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일하는 법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는 다양한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마치 꿈결처럼 인지하고 흘려보내고 있을 뿐 그것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나에게 왜 글을 쓰냐고 물어보면 바로 답하지 못한다. 나의 생각 속에 그에 대한 답이 완벽히 정제되어 있지 못한다. 나는 나를 돌아보며, 마치 무엇이든 있지만 무엇도 없는 생각의 안갯속에서 그에 대한 답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가끔씩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을 이어 보고, 다시 잘라보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그냥, 안갯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에게 와 있을 뿐이다. 마치, 내가 헤매고 다니는 동안 저 멀리서 내가 겪은 수많은 것들의 파편이 저절로 조합되고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이 내가 답하기로 한 질문에 대한 답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글을 쓰는 와중에 동시에 생각으로 굳혀져 내게 다가오는 경험은 너무나도 신기하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성경을 썼던 사람들이 왜 성경을 자신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서 그것을 만들었다고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한다. 우리는 글의 주인이지만, 글 또한 우리의 주인인 것이다.
그래서 근래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어떻게 우리는 글을 써 내림으로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참조 : The Psychological Significance of the Biblical Stories: Genesis)
세상은 굉장히 복잡한 관계와 의미의 그물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자. 당신의 마음속에 스마트폰은 터치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무언가 이다. 하지만, 갑자기 스마트폰이 고장난다면? 그때부터 당신에게 스마트폰은 다양한 알 수 없는 기기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기술집약적 머신으로 다가온다.
즉, 맥락과 상황에 따라 동일만 물체이더라도 매우 복잡하게, 혹은 매우 간단한 무언가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면 스마트폰이란 이 기계는 본질적으로 얼마나 복잡할까? 생각해보자, 스마트폰을 이루는 각 물질의 특성, 물질 간 연관성, 기기 부품의 특징, 기기 부품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 등등 스마트폰 자체는 수많은 정보와 정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내가 몇 년을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히 알 수 없는 복잡한 무언가 이다. 스마트폰조차 본질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여기에 더해서 맥락에 따라 그 복잡도가 무수히 변한다. 그렇다면 세상은 얼마나 복잡할까?
세상은 본질적으로 너무나도 복잡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순간순간 우리의 목적에 따라 세상의 일부분을 구조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우리가 알 수 없는 복잡함과 그에 반대되는 구조적 이해 사이에 아직 정제되지 않은, 하지만 꿈결처럼 인식되고 마음 어딘가 쌓여있는 세상의 파편화된 이미지 및 정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이 구간, 아직 완벽히 정의되지 않은 다양한 맥락에 따른 세상의 각 부분에 대한 정보 및 이미지들이 쌓여있는 이 구간이 바로 우리의 “이미 알고 있지 않은” 생각이 태어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꿈결 같은 생각의 구간에 들어가 이것들을 정제할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질문이 주어지면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왜 사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에 대한 답은 없지만 답을 하기 위해 머리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각은 보통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흐름이 아니라 이리저리 휘청이는 사고의 만취상태와 같다. 그래서 보통 너무 어려운 질문은 일관되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고,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고양된 어떤 이미지, 혹은 말로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매우 표면적인 형식의 답을 이끌어낸다. 그렇기에 타인이 이해 가능하고 또 논리적인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꿈같은 생각의 구간에서 적절한 것들을 끄집어내 하나로 이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하얀 백지에 질문을 답하기 위해 한 자 한 자 써 나아가다 보면,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답을 하듯 글이 써내려 간다. 그렇게 써내려 지는 생각의 파편들은 “글”이라는 작품이 요구하는 “맥락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저 스스로 논리를 짜 맞추어 나아가고, 편집되고, 삭제되고, 덧붙여진다. 그렇게 글은 우리의 세상에 대한 꿈같은 지식과 이해와 이미지를 하나의 정리된 이야기로 만들고, 그 이야기를 우리는 다시 우리의 정체성 중 하나로 받아들이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목적이자 효과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어떤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 자신을 쌓아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읽고, 듣고 그리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쓰기의 목적과 활용 방법을 보면 왜 PO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과 그 해답을 실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직군들에게 높은 글쓰기 실력이 요구되는지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글의 유려함, 설득력, 문법 따위가 아니다(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은 얼마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의 파편으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답을 끌어 내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잘하기 위해서는 결국에 어른들로부터 100만 번쯤 들어본 4가지를 하면 된다.
많이 읽기, 듣기, 경험하기
많이 질문하기
많이 생각하기
많이 쓰기
안다.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서론이 너무 길었다.
결론은 책 좀 읽고 글 좀 써라.
여름비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