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부장이 새로 왔다. 타 기관 대표이사와 친구라고 한다. 그 대표이사는 이른바 "세상의 핵인싸"였는데, 그런 그와 잘 아는 사이라고 하면, "노는 물이 다른"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2. 그 본부장이 "좋은 딜"을 가져왔다고 한다. 캐나다에 있는 유전 지대 내 잘 나가는 굴지의 기업에 대한 투자건이었다. "넣기만 하면 석유가 숭숭 나오는" 프로젝트를 수 십개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에 대한 투자 건이며, 그 프로젝트에 대한 사업성 평가도 이미 세계적인 기업에서 잘 마쳤고 손 댈게 없다고 한다. 그는 요즘 같은 세상에 High single digit 나오는 수익률의 투자 건은 어디서 찾기도 힘들며, 투자가 망가지더라도 계약상의 권리가 강력하게 마련되어 있어 우리는 최저 수익률을 건질 수 있는, 잃을 것이 없는 투자라고 했다. 그리고 "얼른" 해외 현지에 출장을 다녀와야한다고 했다. 그런가보다 했다.
3. 분기에 한 번이었던가, 반기에 한 번이었던가. 그 본부장과 그 아래 식솔들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자산의 관리차원이라고 했다. 그래, 1,000억 투자해서 3년 내내 몇 억씩 배당 받는 자산이면 안전자산이지 뭐. 그런가보다 싶었다.
4. 어느 날, "동의"를 청구하는 "레터 (Letter)"가 왔다. 공문이 왔다는 것도 아니고 레터라니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런데 그 레터는 캐나다에서 온 것이었다. 캐나다의 자랑, 그 굴지의 기업, 우리의 피투자대상회사는 우리에게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겠다고 레터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사업이 안 되어 배당 줄 수 있는게 없고 이러 저러 하여 우리 투자 지분을 (요컨대) 감자해야겠다, 지분 까먹어야겠다며 통지하는 것이었는데, 당당하게도 너네 돈 태워버릴테니 이 부분 동의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이냐. 관리 잘 되고 있던 자산 아니었어? 갑자기 요상한 긴급 회의들이 소집된다.
5. 회의가 소집되니 재미난 풍경이 이어졌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캐나다 투자 자산을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본부장은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 밑에서 캐나다를 들락거리던 진짜 아랫사람들도 퇴사한 지 오래였다. 여전히 같은 이름이 유지되고 있는 해당 본부에서 회의에 참석하라고 내 보내진 담당자는 입사한지 한 달도 안 된, 경력직 신입 과장이었으며, 나머지 배석자들도 회의가 있다니 보내져서 앉아 있는, 그래서 이 자산에 대한 내용을 잘 모르는, 그래서 누군가 이 내용을 설명해야만 일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이 자산과 관계 없는 사람들이었다. 회의를 소집한 부대표는, "잘 파악해보자"는 요지로 선해할 수 있는 말만 남기고, 그 다음회의부터는 참석하지 않았다. 가장 속 타는 사람은, 앞으로 분배금을 줄 수 없다고 투자자들에게 공문을 날려야 하는 대리님이었다.
6. 사업성 평가를 맡았다는, 세계 4대 회계법인 중의 하나라 2주에 2억 받아간 그 팀에 연락했다. 담당자를 찾아준다더니, 앳된 얼굴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왔다. 매니저 직급, 연차 5년차-8년차 정도. 어려서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사고 자산의 담당자라고 내 보낸 자들의 태도가 문제였다. 이슈가 제기된 자산에 대해서, 현장에서 제기된 이슈의 내용을 파악하고 인사이트를 줄, 해당 프로젝트로 2억 벌어간 사람 대신, 그가 조각 조각 시키는 일을 하며 야근을 일삼았을 법한 어린 회계사를 보낸 것이 문제였다. 잔뜩 긴장한 회계사는 이렇게 말했다. 해당 사업성 평가는, 이미 그만둔 담당 상무님이 직접 캐나다에 가기도 하면서 실사 업무를 지휘했지만, 자신은 이 부분 팔로업 (그러니까 A/S 작업) 을 맡았을 뿐이라는 것. 그래요, 그 쪽도 억울하겠지만, 팔로업도 업무니까 대답 좀 해 봐요. 사업성이 좋아서 배당금이 넘쳐나고 지분 가치가 하늘을 찌를 것이라고 했던 말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알아보기라도 해달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도 회신이 없었다. 메일을 보내면, 현지에 확인 중이라고만 반복했다.
