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YE WEST와 ‘토스’의 사례로 알아보는 MVP 모델
눈부신 초록의 분위기가 물씬 나던 2015년의 5월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여느 디자인과 학생처럼 나 역시도 늦은 밤까지 포토샵과 씨름하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작업하다 우연히 들은 Kanye West의 5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이하 MBDTF) 앨범을 듣고 받게 된 신선함과 가슴을 뛰게 하는 풍성한 사운드, 서사가 있는 앨범의 구성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고, 밤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며 한동안 밤샘 작업의 큰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2010년 11월 발매한 Kanye West의 5번째 정규 앨범으로 힙합을 넘어, 21세기 최고의 앨범이자 2010년대 이후 대중 음악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Kanye는 이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하와이의 한 리조트를 스튜디오로 개조하고 호텔 셰프를 고용하며 앨범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인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 천문학적인 금액과 최상의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한 대신 1~2시간가량만 쪽잠을 자고 낮에는 전원이 낮잠과 휴식을 청하는 등 고강도 앨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작업 환경에서 전자 악기를 기반으로 60-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부터 일렉트릭, 소울,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서 가져온 샘플을 본인의 앨범 콘셉트에 맞춰 다듬어 적재적소에 배치하였으며 거기에 다양한 효과를 중첩시켜 풍성하고 꽉 찬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구성은 힙합을 넘어 다양한 장르를 포용하며 음악의 경계를 허물었고, 힙합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넓히게 되었다. 또한 Jay-Z, Niki Minaz, Jone Legend, Bon Iver 등 초호화 피처링진과 최고의 프로듀서진과 함께하며 힙합과 음악의 ‘맥시멀리즘’을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리소스와 에너지를 쏟았다.
이 앨범에 Kanye가 제작 과정에만 힘을 쏟은 게 아니다. 점점 곡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 2010년이었음에도 타이틀곡인 <Runaway>는 9분 08초, Niki Minaz, Jay-Z 등이 피처링 참여한 <Monster>는 6분 19초 등 앨범 중간에 들어가는 Interude 곡을 제외하면 모든 곡의 러닝타임이 4분 후반대에서 9분까지 대곡으로 이루어져 있어, Kanye가 이 앨범에 대한 큰 확신이 있지 않는 한 쉽지 않은 과정과 노력,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당시에 일련의 사건과 기행 등으로 심각해진 Kanye의 조울증 증세와 명성의 추락과 좌절, 그리고 화려한 스타의 모습 속에 가려진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이 앨범은 출시 이후, 대중과 평단의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고 Drake, Travis Scott 등 수많은 가수들과 음악씬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결함이 있으면서 진실한 그의 음악과 페르소나는 칸예의 인간-신화 이분법을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이게 만든다. – Pitch Fork, 10/10점
다른 어떤 아티스트들도 이렇게 다크 하거나 묘한 음악 작업을 하지 못할 것이다.
– Rolling Stone, 5/5점
평가에 있어 깐깐하기로 소문난 음악 평론지 ‘Pitch Fork’에서는 8년 만에 만점을 부여했으며, 2014년에 선정한 2010년대 최고의 앨범 1위로 뽑았다.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저널 Rolling Stone 역시 만점을 부여하고 2010년대 최고의 앨범 1위로 이 앨범을 선정했다. 2001년 설립 이후 음반, 영화, 게임 등의 평론 점수를 선정하는 ‘Metacritic’에선 100점 만점에 무려 94점을 매겼다. 그리고 상업적으로도 출시와 동시에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오르고, 전 세계 300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를 거두며 평단과 대중의 모든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Kanye West는 처음부터 이 앨범에 엄청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이렇게나 많은 물량과 에너지를 쓰며 제작을 한 것일까?
먼저 MVP 모델이 무엇인지 정의해 보고 시작하려 한다.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 MVP)은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최소한의 기능(features)을 구현한 제품이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개인이동수단을 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고객에게 필요한 MVP 모델은 무엇일까? 첫 번째 MVP는 ‘바퀴 달린 보드’ 유형이다. 이후 방향전환에 대한 고객의 니즈가 있음을 발견한 후 ‘핸들을 장착한 바퀴 달린 보드’를 두 번째 MVP로 제작한다. 고객들에게 속도가 필요하다면 동력을 연결한다. MVP는 핵심적인 기능만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외관상 조악하고 부실하게 보일 수 있다. 다만 만드는 이가 구상한 제품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정도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도록 해서 어떤 기능을 추가해야 할지 판단한다. 제품 출시 이후에는 고객 피드백을 중심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정확히 파악하고 방향을 설정하여 최종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2004년, 1집 The College Dropout으로 성공적으로 씬에 데뷔한 Kanye는 이후 3집 Graduation까지 자신만의 샘플링 작법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제 악기, 오케스트라와의 협업으로 그래미 등 후보에 선정이 되기만 해도 영광인 큰 상들을 휩쓸었으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Kanye는 모두의 기대 속에 2008년 4집 808s & Heathbreak를 발매한다. 하지만 4집이 발매되고 나서 처음 반응은 너무나 차가웠다.
