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XXSTV Apr 19. 2016

홍콩에 해 저물면 홍콩이 그리워진다.

맥주를 마시다 보면, 홍콩이 그리워졌다.

홍콩의 밤, 침사추이의 맥주축제 현장에서 중국의 선전에서 왔다는 녀석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2년 전의 일이다. 이 녀석은 내게 홍콩, 재미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처음으로 한번 기분을 내 보려고 홍콩까지 왔는데 물가는 비싸고, 그만큼 볼거나 할 건 또 없어서 미치겠다는 것이었다. 맥주축제와 함께 한창 진행 중인 드래곤보트 축제를 재밌게 구경한 나로서는 위로의 말을 전할밖에.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홍콩이 너무 좋았으니까.

홍콩에 가기 전부터 나는 홍콩이 좋았다

홍콩에 가기 전부터 나는 홍콩이 좋았다. 발단은 양조위와 금성무의 <중경삼림>이라는 영화였다. 외국영화를 볼 때 주로 하는 짓인데, 나는 주인공이 영화 속에서 누비던 건물이며 그 장면 속의 공간과 순간들을 직접 느껴보자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홍콩이라는 도시에 가면 꼭 청킹 멘션에 가봐야겠다. 알딸딸 해질 때까지 바에서 양껏 술을 마신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첫 여자를 사랑해보자 따위의 내용을 머리 속 한 곳에 잘 넣어 놓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항공사에서 일하게 되고, 홍콩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청킹 멘션을 머릿속에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중경삼림>속에 있었다.

여전히 성업 중인 것으로 보이는 청킹 멘션에 대해 찾아보니, 센트럴 역에 내리면 중경삼림에 나오는 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청킹 멘션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홍콩에 도착했을 때, 항공사에 입사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청킹 멘션은 더럽고 지저분한 숙소였다. 방은 작고 소음이 심했으며, 비위생적이었다. 센트럴과 침사추이에는 크고 멋진, 그리고 심지어 비싼 호텔과 건물들이 즐비했다. 물론 청킹 멘션 같이 그렇지 않은 빌딩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건물들이 이 도시에서 부족한 존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석구석의 낡고 오래된 공원이나, 길거리와 나름 어울리며 그 자리에서 있었을 뿐이었다.


홍콩에 머무는 동안 나는 드래곤보트 대회가 열리는 침사추이 근처를 돌아다니다 내키는 곳에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커피 따위를 마시곤 했다. 침사추이 광장에서는 항상 드래곤보트 대회에 참가하고 이제 막 들어온 팀들과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반갑게 맞으며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였으나 나는 홀로 떠나온 여행자였으므로 멀찍이 앉아 조용히 맥주를 마실 뿐이었다. 그럴 때면 왁자지껄 떠드는 저기 저 드래곤보트 선수들 사이에서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동료들과 함께 소중한 순간을 즐기는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나와 같았던 사람들, 언젠가는 내 모습이 될 사람들이 보이는 이 공간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나도 용선 타는데 왜 몸이 저렇지 않은걸까

혼자 홍콩을 여행하는 동안 홍콩에서는 까닭 모를 노스탤지어가 자주 느껴졌다. 홀로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가장 좋은 음식이란 모처의 편의점에서 쉽고 싸게 사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등이었다. 편의점마다 또 방문하는 나라마다 그 종류가 어찌나 다양한지 골라먹는 재미마저 있었다. 그래도 한 번씩은 그렇게 '음식'이 그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곧 나는 왁자지껄 축제가 한창 진행 중인 침사추이 근처의 한 레스토랑에서 먹고 싶던 음식들을 시켰다.

맥주 맛이 기가막혔던 걸로 기억한다. 홍콩의 그 열기, 그 습도 그리고 그 맥주

그렇게 샌드위치가 아닌, '음식'을 먹으며 축제의 열기가 느껴지는 침사추이 광장을 바라보면, 나와 닮은 저 사람들이 보였다. 벌써 비워버린 네 번째 맥주와 함께라면 홍콩은 내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노스탤지어의 원인은 그것이었다. 홍콩은 나와 닮았다는 것. 그러므로 홍콩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홍콩을 그리워할 운명이라는 것. 홍콩에 있으면서 홍콩을 그리워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면, 꼭 드래곤보트 축제 기간에 홍콩에 방문해 네잔 째 맥주를 비워 보시길.


취미로 용선을 계속 탄다면 언젠가는 여기에서 내 팀과 함께 용선을 타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진정한 여행자가 됐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곳을 포함해서 세상 모든 곳이 그리운 사람이.






작가의 이전글 마드리드: 강남스타일과 엘클라시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