답장에는 그 분과 가족의 이야기, 나에 대한 고마움과 응원이 담겼다. 고맙다는 인사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울 것 같았는데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서로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 따스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셨다. 답장을 보던 휴대폰을 한동안 놓지 못했다.


20년 전 할머니, 할아버지와 그 자녀들이 그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것, 따님은 결혼 후 분가를 했다가 나이 든 부모님을 보살피려 자신의 가족과 함께 다시 그 집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래된 집이라 불편한 점도 있어서 따님은 자식의 입장으로 부모님께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도 말씀드려 봤지만 부모님의 뜻으로 이 집에 계속 살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쓰셨다.


'부모님이 소일 삼아 가꾸신 저희 집 마당이 이웃 누구에겐 작은 기쁨이고 힘이 되었다는 걸 알고 나니 그렇게 보내신 시간들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가 있었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이지안 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지를 본 할머니는 정말 고맙다며 우리 집에 깻잎이라도 가져다주고 싶다고 하셨단다. 곧 유학 가는 사람에게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따님이 만류하셨다고. 그 말을 읽다 보니 편지와 선물을 대문에 걸어두지 말고 직접 만나 전할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딴에는 부담 주지 않으려 한 선택이 누군가가 자신의 감사를 전할 기회도 주지 않은 것이 된 듯해서 괜히 미안했다. 배울 것이 아직 많다. 


할머니,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서울의 그 원룸은 혼자 살던 곳이라 내가 그 집에서, 그 집의 창밖을 보며 경험한 것과 느낀 것은 오로지 나만 아는 것이었다. 때로 그 사실이 조금 외로웠다. 내가 이 시간과 감정들을 잊으면 그게 이 세상에 없는 것이 되니까.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일기를 썼다. 손으로 꾹꾹. 종이 위 글자도 시간에는 바래겠지만. 그렇게 저렇게 어쩔 수 없이 흐려질 어떤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렸다.


내가 편지를 전하고 그 편지의 답장이 또한 남게 되면서 그 외로움이 많이 덜어졌다. 나의 기억을 함께 기억할 이들이 생겼기 때문에. 내 기억이 그대로 그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이런 기억도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제 나에게는 내가 쓴 일기도 있고 편지도 있고 그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도 있다. 든든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답장의 마지막에는 내가 전한 나팔꽃 씨앗을 그다음 날 바로 심겠다는 말이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문득, 그 나팔꽃이 싹을 틔웠을지 궁금해진다. 부디 싹을 틔우고 높이, 멀리 자랐으면. 그 나팔꽃이 앞집의 가족들에게는 그들이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집과 그 집에서의 기억들을 빛내 주는 것이기를. 나에게는 그 마당과 보낸 내 삶의 한 부분이 내 기억에서나 그분들의 기억에서나 조금 덜 빛바래도록 돕는 것이기를.


고맙습니다, 나의 앞집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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