7. 투자자들, 각 금융기관의 담당자들이 모여 회의하기 시작했다. 지분을 다 날리면 "손상처리"해야 되는데, 그냥 손상처리 할 수는 없기에 다들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재미있는 것은 썩어가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본인이 이 투자에 동의하고, 출장다닌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보직 변경으로 문제 자산의 담당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었다. 의미 없는 회의가 연속되고, 누군가 말했다. "당한 사람들끼리" 앉아서 얘기해봤자라고.
8. 그렇게 굴지의 기업이 돈 팡팡 벌어줄 것이라고 했던 투자건은 8년이 지난 뒤, 전액 상각처리 되었다. 내가 아는 금액만도 몇 천억원이었던 그 투자건은 2012년,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 투자다. (지금까지의 이 기술은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내 작위로 마구 섞어 등장 인물들은 소설에 가깝지만, 하베스트 투자는 상각처리 된 것이 맞다.)
위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패배와 실패의 에피소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승리의 트랙 레코드 (Track Record)이다.
먼저 승리자는 두 집단.
당연히, 캐나다 출장을 담당한 본부장과 그 식솔들이 제일 위너(Winner)다. 그들은 투자업계에서 꼭 필요한 투자 경험 뱃지를 취득했다. 일단 이 판에서는 딜을 "찍는 것"이 중요한데, 그들은 딜을 "찍었다". 일단 찍고 나면, 앞으로 그들은 "Oil & Gas" 전문가, "해외 인프라 전문가"로 불리며, 특히 북미 지역 유전 지대 투자 건에서는 invite 1순위 리스트에 이름이 포함될 것이다. 그들이 국민연금, 우체국보험 등의 공공기관 출자자들에게 돈을 타기 위해 경력을 증명하는데는 10배 더 쉬워질 것이다. "해봤으니까 잘 압니다"라는 말은 도움이 된다. 문제자산이 되었는데? 그것은 상관 없다. 퇴사했기 때문에 청산시 손실난 자산으로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공공기관 출자자들은 아무것도 안 해본 것보다는 문제가 있어도 해 본 경험을 더 평가해준다.
그리고 두번째 승자는 세계 4대 회계법인의 관계자들이다. 그들은 이제 어디가서 장사할 때 "해외 유전 사업성 평가" 경력을 내세울 것이다. 해외, 캐나다, 북미, 유전, 인프라, 등의 키워드들은 복잡한 조합을 거쳐 사업성 평가 프로젝트의 입찰에 참여할 때, 대단히 요란한 경력으로 기재될 것이다. 그러면, 이후 정말 해외 사업 투자를 위해 회사의 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기업 담당자들은 그들에게 일을 맡기며 이렇게 보고할 것이다. "이미 북미 지역 해외 인프라 프로젝트에 실제 사업성 평가 업무를 수행해 본 경험이 있는, 세계 4대 회계법인이시고." 음. 이 보고를 받고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현지 (캐나다) CDD (Commercial Due Diligence) 업체 보고서를 이렇게 기깔나게 번역하고, 재편집하다니, 어도비(Adobe)프로그램도 없이 이 퀄리티로 내 보내려면 애들 정말 고생 많았겠어요. 여담이지만, 그렇게 엉망인 경제성/사업성 평가를 담당했던 회계법인의 상무는, 본인이 책임져야할 때 새로 온 매니저를 보내 놓고 도망친 그 상무는, 본인을 본인이 투자 전문가라고 일컬으며 잘 돌아다니고 있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투자라는 건 사실 잃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돈의 운용에는 투자 별 손실 가능성 (보통 '리스크'라고 말하는)을 잘 매칭하여 투자 비중을 관리한다. 금융기관마다 리스크 관리라는 본부를 괜히 만드는 것은 아니다. (물론, 리스크 본부사람들의 소망은 프론트(투자 팀, 실제 영업, 출장 나가는 사람들)가는 것이고, 그렇게들 많이 보직을 변경한다.)
