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의 소설 <호텔이야기>를 읽고
2022년 12월 31일, 서울 중구의 #밀레니엄힐튼서울 이 마지막 영업을 하고 간판을 내렸다. 호텔 하나가 문을 닫는 게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내게는 본격적인 결혼 준비가 시작된 곳이 바로 힐튼 호텔이기에 그 장소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게 남 일 같지만은 않다. 실제로 대한민국 건축가가 세운 최초의 호텔 건물이라는 명예도 갖고 있는 이 곳은, 1983년 문을 연 뒤 남산 자락을 40년이나 지켰다. 그만큼 이곳에 애틋하게 기억 될 추억들이 어디 내 것 말고 한 둘일까.
아는 사람들은 익히 잘 알겠지만,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공원뷰는 서울 N타워를 비롯해서 #백범광장공원 중턱을 조망하는 훌륭한 뷰를 자랑한다. 1983년에 문을 열었으니 우리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세계 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대부분의 의전들을 여기서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역사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밀레니엄 힐튼이 사라진다해도 한국 관광 산업에 별 타격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가 끝나고 철거된다는 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그렇게 개인적으로나마 힐튼 호텔의 영업 종료 소식에 아쉬워 하고 있을 즈음, 마침 우연히 임경선 작가의 소설, <호텔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다정한 구원> <태도에 관하여> 등의 에세이로 적지 않은 출판계의 팬들을 거느린 임경선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었다. 소설은 비록 힐튼 호텔을 배경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연말이면 문을 닫는 고상하고 유서 깊은 가상의 호텔, "그라프 호텔"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자연히 그런 설정만으로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설은 얼마 안 가 자신의 역사를 끝내고 세계의 역사에 편입될 그라프 호텔의 운명에 발맞춰, 자의와 상관없이 환경의 변화를 맞닥뜨리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어내고 있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삶의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들이 달랐다. 어떤 인물은 갑작스레 긍정적인 각성을 하기도 하고, 자기 안의 불안을 감지하기도 하며 ‘환경의 변화’에 반응한다. 또 어떤 인물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패 삼았던 모든 것들을 신기루처럼 잃어버려서 독자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동안은 미처 몰랐던 삶의 섭리를 깨닫으며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향한 예리하고도 현실적인 작가의 시선이 흥미로웠고, 덕분에 오랜만에 단편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작가는 힐튼 호텔을 염두하고 이 소설을 써내려 간 것일까?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이 책을 다 읽은 뒤, 독자로서 내가 생각한 것은 하나였다. 다양한 환경의 변화 앞에서, 어떤 태도나 감정에도 정답이라 할 건 없다는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가능한 질문은 오로지 그뿐이라는 걸, 그저 다시금 되새겼다.
소설에서 다시 실제 힐튼 서울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현재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근무하는 직원 80%는 바로 퇴사를 하지만, 다른 직원 20%는 호텔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호텔의 철거 이후 2027년 준공 예정인 호텔과 오피스 복합단지의 자산관리 회사에 소속되어 지속적으로 근무한다고 한다. 이렇듯, 소설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외부의 변화에 대하여 각자가 내리는 선택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건, 서른 즈음 넘은 성인이라면 아마 이견이 없지 않을까.
2022년 한 해가 끝이 났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 즐겁거나 희망 찬 사람도 있고, 좌절하거나 씁쓸한 사람도 있었으리라 감히 짐작해본다. 그러나 그 감정이 무엇이든, 또 그에 대한 반응을 유보하든 정면 승부를 하든, 자기 자신의 무언가를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은 가치가 있다. 이는 나만 하는 얘기가 아니라 현명하고 유명하신 임경선 작가님께서도 비슷하게 말씀하신 거니까 믿어도 좋다.
한 해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소설 <호텔이야기> 마지막 단편인 <초대 받지 못한 사람>의 한 구절을 덧붙이고 싶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조금 열심이고 조금 공허한 오늘만을 끝도 없이 살아가는 기분.“ 그래, 실은 그 기분이란 멋지지도 않고 부정적인 것도 같지만 사실 흔하다. 하지만 그건 그대로 괜찮다. 그런 기분으로 한 해를 보냈다 해도, 또 잠시 보낸다 해도 별 문제 없다. 우리는 분명히 나름의 의미를 만드는 중일테니까.
나는 책을 덮고 12월 31일이 오는 날, 누군가에게 꼭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