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당원들 표심 중요성 커질 가능성
곧 있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대한 한국 언론 분석을 보면 거의 다 파벌 중심이다. 어떤 파벌에서 누구를 지원하고 어떤 정치인이 누구를 밀고 등등. 아래 기사들이다. 이런 분석은 이번 총재 선거의 중요한 의미를 놓치게 한다.
물론 파벌 역학이 총재 선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이번 선거는 양상이 다소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한 파벌이 누군가를 집중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위에서 세 번째 기사에도 있지만 이번 총재 선거 뒤에 바로 총선이 있기 때문에 개별 의원들은 자신의 당선까지 생각해야 한다.
과거 일본이 중선거구제였을 때나 선거까지 시간이 있을 땐 철저히 파벌 논리에 따라 총재를 선출하면 됐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 일반인들에게 인기 없는 사람이 수상으로 뽑히면 소선거구제 하에서 자신의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다시 설명하면 중선거구제에서는 자신을 지지해줄 확실한 지역 기반만 있으면 누가 총재든 큰 관계는 없다(선거구 선출인원이 3명인 경우 대략 20% 안팎만 받아도 당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소선거구제는 적어도 50% 가까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역기반만으론 장담을 못한다. 이 때문에 스가 지지율이 급락하자 선거에 빨간 불이 켜진 의원들이 일거에 등을 돌린 것이다.
의원들의 지지가 이처럼 유동적인 상황에 파벌 분석은 거의 점을 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시점에 파벌 논리가 자신의 당선보다 중요할까? 지역기반을 꽉 잡고 있는 중진 이외에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번 총재 선거는 '자민당의 평상시 형식대로' 이뤄진다.
즉 전국에 있는 120만여 명의 당원이 투표에 참여한다. 자민당 당원들의 투표성향은 한국의 일반 인식과 다르게 대체로 평균보다 약간 오른쪽 정도다. 전국 행정단위별로 투표가 이뤄지고 주어진 투표 숫자에 비례해 출마자에게 표가 배분된다.
1차 투표에서는 국회의원이 383표(1인 1표), 당원표가 383표로 동수로 돼 있다.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면 바로 총재가 선출되고 그렇지 않으면 상위 1, 2위를 중심으로 결선투표가 시행된다. 결선투표는 국회의원 표가 절대적이 된다(의원 383대 지역 47).
예를 들면 2012년 아베가 당선됐을 때 1차 투표에서 당원표를 가장 많이 받은 건 165표의 이시바 시게루였다. 아베는 87표로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즉 생각하는 것만큼 자민당원들이 극우인 아베를 지지하지 않았단 얘기다. 그러나 아베와 이시바가 의원 투표 비율이 절대적인 결선투표로 가면서 결과가 완전히 뒤집힌다. 평소 의원들과 관계가 소원했던 이시바에겐 결선투표가 독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압도적인 지지, 즉 1차 투표에서 일부 의원표를 합해 과반수를 얻을 수 있다면 파벌 논리는 영향이 제한된다.
2001년 고이즈미 때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고이즈미는 총재 선거에서 본인이 '자민당을 깨부수겠다'며 연일 과격한 개혁 발언을 이어갔고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다나카 마키코(다나카 카쿠에이 수상의 딸)와 일종의 러닝메이트를 꾸린다.
아래는 당시 '고이즈미 선풍'을 담은 영상. 가운데 여자가 다나카 마키코다.
고이즈미의 라이벌은 몇 년 전 수상으로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절치부심하며 재출마한 하시모토 류타로였다. 하시모토는 거대 파벌을 이끌고 있었고 수상이었으니 당연히 인지도도 높았다. 선거 초반엔 하시모토가 유력시됐었고 고이즈미는 총재 선거에 3번째 도전하는 유력 정치인 정도 수준이었다.
고이즈미는 위와 같은 정치 전략과 더불어 하시모토의 유력 지지단체인 '일본유족회(자민당 당원으로도 상당한 규모, 참전군인들의 유족모임)' 표를 뺏어오기 위해 '임기중 야스쿠니 참배'를 공언한다. 일본유족회의 지상 최대 목표는 늘 야스쿠니 참배고 고이즈미는 이를 실행한다.
여기에 우정사업 민영화도 내거는데 이 역시 하시모토의 지지기반과 관계가 있었다. 일본에는 지방 유지들이 대대로 경영하는 '특정우체국'이라는 게 있었다(한국에도 검색해보니 있긴 있다). 이 특정우체국장 모임이 자민당, 특히 하시모토 파벌의 주된 지지단체였다(이 역시 십수만 명 규모). 고이즈미가 우체국 민영화로 경제 개혁 등을 외쳤지만 실상은 이들의 경제기반을 붕괴시키는 게 더 중요한 목적이었다는 게 다수설이다(고이즈미는 90년대에 우정장관을 역임).
고이즈미는 유족회는 끌어안고 특정우체국은 민영화하는 개혁을 내걸면서 큰 주목을 받는다. 그 결과 지방표에서 압승을 거두며 원사이드하게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다. 특히 의원들도 이미 바람이 고이즈미 쪽에 분 걸 감지하고 속속 고이즈미 쪽으로 갈아탄다 (물론 고이즈미도 세이와카이 소속해 있었으나 대세는 아니었다). 이는 하시모토가 중심이 된 게이세이카이(현재 타케시타파) 몰락의 시발점이었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도 관심은 파벌 역학보다도 자민당 당원, 전체적으로 봤을 땐 여론 동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파벌이 선거를 결정짓기보다 여론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발표된 총재 여론조사를 보면 고노 타로 23%, 이시바 시게루 21%, 기시다 후미오 12%, 타카이치 사나에 3%, 노다 세코 2% 순이다(요미우리신문 조사). 교도통신에서도 고노가 31.9%, 이시바 26.6%, 기시다 18.8%로 순서는 그대로였다.
몇 시간 전 이시바가 고노를 지지한다는 속보가 나왔는데 이렇게 되면 선거판은 파벌 역학을 떠나 원사이드하게 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이들 후보 중에 타카이치를 제외하고는 아베에게 유리한 후보가 없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다행스럽다고 보고 있다.
고노는 같은 파벌 수장 아소는 몰라도 아베에 대해서는 충분히 청산 작업(?)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본다. 딱히 크게 빚진 게 없거니와 이전 글에도 적었듯 오히려 서로 불신하는 관계에 있다고 한다.
물론 고노가 될 때 일본에 도움이 될까는 의문부호가 남는다. 실적보다 퍼포먼스를 우선하고, 솔직히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소위 아베 일당으로 대변되는 극우 세력은 아니라는 게 그나마 안심거리일까. 스가가 의도치 않게 그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자민당 우경화'의 발걸음을 일단 멈춰준 듯해서 솔직히 이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여기서의 우경화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살짝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