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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용 Aug 03. 2021

산책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오늘도 시장으로 산책을 나선다

아내와 장을 보러 갔다. 마트가 아니라 시장으로 나섰다. 필요한 것만 사서 얼른 돌아와야 하는 날이 아니면 재래시장에서 장을 본다. 정해진 장소에 예외 없이 그때 그 물건이 있는 마트보다 매일 주력 상품이 달라지는 시장의 식재료 가게가 좋다.


아직 1년의 살림을 살아보지 않은 우리는 요즘은 뭐가 제철인지 시장에 나가서야 깨닫는다. 날씨와 온도로 계절을 느끼면서 제철 식재료의 냄새를 맡는 것. 장보기 산책의 묘미다.


며칠 전, 아내는 친구를 초대해 따뜻한 음식을 내어 먹고 같이 사과잼을 만들 거라 했다. 요리를 준비하느라 주말의 늦잠도 포기. 나는 좋은 음식을 사주면 안되냐며, 그 편이 더 맛있지 않겠냐며 모르는 소리를 했다. 아내는 직접 고른 재료로 만든 한 끼를 대접하고 싶어 했다.


Photo by Kim Junyong


얼마 전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내는 장례를 치르러 간 친구의 빈 방에 들러 청소를 해주었다. 그리고 친구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빈 냉장고를 채웠다. 그만의 위로였다.


“난 말로 하는 위로가 투박한 사람이니까.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봤거든. 그냥 청소를 하고 음식을 해주는 것밖에 없었어.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가족이라는 뜻의 단어인 식구(食口)는 한자어 그대로 ‘먹는 입’이라는 뜻이다. 누구든 같이 앉아 밥을 먹으면 그 순간만큼은 가족이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따뜻한 음식을 나눠 먹고 사과잼을 만든 날이 그랬다. 셋이서 식구가 되어 한나절을 보냈다. 친구는 간만에 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며 고마워했다. 가족을 잃은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는 정확하고 진실된 방법. 누군가를 위해서 밥을 짓고 나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 방에 오래 있다 왔다 거기서 목침을 베고 누운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는 우는 것 같았고 그저 숨을 쉬는 건지도 몰랐다 // 부엌에 나가 금방 무친 나물과 함께 상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방에 있자니 오래된 아내처럼 굴고 싶어진 것이다 일으켜 밥을 먹이고 상을 물리고 나란히 누워 각자 먼 곳으로 갔다가 같은 이부자리에서 깨어나는 일 // 비가 온다 여보 // 당신도 이제 늙을 텐데 아직도 이렇게나 등이 아름답네요 (…)

- 유진목의 시 <잠복> 중에서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시에 대해 말하며 ‘밥을 먹이고 싶은 욕망을 표현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사랑할 거냐’고 묻는다. 인생에서 큰 몇 가지 사건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 뭐냐고 하면 밥 먹는 것일 테다.


“너 밥은 먹었어? 밥은 먹고 다니니?”가 인사인 민족이니까. 오늘이 얼마나 힘든 하루였는지 얘기할 때 “나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어”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밥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삶과 마음이 어떤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니까.


Photo by Kim Junyong


그러니 누군가를 위해 좋은 재료로 공들여 차린 밥상은 위로가 된다. 말로 전할  없는 마음이 형태를 갖춰 감각으로 전해지는 . 이번 주말에도 친구를 초대해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다. 어떤 음식일 지는 모르지만  안에 진심을 담기 위해, 우리는 시장으로 산책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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