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인하우스 에이전시는 그룹사의 마케팅 씽크탱크가 될 수 있다
에이전시 업계가 쉽지 않다. 독립광고대행사 뿐만 아니라, 소위 대기업 계열사인 인하우스 에이전시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로 인한 마케팅 예산 축소, 그리고 그나마 잡혀 있는 마케팅 예산 역시도 올 해는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집행하겠다는 예산 집행의 보수성을 보인 클라이언트의 비율이 높다. 아래의 기사를 봐도 30%대의 비율만이 올해 광고예산 집행에 대한 clear vision & plan을 가지고 있다.
또다른 어려움의 요소는 마케팅의 프레임워크 자체가 변화됨이다. 제조업, 리테일 기반 클라이언트의 사업 자체가 디지털로, 그리고 이커머스 기반으로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다. 마케터의 역할은 좀 더 긴 호흡이 필요한 브랜드 매니지먼트 측면의 역할과 함께 즉시적으로 매출과 연계될 수 있도록 소비자의 CDJ를 파악하고 브랜드의 인지부터 구매욕구 관리, 여기에 구매로의 전환과 가격관리, 쿠폰 등 프로모션을 통해 최적의 구매조건을 만들고 구매하게 만드는 과정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이커머스 플랫폼은 물건을 판매하는 곳에서 물건의 판매를 위한 마케팅의 접전지가 되었다. 이커머스 플랫폼에 수수료도 지급할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함께 또다른 높은 광고비를 주고, 쿠폰 비용을 지급해야 할, 게다가 오픈마켓에서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원가는 증가함에도 매출을 증대하기 위해 영익을 점점 포기하면서 이커머스 내에서의 프레젠스를 확대하기 위한 출혈경쟁이 가속화 되게 되었다. 결국 돈을 버는 것은 플랫폼에 입점한 브랜드보다 플랫폼이었다. 아마존은 구굴, 페이스북에 이어 가장 각광받는 광고플랫폼이 되었고, 국내도 쿠팡을 비롯 여러 이커머스사가 광고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커머스 사이트 내에서의 소비자 대상 타켓팅 광고, 상위 노출, 검색 노출 등은 상품 차별화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https://www.seoulf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9303
자체 플랫폼 구축에 대한 브랜드들의 생각은 부정적이었었다. 높은 투자비용과 운영비용, 구축, 운영과 별개로 일정 수준 이상의 트래픽을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비용과, 운영인력, 그리고 이런저런 솔루션과 소프트웨어 비용 등. 게다가 무엇보다도 브랜드의 의사결정권자들 중 이런 변화를 대응할만한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인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변화된 시대가 투영된 그래프가 보여주는 위기감은 명확했다. 디지털이 선택이 아닌, 즉 할지 말지가 아닌, 어떻게 빠르게 시작해야 하는가의 확두로 변화하면서 브랜드들의 투자는 시작되었다. 자체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고 인력을 영입하며 플랫폼의 구축과 확장을 시도하였다.
이런 변화의 기로에서 효율성과 효과, 실적을 만들어 내기 위해 데이터의 중요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최초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며 이커머스를 영위했던 브랜드’들은 이커머스의 고도화를 위해, 더 이상 타 플랫폼에 입점하여 이커머스를 하면서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자체적인 이커머스몰 구축 등을 통한 D2C 비즈니스 영위를 위해서는 데이터의 헤게모니와 거버넌스 확보가 핵심임을 깨닫게 된다. 나이키는 아마존에서 방을 뺐고 수많은 브랜드들은 자체적인 D2C 플랫폼을 앞다투어 구축하고 있다. 자체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이 데이터 기반의 분석과 퍼포먼스, CRM을 고도화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data-driven marketing이라는 용어는 에이전시보다는 광고주 측면에서 좀 더 익숙한 용어가 되기 시작한다. 데이터와, 플랫폼을 보유하기 시작하면서, 기술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게 되고,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Mar-tech의 주체 역시 에이전시가 아닌 브랜드 주도적으로 전환된다.
https://www.cnbc.com/2019/11/13/nike-wont-sell-directly-to-amazon-anymore.html
핵심은 데이터이다. 데이터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데이터를 수집-분석-활용하는 역량이 내재화되어 있는가가 마케팅의 핵이 되었다. 보유해야 하는 데이터는 옛날 옛적 미디어 데이터만 읽어내던 시절과는 달라졌다. 나의 데이터, 다른 party의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가가 이슈이다. 나의 데이터는 점점 더 세분화되었고, 사람이 분석하던 시절을 넘어 기계가 학습하며 데이터를 추출하고 학습하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의사결정은 데이터를 통해 이루어졌고, KPI는 추상적인 인지도나 선호도를 넘어 매체별로, 콘텐츠 유형별로, 세분화되고 관리되기 시작했다.