2012년, 해외 대체투자가 태동하던 무렵, 하필 그 당시 정부에서 "자원외교"라는 테마를 던지는 바람에 무수히 많은 자금이 집행되었는데, 집행된 금액 중에는 위와 같이 안타깝게 손상처리 되어 공기 속에 흩어져나간 돈도 많다. 다만, Lesson Learned. 실패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있다보니 2024년 현재에는 저렇게 막무가내로 집행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믿고 싶다. (물론 2022년에도 뉴욕 타임스퀘어 빌딩에다가,라스베가스 호텔에다가 기관 돈 다 태워먹는 일들이 발생했고, 지르던 팀의 담당자들은 타 사에 잘 이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il & Gas Girl이 아닌 내가, 문과생인 내가 보아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경제성 평가 보고서의 내용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놈의 회사 매출을 수직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 근거. 그 동네는 돈만 투자해서 석유를 뽑게만 해주면 게임이 끝난다던 논리, 뽑으면 그냥 팔린다는 논리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뭔 석유를 어디다 그렇게 판다는 것인가.
미국이었다. 인구도 많고 슈퍼 가도 차 타고 다녀야하는 미국에다가 그렇게 팔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이해가 안간다. 2010년이었던가, 미국은 본토에서 나는 셰일가스 때문에 파이프라인 설치하는 프로젝트가 난립했었다. MLP니 뭐니 하는 펀드들은 증권사 창구에서도 팔았다. 그거 다 생각보다 석유가 갑자기 많아 보이니 돈이 모인 거 아니었나. 그러면 도대체 셰일가스와 캐나다 석유가 대적할만한 경쟁력은 뭔가? 뽑는 비용이 무지막지하게 싼가? 아니었다. 물가는 미국이나 캐나다나 똑같다. 그럼 거리가 먼 캐나다는 물류비가 더 들겠는데. 나 같이 매일 월급 관리도 "엥꼬"내는 사람이 산수를 해도 계산이 나오는데, 엑셀 백날 돌리면 뭐가 다른가.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엉성한 투자를 했는지 물어본 적 있는데, 캘거리 풍경을 자랑하던 담당자가 한 대답을 잊을 수 없다. "캐나다 동부의 산맥(아팔라치오 였던가)만 잘 뚫으면, 캐나다 석유 일본이나 한국에 팔수 있어. 동북아는 석유가 없잖아, 얘들한테 팔면 끝나거든. 노다지야 거기."
음. 산맥을 뚫어야 경제성이 있다.
그렇게 좋으면 캐나다 정부가 뚫었겠지.
나는 그 이후 그 사람을 연락처에서 지웠는데, 종종 들리는 소식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본부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는 승자가 맞다.
하지만, 이런 개별 사례 몇 가지만 앞세우면, 해당 분야에서 우직하게 20년씩 일 잘하는 진짜 베테랑들도, 투자 건을 승인받고 집행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돈을 굴릴 방도가 없다. 그러면 내 예금, 내 적금, 내 보험이 약속한 그 모든 금리는 개소리가 되는데? 앉아서 미국 금리 4.75% 일때 동결시켜봤자 3.5%인 우리나라에 살면서, 가만히 앉아서 돈이 썩어버리는 꼴을 지켜보라고? 안 될 일이다. 내가 일할 때 내 돈도 일해야지. 그래서 투자는 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투자가 잘 집행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검사 오래하시던 금감원장님이 런던 거래소 출장가셔서 Invest Korea 행사한다고 투자판이 단단해질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