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전략기획의 브랜드 지키기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까요?
면접을 보러 가면 열에 아홉은 이 말로 시작합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이 넘는 기간을 풀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때 면접자는 자기 생각에 중요하다고 느끼는 프레임으로 경력을 소개합니다. 누구는 어떤 회사를 다녔다고 하고 누구는 어떤 직무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술을 중심으로 경력을 짜 맞추고 누구는 한 일을 크게 묶어서 설명합니다.
면접뿐 아니라 링크드인 같은 커리어 기반의 서비스에서도 자기소개는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대로 나열됩니다. 어떤 사람은 링크드인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 이름만 나와 있고, 글을 많이 쓰는 어떤 사람은 역할을 기반으로 소개합니다. 프로젝트와 사용한 기술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기획자가 어떤 관점에서 시장을 분류하고 상품을 나누고 마케터가 고객을 어떤 기준으로 그룹으로 묶느냐가 관점과 실력을 알게 하듯 커리어 역시 어떤 프레임에서 과거를 조립하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느냐가 커리어의 미래를 만들어냅니다. 자신이 보고 믿는 세계에 갇혀 있는 게 대부분의 사람입니다. 스펙에 스펙을 쌓는 게 은퇴까지의 만족인 사람도 있고 힙한 회사 이름을 모으는 게 몸값을 올리는 지름길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득하게 한 회사에서 올라가는 게 결국 이긴다고 믿는 사람도 있으며 기술만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믿는 커리어도 많습니다.
빈 자기소개에
경력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어떤 관점으로 채워나갈까요?
프로젝트 기반으로 커리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을 몇 달씩 묶어서 거대한 한 가지 일에 기여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마케팅을 했다고 해도 조직 이름만 마케팅이지 누구는 프로젝트로 그로스(Growth)를 한 사람이 있고 누구는 매체 광고에 집중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케팅과 관련된 대시보드(Dashboard) 개발만 한 커리어도 있을 수 있죠. 이 모든 게 역량을 계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조직 이름이나 직위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했고 거기서 무슨 역할을 했고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데 어떤 결과가 나와서 무엇을 얻었고 얻은 게 다음 프로젝트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설명하면 비로소 다음 회사에 기여할 포인트가 무엇인지 보이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젝트 기반으로 커리어를 설명하고 늘 바라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사실 이 분야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닙니다. 프로젝트 기반으로 자신을 늘 정의하고 그 기반이 되는 역량을 점점 넓히다 보면 처음에는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곧 설명드릴 직무나 산업 중심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날이 오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실무를 하는 시작은 프로젝트 기반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게 보다 낫습니다.
마치 포화 상태의 시장에 진출하는 신규 브랜드라고 자신을 정의합니다. 이미 포화인 이 시장에서 팔리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구매 요소가 있는 게 핵심이죠. 그게 이미지이든 실체든 고객이 사용하기 전까지 차별성을 가지는 게 한 번이라도 더 손이 가는 제품의 특징입니다. 차별화는 역량, 어떤 프로젝트를 해 보았는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최신 프로젝트, 업계에서 관심 있어하는 프로젝트, 그것을 하는데 누구나 관심은 있지만 시장에 공급은 부족한 역량 – 기술, 학습량 – 이 있다면 차별화는 두드러지고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중이든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는 시기에 놓치지 말고 회사에서 위키를 쓰듯 최대한 자세하게 자신이 한 일을 정리합니다. 자세히 써야 나중에 그 프로젝트를 재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프로젝트가 어떤 일로 보였지만 나중에는 다른 타이틀로 보일 수 있습니다. 데이터 분석을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광고 상품의 전략을 수립한 것이라 정의할 수도 있고 단순히 지금 눈에는 사업성 검토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내가 한 일을 이어 보면 그 일은 영업 전략 재설계를 한 커리어의 한 단명으로 재평가받기도 하니까 말이죠.