이런 데이터의 활용에 있어, 브랜드는 고민에 빠진다. 과연 ‘이 일을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일까?’ TV광고 중심의 4대 매체를 집행하고 간접적인 혹은 사후적인 샘플링 조사를 통해 효과를 검증하려 했던 시절에 광고대행사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전략을 수립하고, 크리에이티브화 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디어를 바잉하여 광고를 딜리버한다. 가장 좋은 명예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광고제 수상이었다. 1,000명 남짓의 소비자 온라인 서베이나, 사전조사를 위한 FGI 등은 원천적인 문제인 bias 등을 포함하여 실제 결과와는 많이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수많은 소비자의 파편화되기 시작한 욕구와 니즈는 천단위의 소비자조사와 10단위의 FGI로 파악하기 너무 어려운 영역이 되었다.
광고주가 모를리 없다. 이렇게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데이터도 부족하고, 수집의 범위조차 지극히 한정적인 이런 전략이 예전처럼 절대적인 전략으로 역할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에 자체적인 마케팅 실행조직과 분석조직, 운영조직을 점차 갖춰가게 되었고, 외주를 주더라도 ‘종합’이라는 말이 달린 대행사보다는 각각의 영역에서 기술과 전문성이 높은, 혹은 가격경쟁력이 높은 파편화된 에이전시를 운영하게 된다. 심지어 글로벌, 국내 역시 마찬가지로 in-house content 스튜디오 등 광고주 마케팅 조직 내에 마케팅 전략/실행/운영 조직을 갖추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계열 종대사를 칭하는, 계열사로서 존재하는 인하우스와는 다른 개념이다)
광고주의 마케팅 전략 실행에서 절대적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았던 광고/마케팅 에이전시는 그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 극단적으로는 예전에는 광고주가 할 수 없는 것을 광고대행사가 맡았다면, 이제는 광고주가 하기에 효율이 나지 않는 일 중 많은 부분을 대행사가 맡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Key creative building & development에 있어서는 그 지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그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지 확실치 않다. 스포티파이를 비롯 이미 글로벌 유수의 광고제에서 광고주 마케팅 조직 내에 소속된 인하우스 에이전시가 수상하는 경우들은 오래 전부터 심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스포티파이를 비롯 ABInBev, Coca-cola 등 글로벌 기업은 마케팅 조직 내 In-house marketing studio 및 기능을 점점 더 확장하고 있다. 이 조직들은 시작은 미디어 바잉과 소셜 등 디지털 중심의 콘텐츠를 담당했었지만, ATL creative 를 넘어 DMP 등 데이터적 관점의 통합적 수집/분석/활용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종합’이라는 이름으로 광고주 마케팅의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던 대행사들은 이제 그 역할의 영역이 점차 크리에이티브응 비롯, 변화되는 환경으로 인해 다변화되는 마케팅 영역으로 적절히 확장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https://www.marketingweek.com/ab-inbev-in-house-agency/
https://www.adweek.com/brand-marketing/cannes-lions-names-spotify-its-first-media-brand-of-the-year/
이런 상황은 그나마 계열 광고대행사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굳이 그 이유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 역할과 지위를 언제까지 인정받을 수 있을까? 마케팅이 디지털화되고, 데이터가 그 중심에 위치하게 되면서 발생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기획과 실행까지의 리드타임이다. 아침에 발생된 소비자 사이의 이슈가 오후에는 마케팅 콘텐츠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하고, A/B테스트를 통해 결정된 크리에이티브라 할지라도 데이터가 기대치를 밑돌 경우 바로 조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 광고주-대행사-외주-또 외주의 프로세스에서 과연 얼마만큼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할까? 이건 계열이냐 비계열이냐의 이슈가 아닌, 산업구조 상의 이슈가 변화를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오히려 맞을 수 있다.
계열 종대사에 재직하며, 과연 걔열 종대사가 지닌 핵심 경쟁력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단순히 captive client를 보유한 것만은 아닐 것인데, 그렇다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는 생각은 바로 ‘계열 내의 마케팅을 총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광고대행사 등에도 물론 계열 물량이 가긴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 계열 광고대행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계열 광고주들의 많은 물량을 집행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잠시 눈을 돌려 각 대기압에서 보유한 경제연구소를 보자. S사도, L사도, 기타 대기업 그룹들은 경제연구소 형태의 씽크탱크 조직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곳은 그룹의 현안이나, 미래먹거리 발굴을 위해 조직 내 각 사담당을 두고 산업별 카테고리 전문가를 두고 산업과 트렌드를 연구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길을 찾는다. 각 계열사에도 전략조직을 갖추고 있지만, 전 그룹사의 방향과 사별 시너지를 고민하는 것은 별도의 지주 조직 내에서 기능을 담당하거나, 아니면 씽크탱크 조직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그룹의 정보가 모이고, 그 안에서 화학적으로 분해되고 융화되며 시너지를 발굴할 수 있도록 역할한다.
