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90일 이상 걸리는 자가용 과정, 난 이렇게 52일 만에 끝냈다.
자, 마지막으로 Short field 랜딩을 보여줘
2019년 12월 21일, 유나이티드 항공의 현역 기장인 시험관이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Private Pilot License) 실기 시험(Checkride) 마지막 과제로 Short field 랜딩(최대한 활주로를 짧게 사용해 랜딩 하는 기술)을 요청했다. 비행원 수석 교관의 모의 체크라이드를 통과할 만큼 자신 있는 기동이었다.
관제탑은 마지막 랜딩에 길고 넓은 활주로 35 Left가 아닌, 좁고 짧은 35 Right를 배정했다.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는 첫 번째 Checkride에서 하필이면 랜딩 난이도가 높은 35R을 받다니.. 뇌리에 스치는 잡념을 애써 지워내고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괜찮아 이것만 잘 하면 합격이야'
랜딩 절차를 시험관에게 읊으며 비행기를 활주로에 가져갔다.
"Power checked, Airspeed checked, Wind checked. Runway insight. Landing proceed"
랜딩 순간, 돌풍으로 비행기가 휘청인다. 세상이 급속도로 느리게 돌아가고 그만큼 내 사고는 가속한다. '어? 밀리네?' 몸이 바로 반응한다. 반대 방향으로 러더를 차서 비행기 진행 방향을 활주로 중앙으로 되돌려 놨다. 이 모든것이 1초만에 일어났고 그 찰나의 순간 시험관이 비행기 요크를 잡으려 했다. 시험관이 요크를 잡으면 바로 실격이다.
'아 이거 랜딩 부적합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는데? 35R의 악명을 내가 Checkride로 직접 경험하는구나..' 시험관은 입을 굳게 다문채 활주로에서 주기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5분여의 시간이 왜 이렇게 불편하고 길게 느껴지는지. 35R을 준 관제탑이 야속해지기 까지 했다. 비행 가방을 정리해 비행기에서 내렸더니 시험관이 악수를 청한다.
축하해, 넌 지금부터 자가용 조종사야!
이 포스팅은 한국에서 그로스/마케팅을 하던 내가 스타트업 그로스해킹 경험을 완전히 다른 분야에 접목시켜 목표를 역산하고 이를 달성해낸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이다.
*글쓴이의 변 1 (1이 있다는 얘기는 2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본 글은 친절하지 않은 분석과 사실의 나열이 있으며 전문용어가 등장해 읽는데 거부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다양하고 넓은 범위에서 오남용 되고 있다.
특히 메가 라운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성장 과정의 '마법'같은 그로스핵 전설이 이를 더 부추긴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처럼 충분히 훌륭한 그로스 스토리는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마법은 스타트업 종사자 모두를 홀린다.
(*아서 클라크의 과학 3 법칙, 제3법칙)
그로스해킹은 '마법'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고방식과 그 과정일 뿐이다. 이렇게 그로스해킹을 하나의 마인드셋으로 정의하면 회사나 서비스의 성장 이외에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이 가능하다. (이런 접근법을 '라이프 해킹'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스타트업에서 마케팅/그로스 업무를 해온 사람으로서 또 문제엔 항상 최적해가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미국 PPL(Private Pilot License: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 과정을 해킹하기 위해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인도 평균 90일 이상 소요되는 미국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을 한국인으로써 단 52일 만에 취득 함으로써 그로스 마인드를 인생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
-10월 31일 첫 비행, 12월 21일 자격증 시험 합격(52일 소요)
-평균 90일 대비 42% 기간 단축. 목표 33% 단축 대비 19% Out perform
명확한 문제 정의
문제의 구조적 분해/해석
분해된 문제를 공략
PPL 평균 취득 기간 90일. 이거 왜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리지? 내가 볼 땐 별거 없는데? 어떤 요소가 90일이라는 시간이 들게 하는 걸까? 어떻게 이걸 줄일 수 있을까?
평균 90일이 걸리는 미국 자가용 조종사(Private Pilot License) 자격증을 60일 만에 따서 취득 기간을 33% 이상 단축시키자.
자가용 조종사는 눈으로 주위 환경을 살펴보며 비행하는 '시계비행(Visual Flight Rule)' 방식을 취하므로, '자격증을 효율적으로 따기 위한' 방정식을 f(x)=날씨*스케줄*학습능력*체력으로 정의했다. 이 요소를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중요도가 높고, 통제 가능한 변수를 관리하면 효율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을 것이라 추론했고, 이것을 세부적으로 분해해 검토했다.
-통제 불가능 하지만 비행원 위치로 헷지. 1년 중 70~80% 이상 시계비행을 할 수 있는 날씨를 가진 곳을 1순위로 고려(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텍사스 등)
-스케줄 자유도 고려, 스케줄의 자유도가 낮다면 원하는 속도로 진도를 뺄 수 없음
-교관 선택 및 변경의 자유가 있는지 고려. 불가능한 경우 존재
-두 공간이 물리적으로 인접한 경우 스케줄 이점을 누릴 수 있음.
-리서치한 평균 비용보다 저렴하면 비용 절감 가능
위 항목을 고려한 결과,
a) 1년 중 70% 이상 시계비행을 할 수 있고
b) 스케줄 및 교관 선택이 자유롭고
c) 비행원 근처에 거주할 수 있는 곳이 있는
d) 비행원 교육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텍사스주 휴스턴의 United Flight Systems를 비행원으로 선정했다.
