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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덴 블루 Oct 03. 2023

꼰대 제로

“청소 시작”

군대에서 밤 9시에 하는 저녁점호 준비 청소를 알리는 고참의 말이었다. 일병이었을 때 청소 구역은 내무반 침상이었다. 속상한 점은 관물대 아래의 모포 각 잡는 것이었다. 관물대 아래의 매트리스를 꺼내어 모포를 잘 접어서 매트리스 위에 놓고 손으로 직각을 만들며 각을 잡았다. 이렇게 청소하고 있을 때 병장들은 청소에서 열외였다. 병장들은 주로 TV를 보고 있었다. 병장들이 TV를 볼 때 모포를 관물대 아래에서 꺼내어 팔꿈치를 모포에 기대어 보고 있었다. “어, 내가 각 잡아놓은 모포”, “병장이 되면 나는 저렇게 안 해야지”라고 하면서 병장이 TV를 보고 일어나면 다시 모포 각을 잡았어야 했다.


1년여 시간이 흐른 뒤 나도 병장이 되었다. 저녁에 점호 준비를 위해 상병까지 청소하고 있었다. 병장이라 청소는 안 하기에 TV를 보고 있었다. 

“아니, 팔꿈치 밑에 모포가 있는 게 아닌가!”

과거에 청소하면서 고참들의 싫은 행동을 나도 어느샌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을 거슬러 이등병 때 군수 장교의 지시를 받았다. 지시는 매일 저녁 부대 밖의 군수 장교 관사로 군수 장교가 키우던 반려견에게 밥을 주는 것이었다. 식사 후 남은 짬밥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그것을 들고 반려견 밥을 주러 가던 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지시하면 당연히 따라야 했다. 요즘 발생한다면 이것이 ‘갑질’이다.


갑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사회 일부에 남아있는 느낌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봤던 ‘머리 박기’ 장면이었다. 사회복무 요원이 회식 자리에서 술을 못 마신다고 하자 머리 박는 장면이었다. 과거 군대에서 항상 자행되던 가혹행위인 ‘머리 박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요즘 군대에서도 그런 가혹행위, 얼차려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혹행위가 아직도 자행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갑질은 아직도 독버섯처럼 어딘가에 생겨나고 있는 듯하다.


“덴마크에는 갑질이 있을까?”

상급자가 직위를 이용해서 하급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게 아주 부자연스러운 나라가 덴마크라고 생각한다. 덴마크는 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에 갑질이 잘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수평적인 문화는 직장에서도 뿌리내려져 있다. 덴마크 회사를 방문하면 누가 사장님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한국처럼 사장실이 따로 있지 않고 사장과 직원들의 자리가 똑같기 때문이다.


덴마크 드라마 ‘리타’를 넷플릭스에서 봤다. ‘리타’는 폴케스콜레에서 발생하는 내용을 많이 다루는 드라마고, ‘리타’는 학교 여선생님이다. 폴케스콜레는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중학교에 해당하며 1학년부터 9학년까지의 9년제 학교다. 드라마에서 ‘라스무스’라는 교장선생님이 나오는데,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을 보고 반갑다며 ‘라스무스’라고 교장선생님의 이름을 불렀다.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교장선생님이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것도 생소했지만,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드라마 ‘리타’에서 리타 선생님은 담배 피우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학교 건물 입구에서도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어떤 장면에서 리타 선생님이 학생들을 인솔하여 스웨덴 참관 교육을 하러갔다. 거기에서도 리타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자 스웨덴 담당자가 “여기는 금연 지역이니 담배를 꺼주세요”하는 장면까지 나왔다.

“리타 선생님이 골초네!”

이렇게 말하며 드라마를 봤었다. 그런데 실제로 덴마크에 가니 덴마크인들은 버스정류장에서든 어디든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웠다.


넷플릭스에서 덴마크 드라마 ‘Borgen’을 봤다. ‘비르기테’라는 덴마크 여총리가 주인공인 정치 드라마다. 어느 날 장관 두 명이 총리를 찾아와서 보고하는 장면이었다. 장관들이 총리에게 “이건 총리님 책임이에요”라고 말하는 한글 자막을 보았다. 영어 자막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똑같은 장면을 영어 자막으로 봤다. “We must say, this is your responsibility, Birgitte”라는 자막을 보았다. 영어 자막에는 총리의 이름인 ‘비르기테’를 썼고, 한글 자막에는 총리님이라고 표기했다.

“와, 정말 대단하다! 한국이라면 대통령 이름을 그냥 부르는 건데?”


어떤 장면에서 누군가 총리께 보고한다며 집무실에 찾아왔다. 걸어와서 탁자에 걸터앉았다. 총리는 그에게 다가가 “커피와 빵을 드실래요”라고 물어보고 직접 커피와 빵을 가져왔다. 

“총리가 커피를 가져온다고? 저게 가능해?”

대단히 한국적인 사고를 하는 나에게는 이 장면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떻게 총리 앞에서 무례하게 탁자에 앉고, 총리가 직접 커피를 가져온다는 말인가! 아마 이것은 실제 덴마크의 실상을 나타내는 장면일 것이다.

     

상하관계가 뚜렷한 대한민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어떤 장소에서 처음 만나면 하는 말이 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나이를 물어보고 서열 정리를 맨 먼저 하는 편이다. 나이가 본인보다 많으면 존댓말을 하고, 나이가 적으면 편하게 말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직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위계 서열로 나타나는 조직문화이다. 상명하복의 직장문화가 아직도 있지만 점차 바뀌고 있는 분위기다. 대한민국의 이런 조직문화는 상급자가 갑질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발판인지 모른다.


우리나라가 덴마크와 같은 수평적인 사회라면 갑질을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없지 않을까? 꼰대로 치부되는 사람도 거의 사라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덴마크의 너무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부분은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씩 덴마크의 합리적인 부분을 이해하고 체득한다면 적어도 꼰대가 될 확률은 낮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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