3집 Graduation에서 Kanye만의 음악 스타일이 정립되나 싶더니, 갑자기 4집 808s & Heathbreak에서는 앨범 전체를 당시 양산형 Pop 음악에서 남발되던 오토튠(Auto-Tune)을 사용한 보컬과 전자음 그리고 자신이 느끼고 있던 슬픔과 우울함, 불안정한 감정선을 표현한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싱잉 랩 (Singing Rap)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내는 등 전혀 예상과는 다른 앨범, 낯선 음악을 가져온 것이었다. 당연히 급작스러운 변화로 평단은 낮은 평가를 내렸다. Rolling Stone은 5점 만점에 3.5점을, 5집 MBTDF에서 10점 만점을 주었던 Pitch Fork는 7.6점을 주었다. 또한 1집부터 3집까지 그래미 어워드 최고 힙합 앨범 상을 받아온 Kanye West가 최초로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앨범이 되었다. 시간이 지난 2023년 지금 들어도 상당히 실험적인 느낌이 들면서 또 세련된 느낌이 든다.
물론 시간이 지난 이 앨범은 다시 재평가를 받게 되어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앨범’, ‘현대 힙합 작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앨범’, ‘Rolling Stone 선정 500대 명반 244위’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발매 당시에는 냉담한 평가를 받았지만, 수개월 뒤부터 음악의 트렌드는 이 앨범의 영향을 받은듯한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2009년에 나온 Drake의 첫 믹스테이프 앨범과 첫 정규 앨범 ‘Thank Me Later 앨범은 Kanye의 이 앨범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사한 느낌이며, 또 수록곡 Say What’s Real은 808s & Heatbreak의 첫 번째 곡 Say You Will을 샘플링했다. 그리고 이 앨범들은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Kanye는 음악의 방향성에 대해 큰 힌트와 확신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Kanye와 함께 하는 내부 인원이 아니기에, 정확하게 어떤 부분에서 어떤 지표를 보고 힌트를 얻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이는 IT 스타트업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로부터 1년이 지난 뒤, 다시 새로운 앨범 작업을 시작한 Kanye는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과하게 먹인 이펙트와 오토튠 등 전자음 그리고 싱잉 랩 등을 활용하여 표현했던 4집 스타일을 바탕으로 위에서 언급한 프로그레시브 락, 흑인 음악, 소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가리지 않고 가져와 샘플링하였고, 수많은 아티스트와 엔지니어와 협업하며 현악기, 오케스트라 세션 및 합창단들의 조화를 이끌어 내 곡의 구성과 사운드만으로도 앨범 전체의 서사가 그려지는 말 그대로 꽉 찬 앨범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위에서 말한 21세기 최고의 앨범인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탄생한 것이다.
내가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의 신입으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던 2016년~2017년쯤이다. 당시 막내였던 나는 점심 주문을 내가 하고, 내가 일괄 계산한 뒤 이후에 한 명 한 명에서 점심값을 송금받았었다. 지금은 간편 송금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일일이 계좌를 입력한 뒤, ARS 인증과 보안카드를 입력한 뒤에야 송금이 완료되는 아주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고 간혹 점심 값 송금을 까먹은 상사 분들에게 메신저로 “ㅇㅇㅇ님… 엊그제 점심 값 8,000원 아직 보내주시지 않으셨어요.”라고 막내에겐 매우 껄끄럽고 어려운 메시지를 보내야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분들의 커피 주문을 받고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커피 가져오는 것을 도와주러 같이 온 모 주임님께서 “지훈 씨, 이거 알아요?“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만으로도 송금이 되는 서비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에 간편 송금이 그 누구보다 필요로 했었던 나에게는 놀라운 기능이었지만, 돈에 있어서 보수적이고 또 겁이 많았던 사회 초년생 입장에서는 ‘이게 진짜로 된다고..? 근데 불안한데…’라는 걱정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게 바로 내가 토스와 처음 만났던 순간이자, 토스의 MVP 모델을 사용해 본 순간이었던 것이다.
