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 몽골
2018. 8. 13. 월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은 좀 식상하지만 역시 클래식은 클래식이다. 이 만큼 간결하고 긴장감 있게 오늘의 상황을 표현하는 문장이 있을까.
배낭을 메고 현관문 앞에 서서 나의 집이 나오도록 셀카를 찍었다. 집아 잘 있어. 1년 동안 너 말고 무수히 많은 집들을 다녀올 텐데 너무 샘내지 말고, 너도 많은 손님들을 맞이하며 있으렴.
어제저녁에 시가 식구들과 식사를 했는데 어머님이 오늘 공항에도 나오신다고 했다. 그리고 영종도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희경 이모도 온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 엄마, 시엄마, 이모 이렇게 네 명의 여인들이 인천공항 제2 터미널에서 마지막으로 한식을 먹었다. 드디어 작별의 시간. 오랫동안 못 보는 가족들과의 작별이 아쉽기도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간의 설렘과 긴장감이 더 커서인지 남겨 놓은 미련 없이 훌쩍 잘도 떠났다. 탑승구를 향해 걸어가는데 이제 나도 드디어 세계 여행자의 대열에 합류했구나라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시작도 하기 전에 뿌듯함부터 느끼는 건 뭐지.
한국아 잘 있어라.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10년 전 첫 몽골 방문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10년 전에는 그때 다녔던 교회 성도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서 몽골 현지 교회의 여름 수련회를 지원하기 위해 왔었다. 그때 우리는 참 어리고 즐겁고 투명했었다. 공항에 내리니 그때 생각이 난다.
이름에 비해 아담한 규모를 가진 칭기즈칸 공항. 수화물 벨트도 하나다. 짐을 찾고 나오니 미리 약속해 둔 장소인 탐앤탐스가 한눈에 보인다. 얼굴도 모르는 김봉춘 목사님을 어떻게 찾지 고민하며 탐탐 안으로 고개를 쏙 넣어 쳐다보니 목사님처럼 생긴 분이 나를 먼저 알아보신다. 밝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린다. 일면식도 없는 나를 앞으로 3일간 집에 재워주실 분이니 그 고마움을 인사로 표현해보았다. 옆에 남자분이 한 분 더 계셨는데, 목사님이 서둘러 소개해주시지 않았으면 몽골분으로 착각할 뻔했다. 그만큼 몽골 사람의 외모는 우리와 닮았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서늘하다. 마지막으로 느낀 한국 날씨는 정말 한증막이 따로 없었는데 울란바토르 밤공기는 춥게 느껴질 정도다. 여기가 바로 말로만 듣던 여름 천국 몽골이구나 실감이 났다.
목사님 차에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데 옆에 타신 교수님과 길이 막히네 마네 얘기를 하신다. 오잉 몽골도 길이 막히는구나. 누군가가 제주도도 길이 막힌다는 사실을 신기해하는 것처럼 나도 몽골에 길이 막힌다는 게 여간 신기하다.
처음엔 목사님과 교수님 두 분이서 몽골에 계신 한국분들의 근황 토크를 한참 하시느라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나에게 화제를 돌려 이것저것 물어보시다가 우리가 둘 다 제주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한참을 제주도 얘기를 하느라 교수님을 다소 왕따 시킨 것 같다.
드디어 목사님 집에 도착. 어린 딸과 아내 분이 맞아주신다. 세 분이 사시는데 내가 따님의 방을 쓰고 따님이 오랜만에 엄마 아빠 방에서 같이 잔다고 한다. 에고 미안해라. 감사한 만큼 몽골 여행을 잘 해보기로 다짐한다.
여행자의 생명수와 같은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기철에게 도착 소식을 알리고 내일 만날 약속을 잡았다.
이제 드디어 첫날 할 일이 모두 끝났다.
Day2
눈을 떴다. 땀을 흘리지 않고 잔 게 얼마만인가. 이불도 몸도 보송보송하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를 하고 거실로 나오니 아침밥을 주신다. 물론 가족들 먹는 아침식사에 내 숟가락 하나 더 얹어주시는 거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드리는 것 없이 아침상까지 대접을 받으니 감사하고 송구하다.
목사님이 오늘 일정을 물어보시는데 사실 나도 모른다. 기철, 영하를 만나 함께 있을 거라는 것 빼고는. 다행히 기철, 영하의 아파트 중후레가 목사님 댁에서 가깝다.
목사님이 약속 장소까지 태워다 주셨다.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기철의 웃음소리는 몽골에서도 크고 씩씩하구나. 사실 기철과 나는 만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사이다. 작년 4월에 우연히 청소년 지도를 위한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기철과 영하를 만났다. 워크숍 자체는 청소년을 위한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배우는 것이었지만 모인 이들이 모두 청소년에 대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의 원천이 된 신앙의 방향이 같아 원래 예정된 6회기를 훌쩍 넘어 연말까지 정기적으로 모이게 되었다.
