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또다시 새해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습관처럼 한 해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목표한 것들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회고하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자책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다짐을 한다. ‘올해는 이것만큼은 꼭 지켜야지’하고 다짐하지만 이내 흐지부지해지기를 반복한다. 이런 제안을 해보고 싶다. 올해는 매해 달라지는 목표 말고 인생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짐들을 해보면 어떨까. 달성했을 때, 올 한 해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밝아질 수 있는 그런 다짐들 말이다. 개인적으로 다섯 가지 다짐을 해본다. 이 다짐들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한 것이어서 올해는 이 중 하나만 지켜져도 충분히 성공적인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들 다섯 가지 다짐들을 살펴보고 각자 자신만의 다짐들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2022년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에게 가장 실망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누군가를 돕기보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경우가 월등히 많았던 해였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나 포지션을 감안하면 마땅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작년은 유독 주위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전략디렉터로 있었던 미국 스타트업이 자금난으로 힘들어져 나와야 했는데 마침 지인이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CBO 자리를 제안해 공백 없이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타트업의 투자 혹한기를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몸보다는 마음이 힘든 날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주변에서 응원의 메시지와 긍정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어줬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100% 재택 업무를 했기에 저녁과 밤 시간에 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상황을 이해해 주고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해 줬다. 아내의 경우 학업과 아이들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내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늘 양보했다.
물론 내게 아낌없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하지만 도움을 주기보다 받기만 하는 상황이 일정 기간 지속되다 보니 스스로 움츠려드는 기분으로 인해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의존적이 되어 계속해서 도움을 바라게 되었고, 솔직히 가끔씩 요행을 바라는 마음까지도 생겨났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기 전에 바꾸려고 한다.
올해는 도움 주는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다짐한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있게 인격적으로 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파급력이 큰 매체를 통해 다수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한 사람을 깊이 있게 돕는 일은 지금까지 커리어에서 길잡이를 역할을 해줬던 후배들에게 다시금 도움의 손을 내밀려고 한다. 최근 수년간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을 돌보지 못했는데 먼저 다가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줄 수 있는 인사이트와 지혜를 전할 것이다. 다수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우선 글을 통해 하고자 한다. 브런치, 퍼블리, 아웃스탠딩, 롱블랙 작가 활동을 그 어느 해 보다 부지런히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전할 것이다.
가족이 중요하다. 캐나다에 정착한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다행히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식구가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우리 가족의 삶은 안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두 아이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다. 칼리지에서 공부하는 아내는 최상위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여전히 영어 울렁증이 심하다. 나 역시 이제 캐나다 회사 취업을 알아보고 있는 취준생에 불과하다. 가족 한 명 한 명이 처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옆 사람 챙길 여유가 없다. 그보다는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힘든 상황을 모두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많은 짐을 지고 있는 아내, 이제 곧 11학년(고2) 수험생이 되는 아들, 아직도 영어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있는 5학년 딸. 솔직히 가족 한 명 한 명과 좋은 관계성을 맺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사춘기에 학교 공부, 그리고 친구 사귀기 어려운 환경까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아내에게, 그리고 두 자녀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고 싶고, 고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고 싶다. 잘 안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 많은 것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나 잔소리도 십 분의 일로 줄여야 한다. 그래도 믿는 것은 가족들과 좋은 관계성을 맺게 되었을 때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기적과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할 것이다.
최근의 하루를 돌아보면 첫 시간이 무너졌다. 정확히는 첫 시간이라고 말할 시간조차 없다. 정해진 시간 없이 겨우 일어나 아이들을 학교로 태워다 준다. 변명을 하자면 작년 한 해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한국에 있는 멤버들과 미팅이 많다 보니 이곳 시간으로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22년 말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동안에도 하루 첫 시간은 여전히 무너져 있다. 시작부터 삐걱대니 오전 시간까지 영향받는다. 물론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일어나자마자 동네를 뛴 적도 있었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기도 했고, 자전거로 먼 동네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부터는 하루 첫 시간 루틴을 만들려고 한다. 우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좋은 하루를 위해 짧게 기도하고 영어 회화 공부를 하려고 한다. 캐나다에서 살면 살수록 깨닫는 건 첫째도 영어, 둘째도 영어라는 사실이다. 영어만 잘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해도 절대 과장이 아니다. 내 경우 영어로 말할 때 부끄러움이 없는 성격 탓에 사는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크고 작은 성공을 경험하기 위해선 지금 실력으론 어림없다. 하루 첫 시간 루틴과 관련한 어플이나 프로그램도 많이 있던데 좀 더 알아보고 현재 내 계획과 접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적극 활용할 것이다.