그렇다면 계열 광고대행사는 어떨까? 그 기능의 수행이 어려울까? 우선 그룹의 많은 부분을 대행하며 많은 미디어 집행과, 많은 산업별 광고/마케팅 트렌드, 그를 통해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최적화 된 데이터와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문제는 데이터와 플랫폼인데, 이 부분이 이전에는 분명 어려웠다. 계열사 별로 D2C를 운영하는 곳과 하지 않는 곳이 존재했으며, 리테일 중심의 계열사를 설득하기 쉽지 않는 상황과 사정이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심지어 B2B기업 역시 D2C로 뛰어들고 있다. 디지털이 만든, 코로나가 가속화한 변화이다. 거의 모든 조직은 비단 마케팅 뿐만 아니라, 생산/제조 프로세스, VOC 등 소비자 접점과 관련된 프로세스를 디지털화 하고 있고,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까지 통합적으로 모으고 있다. 각 계열사들도 분명 자체작인 사업확대와 성장을 위해 데이터 수집/분석/활용을 해야겠지만, 그룹 전체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그룹 전체의 데이터와 관련된 거버넌스와 매니지먼트, 수집/분석/활용은 누구의 몫일까?
물론 데이터가 가지는 리스크는 있다. 개인정보 이슈, 글로벌의 GDPR이슈 등 데이터는 리스크도 크고 보안 상 위험도 크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의 인티그레이션을 통해 전체 데이터 전략을 잡고, 각사별 크로스/업셀링 방안을 도출하며, 그럼으로서 좀 더 효율적인 마케팅 방안 도출을 하는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몇 가지의 형태로 이런 것들은 초기단계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은 그룹의 SI를 담당하고 있는 계열사이다. 그룹사의 각 플랫폼에 대한 구축/관리/운영을 통해 분명 계열사 전체의 IT인프라를 관장하는 곳이 있고, 그를 기반으로 그룹의 ICT전략과 데이터 전략으로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통합적인 시너지 구축과 이의 마케팅적인 적용, 이커머스로 확장될 수 있는 선순환적인 활용의 형태는 아직까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또 한가지의 형태로는 몇몇 그룹들이 보유하고 있는 그룹 공통멤버십 서비스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각 사의 구매데이터와 회원 데모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며 이를 기반으로 CRM 등 마케팅 효율화를 시도하고, 시너지 마케팅을 진행한다. 하지만, 1st party 데이터 뿐만 아니라, 2nd, third party 데이터가 유기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 지속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 활용에 있어 고객 + 구매 데이터 외 외부 미디어와 채널로 부터 등의 데이터 범위와 카테고리가 다양하게 확보될 필요가 있다. 금융 계열사를 보유한, 그 중 카드사를 보유한 곳도 여럿이지만, 그룹 통합 플랫폼의 부재, 그리고 이를 통한 페이먼트서비스의 확대가 아직까지 묘연한 상태에서 그 헤게모니를 플랫폼사에 빼앗기고 있다.
그룹의 통합몰 역시 이 기조에 포함될 수 있다. 각 사별로 운영되던 이커머스 플랫폼을 포괄하는 통합몰의 개발이 주요 대기업을 통해 이루어지면서 데이터의 통합적 수집/분석/활용이 추진될 수 있다. 사별 마케팅 활동이 얼마나 데이터적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구매까지 연결되며 CDJ를 고도화 하고, 중간의 이슈들을 그로스해킹할 수 있다면 좋은 방안일 수 있다.
다만 중요한 부분은 위의 어느 관점에서도 그룹의 마케팅을 책임지던 계열 종대사의 위치는 없다. 마케팅적으로 중요한 역할과 기능, 리소스를 아이러니 하게 마케팅의 구심점에 있던 조직 외의 조직에서 통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과연 이 그림에서 계열 대행사의 자리는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물론 이 역할을 반드시 인하우스 에이전시가 담당해야한다는 것을 의도하진 않는다. 누구라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거버닝하며 시너지와 그룹차원의 접근을 할 수 있다면 다를 것 없다.
다만, 인하우스 에이전시를 경험했던 사람으로써 이런 움직임이 마케팅의 변화속도를 감안했을 때 그마만큼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위에서 이야기한 각 기능과 조직들은 시작은 다를 지언정 결국 한 지점에서 혹은 여러 지점에서 겹치면서 경쟁하게 될 것이다. 적합한 준비를 늦지 않은 속도로 진행한다면, 분명 인하우스 에이전시의 사업은 그룹의 마케팅 씽크탱크로서, 디지털을 위시로 한 마케팅 변화의 최전선에서 그룹 내 통합적 시너지를 만들어 낼 코어조직으로 역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에이전시는 비즈니스 사이클이 타 산업군 대비 길지 않다. 광고주와의 비즈니스는 대행은 연간 개념일 수 있으나, 캠페인에 대한 투자 관점으로 보았을 때 ROI를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할 수 있고, 그를 위한 투자의 대부분은 ‘전문성 있는 인력’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기에 호흡이 긴 투자에 대해 낯설 수 있다.
마하의 속도를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의 모든 부분을 바꾸어야 한다는 모 그룹 회장님이었던 분의 말씀이 기억난다. 마케팅은 마하의 속도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마케팅 조직도, 인하우스 에이전시의 사업구조도 마하의 속도에 맞도록 구조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