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리뷰에 적은 대사는 각본집을 참고했습니다. 실제 영화에 나온 대사와는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서래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난 그게 서래씨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해준이 서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해준은 꼿꼿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꼿꼿한 서래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꼿꼿하다는 건 무얼까요. 삶을 꼿꼿하게 지탱해주는 중요한 믿음이 있는 사람 아닐까요. 해준은 경찰로서의 자부심과 품위가 삶을 지탱하고요, 서래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유해를 한국의 ‘내 산’에 뿌려주기 위해 삶을 계속해서 이어나갑니다. 해준과 서래는 꼿꼿하다는 점 말고도 비슷한 점이 많은 ‘동족’입니다. 아내인 정안과 아들의 말은 해준이 사용하는 말과 달라 이해하기 어려워하고요, 후배인 수완은 해준의 말을 ‘시집 내면 알려주세요’ 따위의 말로 대답합니다. 오로지 서래만이 해준과 동일하게, 정확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마침내, 단일한, 붕괴, 품위”같은 말들을 나누면서 둘의 사랑은 생겨나고, 커집니다. 서로가 비슷한 사람임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사랑을 위해서 자신들을 동족으로 만들어주었던 꼿꼿함, 그리고 인생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해준의 아내인 정안은 다릅니다. 정안은 해준의 본질을 사랑한다기보다는 ‘매주 섹스를 하는 남편’으로서의 해준을 요구합니다. 섹스를 해야만 고혈압과 심장병에 좋고요, 석류를 먹어야 폐경이 오지 않고요, 밉고 싫어도 부부이니 섹스를 매주 해야합니다. 하지만 정안은 해준의 본질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살인도 있고 폭력도 있어야 행복하잖아.” 정안은 해준의 본질을 알고 있지만, 해준이 정상적인 부부로서 기능할 때까지는(서래와의 불륜을 알기 전까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정안은 ‘사랑’이나 ‘본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결국 정안은 해준과 서래의 사이를 알게 되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석류청(여성성)과 자라(남성성)를 가지고, 남편 기능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혹은 해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이주임과 함께 가차없이 떠나버리는 사람입니다. 정안의 <헤어질 결심>은 화도 내지 않고 “좀 비켜줄래?” 하고 말없이 떠나는 결심입니다. 스스로를 미결 사건으로 만들어 해준에게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들어버리고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사라져버리는 서래와는 정반대입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에서 정안이 가장 좋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정안은 극히 위험한 시설인 원자력 발전소를 통제하고, 매뉴얼에 따라 위험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한다는 겁니다. 어쩌면 해준도 극히 위험한 사람이고, 정안이 그를 통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해준은 정안의 말대로 살인과 폭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품위와 신념, 수사할 때 폭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제어해주는 일종의 고삐가 정안일 수도요.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정안을 사랑하는 건 아니듯이, 해준도 정안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원자력의 본질은 붕괴해야만 기능합니다. 해준 역시 붕괴할 줄 알면서도 서래를 놓을 수 없습니다. 해준은 붕괴라는 위험을 바라는 본질을 가졌기 때문에, 붕괴를 만들어내는 서래라는 존재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린 것은 아닐까요.
“나는 왜 그런 남자들하고 결혼할까요? … 해준씨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주지 않으니까.”
해준은 서래와 본인을 동족이라고 느껴서 사랑에 빠지잖아요. 그런데 둘은 정말로 ‘동족’이었을까요? 서래는 꼿꼿한 사람이었지만, 그 꼿꼿함이 스스로 원한 건 아닐 겁니다. 상황이 그녀를 꼿꼿하지 않으면 안 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잖아요. 독립운동가의 후손, 고생하며 죽어간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한국에서 되찾아야할 ‘내 산’, 그리고 그 산에 뿌려주고 싶은 유골들… 이런 서래의 기둥들은 그녀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서래의 삶을 이어가야만 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밀입국하고, 자신의 몸에 낙인을 찍는 나이많은 이민국심사관과 결혼하고, 참아내다가 결국 남편을 죽이고 맙니다. 그렇게 서래를 지탱해주던 기둥들이 바스라지고 무너져갈 때, 해준이 그녀의 삶에 등장합니다. 해준의 사랑은 서래의 꼿꼿한 기둥을 마저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대신 채워나갑니다. 서래는 첫 남편의 살해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해준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아직 자신의 기둥이 남아있거든요. 해준이 그녀를 보호하고 떠난 후에도, 서래의 기둥은 점점 무너지고 사랑으로 채워지다가, 402일 후 만난 해준이 그녀의 기둥이었던 유골을 호미산에 뿌려주면서 기둥이 완벽하게 사라지고, 해준에 대한 사랑만이 남아 그녀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채운 사랑을 위해 두번째 남편을 죽이고, 이번에는 해준을 보호하기 위해 해준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이미 그녀는 해준의 사랑이 자신을 가득 채웠거든요. 그녀를 지탱하는 기둥을 변하게 했거든요.
“당신이 사랑을 말한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그리고 해준이 서래를 떠난 402일 이후, 그 둘은 변해있습니다. 서래는 해준처럼 스마트 워치로 녹음을 하고요, 해준은 더 이상 녹음을 하지 않는 일반 시계를 찹니다. 서래의 번역기 목소리는 여자로 바뀌었고요, 해준은 더 이상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습니다.
서래는 해준에 대한 사랑이 자신을 가득 채워서 바꾸었음을 느끼고요, 해준은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자신의 기둥을 그녀가 무너뜨렸음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주던 기둥을 잃고, 사랑으로 완벽하게 채워져버린 서래는 사실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겁니다. 서래와 함께 있으면 해준은 꼿꼿한 해준일 수 없습니다. 자신은 해준을 붕괴시키는 존재니까요. 서래의 마지막 바람은, 해준에게 미결사건이 되어 해준이 자신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래는 해준의 조언을 실천하는 수밖에요.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서래는 사랑에 서서히 물드는 사람이었는데요, 해준이 그녀를 변하게 했습니다. 사랑에 서서히 물든 서래는 결국에는 ‘사랑이라는 파도에 덮쳐지는’ 마무리를 택했습니다. 미결이 되어, 완결이 될 <헤어질 결심>을 한 겁니다. 해준을 사랑하게 됐으니까요. 그것 말고는 본인의 삶을 지탱하는 다른 것들이 전부 사라져버렸는데, 자신이 있으면 해준은 붕괴되어버리니까요. 결국 서래는 구덩이에 꼿꼿하지 않게 앉아, 차오를 파도(사랑)을 맞이합니다. 이제 해준에게서 서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요.
“난 해준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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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헤어질 결심>에서는 사랑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살인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 산오와 서래가 대표적이죠. 검정치마의 <나랑 아니면>이라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넌 내게 말했지. 날 위해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이게 정말 사랑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래와 해준 모두 사랑에 서툴어서, 마지막까지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고, 서로에게 사랑을 떠넘겨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각본집에는 서래가 ‘사랑은 용맹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용맹의 사전적 의미는 ‘용감하고 사납다’입니다. 사랑을 위해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사랑이란 용감하고 사나운 것일까요. 서래의 사랑은 용감하고 사나워야만 했던 것일까요.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하고 사랑을 맞이한 서래는 용맹한 사람이 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