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자의 자유 VS 공정한 시장 경쟁
퀄컴(Qualcomm)이 약 1조 원에 달하는 역대급 과징금을 한국 정부에 납부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허권자의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이다.
사건의 발단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난 2016년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1조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시작되었다. 연봉 1억의 직장인이 1만 년간 저축해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다. 대법원은 지난 7년간 이어진 판단 끝에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이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얼핏 보면,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대기업의 ‘갑질’을 막은 단순한 스토리로 보이지만, 그 내막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인텔, 엔비디아, 미디어텍, 화웨이, 에릭슨 등 전 세계 IT업계의 거물들이 합종연횡하는 연합군의 작전이 있었다.
이번 한국의 판결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결론을 뒤집는 파격적인 판결로 더욱 이목을 끈다. 특허를 가진 권리자는 이번 판결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 특허라는 기술 독점권에 어떤 영향이 미치게 되는 것일까?
이번 판결은 ‘공정거래‘라는 이름으로 특허라는 권리의 경계선을 다시 정립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허 제도’는 기술을 연구개발한 대가로 ‘기술(Technology)’을 합법적으로 “독점”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회사에서 성과를 낸 직원에게 보너스를 주거나 포상 휴가를 주며 근로 의욕을 높이는 것과 같다.
특허 제도는 발명자에게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낼 유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에디슨과 같은 천재 발명가가 아닌 이상 우리 모두에게는 창작의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시험기간에 임박하여 초인적인 집중력이 발휘되는 것처럼 아주 특수한 상황이 필요하다. 스스로 넷플릭스나 TV 시청을 멈추고 책을 읽거나, 세상의 불편함을 찾아 나서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노력을 하기는 정말 힘들다.
현실을 마주하면 더욱 그렇다. 공교롭게도 한 해의 연구실적을 채워야 하는 연말에 몰려 대부분의 특허가 탄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은 항상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비행기의 탄생으로 세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 삶은 더욱 편리해졌다.
신기술의 탄생을 돕기 위해서는 ‘도움닫기’가 필요했고, 특허 제도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세상에 공개하는 대가로, 20년간 기술을 “독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발명자의 열정에 기름을 붓는 방법을 선택했다.
특허권자는 기술을 독점함으로써, 기업에게 생존의 가능성을 높여 줄 수 있는 무기를 제공받고, 경쟁사의 기술 모방을 방지하며,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다. 특허권자에게는 시장경제에서 합법적인 독점권이 가지는 힘을 활용할 자유를 준다.
스마트폰을 세상에 등장시킨 애플도 특허를 활용하고 있으며, 폴더블 스마트폰을 만드는 삼성전자도 특허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 중 하나이다.
퀄컴도 자신들이 만든 통신기술을 특허로 보호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특허 제도와 달리, ‘공정거래 제도’는 기업이 ‘시장(Market)’을 “독점”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장치이다.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게 되면,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오게 된다.
시장 지배력을 가진 기업은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거나, 품질을 떨어뜨리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거래조건을 강제할 수 있다.
누군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번 퀄컴의 공정위 제재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공정위는 퀄컴이 이동통신 분야에서 표준필수특허(SEP)를 가진 특허권자의 지위를 남용한 것이라는 문제를 지적하였다.
누군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술을 개발하고, 자신의 기술에 대해 특허를 획득하여 사업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특허를 활용하는 것은 기업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특허권자는 A기업에는 장기간 계약을 하는 대신 저렴한 기술료를 받을 수 있고, B기업에는 독점 계약을 하는 대신 높은 기술료를 받을 수 있다.
경쟁사인 C기업에 내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오히려 시장에서 내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경쟁자에게 내 피자를 스스로 나누어줄 이유가 없지 않을까.
특허를 사고파는 ‘매매 계약’을 하거나, 누구에게 빌려주는 ‘라이선스 계약‘을 하는 것은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거래 당사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를 뿐이다.
내 집을 팔지 않겠다는 주인에게 주변 시세보다 높은 호가를 제시하여 거래에 응하게 하지 않는 이상, 집주인의 인감을 함부로 가져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는 없는 이치와도 같다.
표준특허는 일반적인 특허와 조금 다르다. 표준특허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이번 판결의 방향을 이해하는 시작점이다. 표준특허는 ISO(국제표준화기구), ITU(국제전기통신연합) 등 국제기구에서 정한 기준을 맞추어 제품을 만들고자 할 때, 반드시 사용되는 특허를 말한다.
우리가 비행을 하기 위하여 반드시 공항을 거쳐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표준규격에 맞는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표준특허”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스마트폰 종류마다 충전기가 달라져 고생해 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하나의 통일된 표준규격이 있었다면, 어느 충전단자이더라도 같은 충전기를 쓸 수 있어 편리해지고,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스펙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므로 모두에게 효용을 준다. 유럽연합(EU)에서 스마트폰 제조사와 관계 없이 2024년까지 충전단자를 USB-C타입으로 통일하는 방안에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X기업이 “스마트폰의 충전 단자”에 특허를 받아 두었다면? 스마트폰 제조사 모두는 X기업의 특허를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X기업이 가진 특허는 일반적인 특허와 달리, 다른 기업들에게도 합리적인 조건에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만들 필요가 있다.
표준특허(SEP)를 보유한 권리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FRAND: Fair, Reasonable, Non-Discrimiatory)으로 다른 기업에게 라이선스 계약을 허락한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표준특허를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퀄컴은 휴대전화 생산에 필수적인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를 상당하게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자이자(모회사), 이와 동시에 이동통신 모뎀 칩세트를 제조, 판매하는 사업자(자회사)라는 점에서 표준특허가 시장지배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공정위는 퀄컴이 FRAND 선언을 통해 표준필수특허(SEP) 보유자의 지위를 인정받았음에도, 삼성전자 등 칩세트 제조사들의 요청에도 특허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한 행위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퀄컴은 칩세트를 공급받는 휴대전화 제조사들에도 특허권 계약을 함께 맺도록 강제한 뒤, 이렇게 강화한 칩세트 시장 지배력으로 휴대전화 제조사와의 특허권 계약도 일방적인 조건으로 체결하였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였다.
퀄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업 구조(모회사는 이동통신 표준특허의 특허권자이고, 자회사는 모뎀 칩세트를 제조, 판매하는 구조)와 영업 방식(자신들의 보유 SEP 특허를 통해 계약 레버리지로 활용)으로 인한 특수한 판결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표준특허’를 선점하고 있는 특허권자의 특허 활용 범위를 제한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반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권리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특허권자에게 기술 독점권을 부여하는 특허법과 시장의 독점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은 언제든지 또다시 충돌할 것이다. 기술과 시장은 언제나 함께하기 때문이다. 산업 발전의 동력을 만들면서, 공정한 자유시장을 꿈꾸는, 그 어느 지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글. 손인호 변리사. Copyright reserved 2023.
손인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