Solo flight(솔로 비행)
Checkride Prep(자격시험 준비)
PPL은 학생 조종사가 혼자 비행하는 '솔로'를 얼마나 빨리 하느냐에 따라 전체 소요시간이 결정된다.
그리고 솔로 비행은 아래의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교관의 지지 서명(Endorsement)
비행 퍼포먼스(랜딩 및 ATC 실력)
날씨
교관 인도스 f(x)=교관의 학생 신뢰 정도*이착륙 실력*무선 교신(ATC) 실력
따라서 ATC를 포함한 비행 퍼포먼스가 나오면 교관의 지지서명을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착륙과 ATC 2가지를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심지어 기초 기동보다 랜딩을 먼저 마스터하겠다고 교관에게 선언하기까지 했다. 날씨는 통제할 수 없었지만 오전과 오후 심지어 저녁까지 하루 2개 이상 시간대의 스케줄을 잡는 것으로 헷지 했고, 거주지와 비행원이 가까웠으므로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도 탄력적으로 대응 해 추가적인 스케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는 17번째 비행에서 ‘랜딩 감'을 확실히 잡았다. 소요 기간은 첫 비행 D+19, 비행시간 26.5시간, 이착륙 횟수 128회. 일반적으로 이착륙 횟수가 100회가 넘어가면 랜딩에 대한 감이 생기는 것 같다.
그 뒤 약 20시간을 ATC와 먼저 배웠어야 할 기초 기동을 숙달하는 데 사용했고, D+36, 총 비행 43.5시간에 솔로 비행을 나갔다. 솔로를 나간 시점의 이착륙 횟수는 총 202회
솔로 이후 FAA의 Private Pilot Requirements를 채우면서 자격증 심사인 Checkride를 준비했다.
크로스컨트리 PIC(Pilot In Command:기장) 시간
야간 비행시간
계기 비행시간
Written test(필기시험) 합격
Oral test 준비
PPL 시험 응시 자격요건에 비행 경험 이외에 70점 이상의 Written test 결과가 필요한데, Gleim이라는 20불짜리 문제집을 2주 풀면 90점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 은행 형태라 문제를 풀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방대한 양의 교과서를 따로 공부를 하는 것보다 고득점에 더 효율적이다.
Checkride에서 시험관이 Oral test를 진행하며 지식수준을 검증하는데, 예측 불가능한 질문으로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있으므로 같은 시험관에게 Checkride를 한 인원과 교관을 수소문해 출제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팔로우업 했다.
+필기시험 점수가 높은 경우 오랄 테스트 시간이 짧아진다는 유의미한 통계가 존재해 90점 이상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본인 필기 96점 획득)
목표로 한 60일 이내로 PPL을 딸 수 있었다. 감히 예상하건대 PPL 한국인 최단기간 취득이 아닐까 한다. 나보다 더 빠르고 계획적으로 PPL을 딴 조종사가 있다면 꼭 연락 바란다. 내가 놓쳤던 부분을 확인하고 앞으로 내가 더 나은 그로스핵 마인드를 탑재하기 위한 자양분으로 삼고 싶다. 커피도 내가 당연히 사고.
그로스마인드를 가지고 구조적으로 접근하면 그 어떤 현상이든 간에 최적해에 한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취지로 이 글을 적어내려 갔다. 필요 이상으로 Tecky 하거나 Geeky 한 기술이라기 보단 하나의 사고방식 또는 마인드셋으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네 모두 인생에 필요한 단 하나의 그로스해킹 아닐까?
PPL 취득 후 내 나이보다 2배는 많은 비행기를 끌고 대한민국보다 7배 큰 텍사스 전역을 누볐다.
순댓국을 먹으러 달라스 한인타운으로 향하는 밤 비행을 서슴지 않았다, 치즈버거가 유명하다는 2시간 거리의 공항으로, 바비큐가 유명하다는 동네로 놀러 가고, 굴을 먹으러 뉴올리언스로, 스프링브레이크 땐 플로리다로 날아갔다.
축구하러 비행기 손수 끌고 원정을 가고, 계기 접근 절차 연습한다고 하루에 한대의 항공기도 방문하지 않는 황량한 공항에 가 혼자 무선 교신을 하기도 했다.
공항에서 비행기에 기름을 넣는 파일럿에게 빌려주는 2시간짜리 무료 관용차를 타고 공항 근처 맛집을 누볐다. 면장에 잉크도 안 마른 초짜 파일럿만 믿고 신난 친구들을 태운 채 거센 바람에 Go around를 외치며 랜딩 직전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같이 다른 주로 1박 2일, 2박 3일씩 비행기를 끌고 Inter-state flight를 다녀오기도 했다.
호텔에 지갑을 놓고 돌아오다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다시 되돌아가 지갑을 찾아온 적도 있다. 남부 이곳저곳을 누비는 비행 그 자체가 너무나 즐거워서 프로페셔널 파일럿에 대한 마음도 생겨났지만 스타트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애정은 결국 내가 미국을 떠나 다시 한국의 스타트업 씬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하는 일이 마케팅/그로스해킹이라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써볼까 한다.
다음 포스팅은 뭘 써보면 재미가 있을까? 혹시 읽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리플 부탁드린다!
*글쓴이의 변 2
읽는 부담을 덜고 여러 편으로 이야기를 나눠 기승전결 구조로 마무리해보려 했으나 글쓴이의 내공 부족으로 인해 현 상태로 탈고했습니다. 다음 글은 더 쉽고 이쁘게 써보겠습니다. 끝까지 읽으셨다면 어떠한 종류의 피드백이라도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