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올해 늦봄부터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상태인데, 스타트업은 이러한 시기에 일단 생존해야 미래를 기약할 기회가 옵니다. 어쩌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일 수도 있죠. 1997년 국내 외환위기 때 환율이 1900원을 돌파하며 해외여행 수요가 급감하면서, 그 당시 가장 대형 여행사였던 온누리 여행사도 부도가 난 상태였습니다. 이 때 하나투어는 해외여행 수요가 다시 회복될 때까지 버텼고, 이후 업계 1위가 된 사례도 있죠.
작년 하반기부터 글로벌 유동성의 축소 기조가 보이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서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다 예상 밖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 정세도 어수선하다 보니 글로벌 주식 시장이 모두 급락하게 됩니다. 국내도 특히 대형주보다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소형주의 하락이 더 컸었고, 금리의 급격한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인해 채권시장도 아직 불안한 편이죠. 고금리로 인해 사모펀드들도 출자자 모집이 여의치 않아 최근에는 M&A 시장의 매수세도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관련기사 : [트랩갇힌PE]①’바이아웃 실종’ 매물은 쏟아지는데 살 사람이 없다 (출처 : 아시아경제)
보통 매크로 환경에 민감하게 바로 영향을 받는 상장 주식과 달리 스타트업과 같은 비상장 주식은 영향을 적게 받는 편입니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 시기의 유동성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급격한 금리 인상, 그리고 이로 인한 향후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상황이 여러모로 안 좋다 보니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도 바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죠. 특히 상장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시리즈 C/D 단계의 스타트업 기업가치는 상장사 기업가치와 연관이 많다 보니 바로 직격탄을 맞아 다운라운드 밸류로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경우가 기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보다 조금 앞단의 시리즈 B 단계의 스타트업도 기업가치 조정은 기본이고 상황이 안 좋으면 투자 유치 자체가 힘들어지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이 와중에 일부 스타트업들은 자금조달에 실패하여 매물로 나오거나 혹은 문을 닫는 경우까지도 생기고 있죠. 시드나 Pre 시리즈 A는 뒷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지만, 역시 예전보다는 더 보수적인 투자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 관련기사 : 3분기 벤처투자, 전년보다 40% 급감했다 [Geeks’ Briefing] (출처 : 한국경제)
최근에 상장을 앞둔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많이 다운되면서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의 스타트업 기업가치에 대한 고민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투자가 활황일 때에도 시리즈 C/D 단계의 투자 검토 시,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의 적정 기업가치 산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편입니다. 뒷단의 투자 경우 상장이나 M&A까지 남은 기간이 얼마 되지 않기에, 기업가치의 업사이드가 제한적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에 상장을 앞둔 많은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많이 디스카운트되고 심지어 일부는 상장을 철회하는 경우도 많아졌기 때문에 뒷단의 투자자들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일부 뒷단 투자자들은 아예 당분간 관망하면서 전체 투자를 보류하기도 하고, 더욱 보수적인 관점에서 투자 검토를 하다 보니 투심위를 통과하기까지 시간도 더욱 많이 소요되며, 기업가치나 투심위 통과 확률도 예전보다 낮아진 느낌입니다.
특히 최근에 모 투자자는 “이제 시리즈 A부터 서비스 지표보다는 매출 지표 위주로 보겠다”라고 하거나, 또 다른 모 투자자는 “시리즈 B 투자를 하려면 최소 월 손익분기점에 근접해야 하지 않겠느냐”등 투자자들이 예전보다 매출과 손익 분기점에 더욱 초점을 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타트업들도 어느 정도 이 부분을 감안하여 좀 더 빠른 매출을 내고, 월 손익분기점에도 좀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전략들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어쩌면 이 시기가 지나도 투자자들의 이러한 새로운 기준이 지속적으로 적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본질은 단순히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이 아니라 성장도 동반될 필요가 있기에, 미래의 성장 요소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야만 합니다.
일단 생존부터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금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혹한기가 내년이 아닌 내후년까지도 갈 가능성도 있기에, 가급적 넉넉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면 좋죠.
예전처럼 “먼저 서비스 지표부터 최대한 성장시킨 다음에 매출은 나중에 천천히 올리자”는 전략은 현시점에서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출을 빠르게 올리는 것은 현재 투자 시장 분위기에도 적합하지만, 이를 통해 런웨이를 더 늘릴 수도 있죠. 그리고 평소에는 권하지 않는 편이지만, 현재와 같은 혹한기 상황에서는 자금 확보를 위해 급할 경우 용역개발 사업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들을 골라서 만날 것이 아니라 투자 가능성이 있는 투자자는 가급적 많이 미팅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가치에 너무 욕심을 내지 않아야 하며, 뒷단 투자 라운드에다 실적이 투자자들 눈높이에 많이 부족한 경우에는 다운라운드 밸류의 투자 유치를 감수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또한 뒷단 투자 라운드 경우 RCPS(상환전환우선주)가 아닌 CB(전환사채)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등 투자자에게 좀 더 유리한 채권과 결합된 형태의 투자 유치를 고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지원 사업도 최대한 확인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해 각종 대출도 검토해봐야만 합니다. 현재 고금리에다 채권시장도 불안하여 대출도 쉽지 않긴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죠.
자금을 확보하기보다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더 용이할 수도 있는데, 이는 런웨이를 늘릴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우선순위에 따라 꼭 필요한 비용만 집행하면서 혹한기에는 보다 린하게 효율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뒷단 투자까지 유치하며 큰 조직을 갖추고 있고 캐시버닝이 무척 큰 경우에는, 뼈를 깎는 마음으로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불가피하게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한번 인원 조정한 이후에는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다시 신규 인력 채용이 가능하므로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죠. 때로는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한 이후에야, 오히려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해 왔다는 것을 깨닫는 창업자도 있긴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예전 Daum 시절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998년에 베르테스만으로부터 투자 유치 이전까지 자금난으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후 1999년 가을 코스닥에 상장하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시기가 다시 왔죠. 비록 지금이 스타트업에 여러모로 힘든 시기지만, 각자의 경우에 적합한 플랜B/플랜C/플랜D의 방법으로 생존한다면 결국 다시 봄날은 올 겁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분 모두들 그때까지 힘내시기 바랍니다!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