2013년 8월 비바리퍼플리카가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2022년 기준 누적 가입자 수 2,200만 명, 전체 직원 수 1,500명이 넘는 우리나라 대표 핀테크 서비스이다.
현재의 토스는 간편 송금,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대출 등 우리의 금융 생활 전반을 다루고 있는 종합 금융 플랫폼이지만 ‘간편 송금’이라는 작은 기능으로 시작한 서비스이다.
치과의사 출신이었던 이승건 대표는 공중보건의로 일하면 시절, 모리치오 비롤리가 저술한 ‘공화주의’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IT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과 개발을 하고 특허 기술까지 만들어내며 출시한 Ulabla라는 서비스는 오프라인에서 사용자 간의 만남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신개념 SNS 서비스였다. 친구와 함께 버튼을 누르고 서로를 누르면 자동으로 태그 해서 만남을 몇 초만에 기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심 차게 출시한 이 서비스는 처참하게 실패하게 된다.
이러한 실패를 겪은 이승건 대표는 다음 사업 아이템을 정하기 위해 ‘뭐라도 해보자’, ‘우선 핵심적인 가설만 검증해 보자’라는 각오로 앱도 없는 상태에서 실제 제품이 있는 것처럼 ‘간편 송금 서비스’ 랜딩페이지를 만들어 광고를 진행했다. 이틀 동안 단 돈 1만 원으로 페이스북에 광고를 집행한 것이었다.
디자인과 기능의 완성도도 정말 Low 한 상태였지만 예상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고 이승건 대표와 토스팀은 ‘잘 될 제품은 예쁘지 않아도, 노출이 적어도 잘 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는 1년 4개월이라는 시간과 2.2억이라는 초기 사업이라 하기엔 많은 비용과 인력을 쏟아붓고도 처참하게 실패한 Ulabla와 비교하면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가능성을 확인한 토스팀은 최대한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고 하루에 3번씩 계좌 이체를 이승건 대표가 직접 수동으로 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기능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차근차근 디벨롭했다.
우리 일상의 모든 것에는 흐름과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음악 역시 유행과 트렌드의 변화가 빠르게 바뀌고 있고 IT 업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니즈는 끊임없이 바뀌기도 하고 수많은 경쟁 아이템들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또한 관련 법률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도 지속적으로 팔로우하고 대응해야 한다.
제 아무리 트렌드를 주도하는 Kanye여도 당시의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과 찬사를 받은 5집 ‘MBTDF’을 갑자기 발매했다면, 대중과 평단의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Kanye가 어마어마한 인력과 물량 그리고 시간을 쏟아붓는 동안 트렌드의 방향이 바뀌어 계획한 대로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4집 808’s & Heartbreak에서 먼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간결하게 구성하여 시도하고, 이후 음악 트렌드의 변화와 자신에게 영향을 받은 후배 가수들을 보고 Kanye 역시 확신을 가지고 5집 ‘MBDTF’라는 대작을 만들 수 있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토스도 처음부터 ‘종합 금융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토스를 처음 만났던 2016년처럼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들도 많이 있었고 또 금융이라는 카테고리의 특성상 관련 법률적인 문제와 기존 레거시 금융과의 기술적인 문제 등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토스도 ‘간편 송금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사용자의 호응을 확인하고 관계 부처, 레거시 금융과의 지속적으로 논의하며 법률적・기술적 제약을 해결하면서 서비스를 확장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 그렇게 서비스의 확신을 얻은 토스는 가계부, 뱅킹, 증권 등 전반적인 모든 금융 생활을 다루는 서비스들을 론칭하게 되었고, 우리 삶에 있어 꼭 필요한 서비스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창업을 하는 많은 이들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최소한의 가설 검증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제품 제작에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실패의 리스트는 매우 크고 그 책임은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따라서 제품의 핵심 기능이 어떤지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고, 사용자의 니즈와 피드백을 확인한 뒤 서비스를 고도화해야 한다. 그래서 MVP 모델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MVP 모델을 제작함으로써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으로 검증을 하고, 고도화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와 변화에 대해 대응하면서 사업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서비스를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MVP 모델은 꼭 창업과 스타트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게도 꼭 필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출처
이지훈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