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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윤 Mar 09. 2021

밍밍한 물맛인 티(tea)가 뭐가 맛있다는 거야?

티 세계 입문을 환영합니다.

"어머, 다 너무 맛있네요"

"그러게요, 맛있어요, 맛있어"


티블렌딩 수업 첫날, 같이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의 대화를 듣고 난 정말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꽤 수년간 티(tea)에 관심을 가져왔고, 마셔봤고 (그 당시에는 마셔봤다고 생각했었다) 티를 배우는 수업까지 찾아왔지만 그 당시 티는 사실 그렇게 맛있어서 마시는 음료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업 중 티테이스팅을 많이 했는데 대부분 '음, 이것도 맛있네~' 이런 반응을 하는 수강생분들이 많았고, 티의 맛에 이렇게 관대한(?) 사람들을 나는 처음 만났다.


한 수업에 총 16명의 수강생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고 보니 대부분 티를 나보다 훨씬 오래 공부하셨거나, 관련 직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셨다. 당시 티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런 것에 평균 이상의 관심이 있었지만 이렇게나 맛있다고 할 일인가! 싶은 기분으로 수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티 수업 풍경


요즘 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과거보다는 많이 커졌지만, 아직도 전체 규모로 볼 때 커피가 90이라면 티는 10에 불과한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밀크티 덕분에 티베리에이션 시장이 성장했고 스타벅스와 이디야, 파리바게트 등 긁직한 브랜드에서 티음료를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카페 하시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종류든 티 1kg이면 한참을 쓰고도 남는다고 하시니 정말 좋아서, 맛있어서 찾는 수요는 아직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보통의 사람들에게 티의 맛을 떠올려보라고 했을 때, 아마도 가장 근접한 건 회사 탕비실에 항상 비치되어 있는 '녹차 티백'의 맛일 것 같다. 특히 60대 이상의 부모님 세대에서는 그 인식이 아주 강할 것 같고, 식문화에 가장 관심과 지식이 많을 3040세대라 해도 극소수만이 티의 맛에 대한 본인의 주관을 가지고 있을 것을 것이다. (반면 3040세대 중 커피에 대해서는 원두부터 음용 방법까지 일반인 전문가가 꽤 많아졌다)

 


나의 경우도 하루아침에 Tea에 관심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 계기는 벌써 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초년생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난 원래 위장이 좋지 않았고 위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였다. 그래서 회사 책상에는 짜먹는 위장약 등이 자주 있었고 항상 병원이나 약국을 가면 커피, 술 등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커피숍에 안 가는게 말이 되나! 어쨌든 갈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나는 원래 아메리카노보다는 우유가 들어간 라떼를 좋아했기에 우연히 마시게 된 밀크티. 이떄부터 '카페라떼'의 대용 음료로 '밀크티'를 마시게 된 것이다.

홍차가 들어간 밀크티 역시 카페인이 있으니 위염 치료에 좋은건 아니었지만 속을 아프게 하던 커피와 달리 약간의 각성 효과도 주면서 당시 내 몸에 꽤 잘 받았다.


요즘은 밀크티 맛집이 워낙 많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맛있는 밀크티'를 파는 카페가 잘 없었다. 대부분 밀크티 파우더를 쓰고 있었고, 티백을 적당히 물에 우려 우유를 부어주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카페라떼'는 우리나라 커피 소비 규모에 걸맞게 맛의 상향 평준화가 어느정도 형성되어 어떤 카페를 가도 평타(?)는 쳤는데, 이 밀크티의 맛은 카페마다 무척이나 천차만별이어서 맛의 갭이 너무 컸다. 이 '맛있는 밀크티'를 만나는게 확률 싸움이 되자 밀크티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커져갔다. 꼭 맛있는 밀크티를 마시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밀크티 맛집을 찾아다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만난 각각의 카페에서 저마다 사용하는 홍차가 달랐고, 어떤 브랜드를 쓴다는 내용들을 접하게 되면서 유럽의 대단한 명성을 지닌 티 브랜드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홍차의 세계에 빠져 인생 2막의 직업까지 오게 된 것이다.


궁극의 밀크티 한잔을 찾아 헤메이며


밍밍한 물맛인 티가 뭐가 맜있는가라는 답은 '이걸 마셔봐!'라고 음료를 주고 직접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빠르겠지만, 여긴 글로 전달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니 그 얘기를 차차 풀어나가고자 한다.

비유를 하나 하자면 이런 맛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파스타가 처음 들어왔을 때 대부분 '오븐 토마토소스 미트볼 파스타'로 시작했을 것이다. 모짜렐라 치즈가 덮여있고, 강렬한 토마토 소스에 간 고기가 씹히는 캐릭터가 확실한 맛! 그런데 파스타를 점점 알고 파스타 시장도 성장하면서 많이 먹다 보면 올리브, 마늘, 오일만으로 맛을 낸 오일파스타의 매력을 알게 된다. 심지어 여기에 앤쵸비, 조개, 트러플 등의 식재료를 통해 대단한 맛의 변주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즐기게 된다. 즉, '토마토소스 미트볼 파스타'가 딱 마시자마자 알 수 있는 커피라면, '오일파스타'는 그 섬세한 맛을 즐기는 티(tea)라고 표현하고 싶다.


커피나 티나 와인이나 각자의 개성이 다르고 그 세계의 스펙트럼이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커피와 와인의 경우 이 무궁무진한 스펙트럼이 꽤나 알려져서 대중화 시장을 이루고 있는반면 티는 아직 그만큼 확산이 되지 못한것 같아 안타깝다.


티에도 떼루아가 있고, 제조 과정의 모든 요소가 섬세하게 영향을 미쳐 맛을 완성한다. 부드러운 바디감이 있고, 꽃이나 과일향이 있는 것도 있으며, 초코나 캐러멜 풍미가 강하게 나는 차도 있다. 유럽의 한 브랜드에서 나오는 차의 종류가 수백까지나 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블렌딩티의 종류도 어마어마하다.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음료를 마시는 장면을 봐도 커피나 와인은 왠지 멋지다. 특히 와인 같은 경우, 잘나가는 전문직 주인공이 하루를 마무리하며 우아하게 한잔하는 멋짐 폭발 장면에 많이 등장한다. 반면 티를 마시는 장면은 유럽 중세 앤틱한 배경의 티타임 이미지, 혹은 동양의 다도와 같이 옛스러운, 전통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표현되는 장면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작 티를 많이 마시는 요즘 영국 티카페 문화는 그렇게 힙할 수가 없더라. 제품패키지부터 디자인의 최전선에 있으며 트렌드를 반영해 쏟아지는 신제품 티가 넘쳐난다.


모던하고 세련된 영국의 위타드 티bar


그럼 여기서 다시 질문해 보자. 밍밍한 물맛인 티가 뭐가 맛있냐고? 티의 세계로 들어와서 좋은 제품을 만나면 티는 결코 '밍밍한 물맛'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깜짝놀랄정도로 캐릭터가 강한 상품도 있다. (예를 들면..랍상소종? ㅎㅎ) 그냥 맛으로 승부해도 당당히 선택할 수 있는 고유의 맛과 향이 있다. 이 맛이 무엇인지는 얘기할꺼리가 너무나 방대해서 한 주제씩 나눠 쓰고자 한다. 앞으로 티는 맛으로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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