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지사 신축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진입도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해당 기관 담당 공무원을 찾아 해결책을 문의하였죠. 문제가 좀 복잡하여 해결책을 쉽게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 문의를 계속했죠. 몇 개월 후 전화를 해보니 담당자가 바뀌어 있는 겁니다. 공무원은 순환근무를 하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다시 내용을 설명했죠.
다른 업무로 몇 달간 잠시 잊고 있다가 다시 전화하니 담당자가 또 바뀌었다는 겁니다. 뭐, 전 담당자가 유학을 갔다나 뭐라나요. 순간 짜증이 확 났으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그 내용에 대해 다시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내용을 몇 개월 사이에 3명의 담당자에게 이야기를 한 거죠. 민원인과의 유착 방지를 위한 공무원 순환근무는 취지는 이해가 갑니다. 문제는 업무의 전문성이나 연속성 측면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회사에서도 직무순환이나 보직변경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에서 직무순환을 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중간관리자를 임원급으로 키우기 위해서죠. 회사의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을 쌓게 해서 제너럴리스트를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다방면의 경험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회사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니까요. 직원을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어떤 식으로 키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죠.
이 직무순환을 소규모 기업에서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필자의 경험상 체계적인 인사관리, 경력관리 시스템이 없는 회사에서는 제너럴리스트로 키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가급적이면 직무순환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죠.
직무순환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습득할 수 있고, 관리능력도 향상되며, 협력업체와의 유착도 방지하죠. 인력의 효율적 배치를 통해 생산성 향상도 꾀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소규모 중소기업에서는 아래와 같은 단점이 더 많이 작용합니다.
첫째, 업무 전문성이 결여됩니다. 소규모 회사에서는 업무분장이 잘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역할과 책임도 명확히 정립되지 못한 상태인 것이죠. 그런데 다른 업무로 보직을 변경하면 엄청난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 팀 저 팀 옮겨 다니게 되면 나중에 직원 경력이 다 망가져 버립니다. 특히 이직 시 문제가 됩니다.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회사를 나가게 되는 거죠. 경험 많은 팀장 밑에서 한 분야의 일을 충실히 배워야 합니다. 직원의 업무능력과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둘째, 업무의 지속성과 일관성이 떨어집니다. 내∙외부 고객 접점이 한동안 사라지게 되어 업무에 혼란이 생기게 되죠. 보직을 변경하게 되면 그 업무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립니다. 인원이 많지 않은 중소기업에서 이 같은 문제들은 모두 회사의 손해로 다가옵니다.
셋째, 팀장급에 대한 직무순환은 더 문제가 됩니다. 중소기업은 안정성이 떨어지고 직원 경력경로 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임원급으로 키우기 위해 직무순환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땜질 식 처방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현실에서 팀장을 직무순환, 보직변경한다는 것은 회사를 나가라는 말과 같습니다. 유사 직무라면 설득할 수 있겠죠. 가령 해외영업팀장이 해외법인이나 지사를 설립하게 되면 법인장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중소기업은 가장 기본적인 조직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바뀐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영업팀장이 회계팀장을 하기 어렵고, 생산팀장이 연구개발팀장을 하기 어렵죠. 자신들도 경력과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보직변경을 싫어합니다.
만약 팀장급을 보직 변경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상위 직책을 맡기 위한 트레이닝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시켜줘야 합니다. 이때도 그 분야 경력이 짧은 팀장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경력과 안위를 위해 거부하거나 퇴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넷째, 보직 변경을 하게 되면 근무지가 변경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회사에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통 문제와 주거 문제,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문제 등이 직원에게는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중소기업 여건상 이 모든 것을 세심하게 신경써서 지원해 주는 회사가 많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 대놓고 말은 못 하고 불만만 팽배해집니다.
특히 해외로 나갔을 때는 문제가 더욱 심합니다. 사장은 직원을 해외로 내보낼 때 회사에서 ‘개인 발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특혜를 줬다고 여기는 거죠. 하지만 요즘 직원들은 과거처럼 자신과 가족들을 희생하면서까지 해외로 나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회사 자금 사정상 충분한 물질적 지원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회사와 업무에 열정이 높았던 직원도 해외에 나가 있으면 다른 중견, 대기업 주재원들의 지원 수준과 비교하게 됩니다. 해외에 있는 기간 동안 회사에 대한 불만이 계속 쌓이게 되는 거죠.
마지막으로 능력이나 성과가 떨어지는 직원에 대한 좌천의 용도로 악용한다는 것입니다. 이 팀에서 능력이 없으면 다른 팀에서도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운이 좋으면 보직을 변경해서 자신의 적성을 찾을 수도 있겠죠.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직원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직무에 맞춰 지원합니다. 경력직원은 말할 것도 없지요. 직무순환이라는 명목으로 보직을 변경하게 되면 당연히 좌천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인사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팀장도 그 직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직원을 보낸 팀장과의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팀장들의 갈등은 곧 조직의 갈등이 됩니다.
이와 같이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무순환을 고민해 봐야 할 직무도 있습니다. 바로 구매나 자금 관련 분야입니다. 아무래도 돈과 관련된 업무다 보니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업무이고 현실적으로 대체할 인원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직무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소규모 중소기업은 여러 가지 여건상 직무순환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직무순환을 하고 싶다면 우선 직원들에게 믿음을 줘야 합니다. 회사가 직원들의 경력관리에 신경쓰고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합니다.
아무런 철학이나 고민 없이 단순히 직무순환, 보직변경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직원을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어떤 식으로 키우는 것이 맞는지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후 거기에 맞는 회사의 시스템을 갖추어 가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기업시스템코디(조현우)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