사실 하반기에도 처음엔 뭔가 배우는 모임으로 시작했었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각자 배우자에게 혼나기 직전까지 집에 안 가고 수다를 떨다 보니 우리만의 이름을 가진 소모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청소년을 위한 소그룹 지도력 모임.” 줄여서 소지력 되시겠다. 심지어 미션&비전까지 정하고 겨울에는 직접 청소년들과 함께 신나게 놀고, 진로와 삶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는 1일 캠프를 기획하여 진행하기도 했다.
기철은 청소년 놀이 지도자인데 몸과 마음의 태도와 표현이 거의 목회자 수준이다. 항상 우리를 더 거룩하게 만들어주고 동시에 훨씬 더 시끄럽게 만들어준다. 언젠가 기철과 밥을 먹다가 식당 주인으로부터 조용히 해달라는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
영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인데 첫 만남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자신의 꿈이 전 세계의 아이들을 만나는 거라고 이야기해서 나를 놀라게 했었다. 그리고 진짜 세계의 아이들을 만나러 몽골에 간다고 해서 나를 두 번 놀라게 했다.
기철의 가족과 영하, 이 사람들이 바로 나를 몽골로 오게 한 이유이다. 함께 만들었던 첫 1일 캠프 이후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소지력 모임에 변수가 생겼다. 5개월 전 기철과 영하가 몽골의 청소년들을 위해 한국을 떠났기 때문이다. 한국보다도 훨씬 청소년들만의 건전한 놀이문화가 없고, 가정에서의 돌봄과 사회로부터의 교육의 수준의 현저히 떨어지는 몽골의 청소년들에게 놀이를 통해 함께 하는 기쁨, 즐거운 에너지, 좋은 미래를 향한 열정을 불어넣고자 봉사자로 자원한 것이다.
우리는 무척 아쉬웠지만 두 사람을 열렬히 응원했고 이들을 통해 정말 몽골 청소년들이 살아나는 변화가 있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기철과 영하는 떠나는 사람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인, ‘몽골로 놀러 와’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내가 그걸 덥석 받았다.
그게 내 여행의 첫 행선지가 몽골이 된 이유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몽골 여행을 많이 간다. 그래서 여름 성수기 때는 비행기 값도 많이 비싸고 몽골 대사관 비자과에는 매일 아침 열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몽골은 남한보다 15배나 넓은 땅을 가지고 있지만 인구는 단 312만 명이고 그중에 절반 정도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집중되어 있다.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정복했던 드넓은 초원은 거의 대부분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몽골에 가면 자연 투어를 많이 한다. 몽골을 한 바퀴 크게 돌며 고비 사막, 바다 같은 홉스굴 호수,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 등 몽골의 자연을 만나는 여행이다. 차로 오랜 시간 오프로드를 달려야 하고 아무 이정표도 없는 곳에서 캠핑장을 찾아 며칠 씩 밥을 직접 해 먹고 잠을 자며 이동해야 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운전자와 가이드가 없이는 시도하기가 어렵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일정을 최소 5일에서 10일까지도 생각해야 하며 일인당 투어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보통 한 차를 꽉 채우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과도 동행으로 간다. 이 맘 때쯤 이면 몽골 여행 카페에서 동행을 구하는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모든 정보들을 몽골행 비행기를 끊은 지 한참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몽골에 할애한 시간은 고작 3일 반이었다. 친구들을 만나기엔 충분한 시간이겠지만 투어를 하기에는 택도 없다.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묻는 것 중 하나가 처음에 가는 나라가 어디냐는 것이었다. 몽골이라고 하면 두 가지로 반응했다. 하나는 사막, 호수,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꼭 보고 오라는 반응,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몽골에 뭐가 있는데? 하는 반응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몽골에 봉사를 떠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며 시간이 없어 투어는 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나중에 가족들과 다시 올 수 있도록 남겨두면 되니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그런 얘기를 자꾸 들으니 비싼 표를 사서 몽골에 와 놓고 제대로 여행하지 못하는 게 아까운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조금 들긴 했다.
기철은 5개월 사이에 안 그래도 까만 얼굴이 더 까매지고 살도 조금 빠졌다. 영하는 최근 무리했는지 병이 났다. 나를 보고도 생각만큼 반가워해주지 못하는 몸 상태였다. 하필 내가 왔을 때 이렇게 아프니까 내내 아팠던 것만 같아서 혼자 타지 생활하는 친구가 못내 걱정스럽다. 타지인이 몽골에 와서 생활을 하면 꼭 이렇게 6개월쯤 지났을 때 한 번 앓는다고 한다. 이 시기가 지나면 또다시 힘을 내겠지? 내가 세계여행의 시작을 몽골로 오면 친구들에게 응원과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쁜 와중에 더 부담을 주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파견된 지 5개월밖에 안됐고 다른 사람들이라면 1년 차에는 언어 배우고 문화 적응하느라 바쁠 텐데 이미 두 사람은 시작한 일들이 산더미다. 몽골에 와서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보니 마음이 애타서 천천히 할 수가 없었던게지.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