하루 첫 시간 루틴이라고 해서 꼭 새벽형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새벽 5시 기상이든 아침 7시 기상이든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면 삶과 커리어에 큰 힘이 될 것이다. 혼자서는 자신이 없다면 가까운 친구를 설득해 루틴을 공유해도 좋고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관련 커뮤니티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자존감이 낮은 시대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기보다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찾기를 권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시대의 변화는 자기 객관화의 시대다. 개인이 어느 정도의 능력이 있는지, 즉 혼자 힘으로는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고, 여러 사람과 팀을 이루면 또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는 지를 파악하려고 한다. 따라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 이름과 내 주변의 것들로 인해 자신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평가되고 있지 않은지를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내 상황이 그렇다. 직무로만 보면 언론, 컨설팅, 전략, 데이터분석, 운영 업무 등을 섭렵했고, 업종으로 보면 식품, 화학, 헬스, IT, 암호화폐, 플랫폼 서비스를 거쳤다. 포지션도 신입부터 시작해서 C레벨까지 모두 경험했다. 전자공학 전공에 일본에서 MBA까지 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바닥부터 다시 도전 중이다. 영어라는 장벽과 캐나다에서 경력이 없다는 단점으로 그동안 쌓아왔던 커리어의 대부분을 양보해야 한다. 그리고 오로지 실력을 보여주고 검증받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 내가 자신 있게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파악해야 한다.
비단 나뿐 아니라 누구나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현재 본인이 서 있는 자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보이고, 또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가야 하는 부분도 보인다.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본인의 업적 위주로 이력서를 업데이트해 보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무엇을 해서 어떤 업적으로 이뤘는지까지 적어보자. 그러면 객관적인 자기 평가가 가능하다. 또 다른 방법은 본인이 신뢰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이 방법은 마음의 상처까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이왕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려고 애쓰자. 물론 반대로 가까운 이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는 것도 좋다.
얼마 전 두 자녀들에게 ‘아빠가 취업을 할 수도 있고, 이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어’라고 말했더니 둘 모두 사업은 하지 말라고 단번에 답했다. 망하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물론 사업은 망할 수 있다. 하지만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와 같은 대답을 했던 것은 내가 아직 사업가로서의 능력은 검증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들 녀석은 ‘아빠가 뭘 팔려고 그래’라는 말로 아이템 선정부터 쉽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두 자녀들은 비즈니스 마인드 자체가 아직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 날 가까이서 봐왔기 때문에 내가 피드백을 물으면 적절한 대답을 해줄 수 있다. 이처럼 본인이 스스로를 평가하기 힘들다면,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구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
글쓰기의 장점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지털 시대에 글쓰기라니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든 디지털 시대든 글쓰기는 변함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는 바로 생각하고 아는 것을 정리해 주는 힘이다. 예를 들어보자. 본인이 마케팅 업무를 한다면 최근 마케팅 트렌드에 대해 3000자 분량의 글을 써보자. 전략부서에 있다면 ‘전략이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1000자 길이로 글을 써보자. 글을 써보면 느낄 것이다. 본인의 경험과 생각이 충분한지 아닌지, 그리고 스스로 확실한 답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좀 더 정리가 필요한지 바로 느낄 수 있다. 이는 글을 맛깔나게 쓰고 못쓰고의 문제가 아니다. 표현이 서툴더라도 자신 있어하는 주제라면 알고 있는 것을 투박하게라도 정리해서 글로 쓸 수 있다.
글쓰기의 핵심 중 하나는 정기적으로 쓰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상관없다. 꼭 글감이 생겨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어떤 컨셉의 글을 쓰기로 정한 뒤 해당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 글 쓰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퍼블리에서 두 달에 한번 정도 팀장들을 위한 글을 발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평소에도 팀장이나 중간관리자들에게 필요한 주제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글을 쓴다.
글쓰기는 어려우면서도 쉽다. 나처럼 여러 플랫폼에서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글쓰기는 늘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한없이 쉽기도 하다. 내 경험과 생각을 머릿속에서 차분히 정제해서 글자로 표현하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다짐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다짐을 혼자 힘만으로 지킬 만큼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본인의 다짐을 가까이 있는 이들과 나누길 바란다. 나 역시 내 다짐을 가장 가까운 아내와 나누고, 나를 정말 아끼는 이들과 공유하고, 여러 글을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전할 것이다. 올해가 반쯤 지났을 때 내 다짐들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확실한 건 이 다짐들이 비단 올해만을 위한 것들이 아니기에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도전할 것이란 사실이다.
Mark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