이직 사이트에 ‘기획 전문가’, ‘영업 전문가’ 정도로 자신을 소개한다면 직무 기반으로 자신을 생각합니다. 한 가지 설명드리면 프로젝트 기반이냐 직무 기반이냐는 자신의 커리어를 스스로 바라보는 관점인 것이지 무엇이 더 유연하고 성장 지향적이냐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나 = 마케팅’이라고 정의한 직무 기반의 커리어가 있다면 적어도 마케팅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회사 내 다양한 롤(role)을 겪는데 크게 어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마케팅 의사 결정권자가 자신의 목표이기 때문에 마케팅 안에서 다양성은 갖고 가는 것이죠. 다만 마케팅이란 직무가 미래에도 쓸모 있고 과거의 정의와 같게 흘러가느냐, 그것에 열려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프로젝트 기반도 기술이 무엇이고 역량이 무엇인데 그것만 한 길로 갈지, 그 역량의 점을 더 굵게 번지게 관련 기술을 여러 프로젝트 경험에서 넓힐지는 자신의 마음입니다. 성장이 꼭 하나를 깊게 하거나 관련된 여러 개로 넓혀가야 하는지 정해진 법칙은 없으니까요.
직무 기반 커리어는 약 10년 전만 해도 각광받는 이름이었습니다. ‘사축’이 되지 않기 위해 업계에서 직무 기반으로 전문성을 키운다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더 높은 가치로 나를 바라봐 줄 거란 꿈같은 이름이었죠. 하지만 직무를 그냥 꿰차고 직무 내에서 썩어가는 문제 때문에 프로젝트 단위로 자신을 정의하는 프로젝트 기반 커리어가 최근에는 더 정확한 자신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임원 레벨을 채용할 때 정도에 일부 회사에서 어떤 회사에 어떤 직무를 해 온 사람 수준으로 검증하고 뽑는 것 같습니다. 그 직무들이 분화되면서 그중에 어떤 역량에 특히 더 발달되어 있어서 지금 회사 환경에 이 문제를 풀어줄 사람이라는 수준까지 자신을 정리하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제는 직무만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것은 다소 부족하죠.
직무 기반으로 자신의 경력을 기술만 해도 사실 아직도 훌륭한 관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회사에 갇혀 있습니다. 회사의 크기나 들었을 때의 고리타분함과 관련 없이 회사가 로켓이면 로켓인 채로, 전통적이면 전통적인 채로, 이너 서클에 있으면 그냥 그렇게 있어야 하는 채로 회사 기반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정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어떤 회사가 우선이지 어떤 일을 하는 게 우선이 아닌 사람들이 아직 많죠. 물론 이 결정 자체가 선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정이기 때문에 결과가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최근 20년 내 겪었듯 회사는 이제 정말 개인과 관련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업계 1위 출신이라고 노후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명성이 거시적인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장담하지도 못합니다. 큰 회사에 묻혀 프로젝트라고 할 만한 일도, 직무라고 내세울 전문성도 없다면 회사의 운명에 자신을 맡기고 개인적인 기여자가 되지 못하고 사람을 컨트롤하는 역할로 남은 포지션을 바라보고 달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거대한 도박이죠.
이런 분들은 회사와 직급 밖에 자신을 소개하지 못합니다. 어느 회사의 과장, 어떤 기업의 차장. 그게 다입니다. 마치 스펙으로 일 잘하는 것을 설명하려는, 이제는 점점 정답이 아니란 게 밝혀지고 있는 새로운 스펙을 의지합니다. 채용의 허들이 높아질수록 이직할 곳이 마땅치 않게 됩니다. 빠르게 직무 기반으로, 프로젝트 기반으로 자신의 과거를 재 정리하고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역할 중심으로 앞으로 할 일을 결정해야 합니다.
임원이 되면 그런 거 필요 없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임원도 당장 회사에 지금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데 이 문제를 잘 풀었던 사람을 찾습니다. 프로젝트 기반에서 하나의 역량을 중심으로 자신의 원을 넓고 깊게 그린 사람을 찾는 것이죠. 패션 회사라고 가장 큰 패션 회사의 경영자를 막 뽑진 않습니다. 회사의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온라인 매출 비중 증가라면 어디서 온라인 커머스를 만들어서 높은 성장을 만들어 본 사람을 가장 우선으로 찾게 되죠. 그런 일을 해보지 않았다면 회사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누군가를 채용하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자신이 걸어온 길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정리하는 작업을 멈출 수 없습니다. 새로운 학습 데이터가 들어오면서 향후 예측하는 패턴의 값이 늘 바뀌듯이 지금 최신화된 커리어는 자신을 늘 재정의하게 만듭니다. 그런 정리를 하려면 프로젝트 단위로 늘 데이터를 만들어 놓고 어떻게 묶을지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 기반 위에서 보다 매력적으로 보다 더 미래에 수요가 있을 것으로 다시 자신을 정의합니다. 빛나는 커리어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