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프로젝트에서 말하는 현지화의 정의
게임을 해봤던 사람이라면 현지화, 혹은 그 파생으로 존재하는 신조어 헬적화, 갓적화라는 단어를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야, 이거 완전 헬적화네
이 글에서 언급될 헬적화와 갓적화는 모두 현지화의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헬적화는 잘못된 현지화의 성격을 나타내고, 갓적화는 칭찬할 만한 현지화의 성격을 나타낸다.
갓적화의 경우, 현지화의 성격이 아닌 특정 프로그램의 사양 최적화 상태를 뜻하는 말로도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갓적화는 현지화를 지칭한다.
한국 게임 시장에서 중국 게임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과거 중국 게임이라고 함은 정제되지 않은 에셋 덩어리를 덕지덕지 기워서 게임인 척! 만들어낸 코드 덩어리를 지칭했다. 그런 주제에 VIP 시스템이라며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건 당연하고, 고작 1년 채 서비스하지 않고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며 유저를 버리고 도망가는 형태가 바로 중국 게임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현재 그런 중국 게임이라는 딱지를 달고서 한국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게임이 있다. 그게 바로 원신이다.
이 원신의 경우, 모든 캐릭터의 대사와 말투에 개성을 잘 녹여내었다. 그에 더하여 그 캐릭터성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성우를 기용한 풀더빙 메인스토리, 정규 업데이트마다 진행하는 쇼케이스와 한국어 자막 지원, 단순할 수 있는 GM에 캐릭터성을 부여하여 유저들과 소통하는 것 등 다양한 현지화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중국 게임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바꿔놓았다.
이러한 현지화는 실제로 어느 나라에서 개발이 됐든 간에, 한국에서 자사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최소한 이 게임이 ‘중국에서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현지화라 할 수 있다.
2020년 10월에 출시되어 2020년 12월에 서비스를 종료한 중국 게임 샤이닝 니키의 경우, 서비스 종료의 시발점이 됐던 문제가 바로 현지화에서 발생했다.
샤이닝 니키는 의상이 바로 게임의 콘텐츠라고 말할 정도로 의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임이다.
그렇기에 개발사 페이퍼 게임즈는 한국에서 서비스하는 만큼,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여 한복을 출시하게 되고, 여기까지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에 발생한다.
출시한 한복 관련 아이템에 대해 자국(중국)과 목표 시장(한국)에서 잡음이 발생하게 되는데, 더욱 어이없는 부분은 한국 시장에서 한국 시장을 위해 개발한 한국 문화 관련 아이템이 자국 내의 여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동북공정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 유저들의 많은 항의를 받고도. 자신들은 중국 회사이므로 한국 서비스를 종료했으면 종료했지 중국의 의견을 견지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형태의 운영을 보인 것이다.
이는 현지화의 완벽한 실패 사례이며, 애초에 현지화가 무엇 인지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지화를 한다고 해서 개발사가 속한 나라의 문화를 무시하고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게임 속에서 만큼은 그것을 유저들에게 인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한국에서 서비스를 하면서도 한국 유저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습은 운영면에서 전혀 엉망인 현지화라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지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아래와 같다.
번역 말하는 거지? 그거 번역기 돌리면 되는 거 아니야?
현지화의 업무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번역이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다. 중국과 관련한 현지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항상 가져오는 하나의 예시가 있으니, 함께 알아보자.
아래의 로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프랜차이즈사 서브웨이의 로고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현지화의 특징은 무엇일까?
서브웨이의 기존 브랜드 명은 영어 SUBWAY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서브웨이지만 해당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한 발음은 sʌbwei, 써브웨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사용되는 써브웨이라는 발음이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자.
만약 미국에서 살던 한국인이 한국으로 잠시 귀국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써브웨이라는 발음을 들었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는 무엇일까? 바로 미국에서 보았던 SUBWAY 브랜드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SUBWAY가 한국 브랜드명을 지하철로 지었다면 어떻게 될까? 기존의 브랜드를 알고 있던 사람조차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브랜드에는 기존에 쌓아 올린 인지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좋은 현지화란 기존에 쌓인 인지도를 충분히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현지화이다.
중국어 브랜드명인 赛百味의 경우, 발음은 Sai Bai Wei로 기존의 브랜드명과 굉장히 흡사한 발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기존 브랜드를 알고 있는 소비자라면 큰 어려움 없이 기존 브랜드와 해당 명칭을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발음적인 면에서 충분히 잘 된 현지화라 할 수 있다.
서브웨이의 특징은 원하는 재료를 원하는 만큼, 원하는 소스를 원하는 만큼 넣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기초가 될 빵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얼마나 구울 것인지 등등의 수많은 선택지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들은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를 현지화에 살릴 수 있다면 정말 좋지 않을까?
중국어의 경우 표의문자로 각 단어가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그 단어를 구성하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뜻을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중국어 현지화에서 가장 좋은 것은 브랜드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해당 브랜드의 경우, 굿할 새, 일백 백, 맛 미의 세 글자를 사용하여 중국어로 직역할 경우, 우열을 가리는 100가지의 맛이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서브웨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다양한 재료의 커스터마이징으로 표현하는 수십 가지의 조합)와 충분히 부합함을 볼 수 있기에 중국어의 특징을 충분히 잘 사용하여 이미지를 살린 좋은 현지화라 할 수 있다.
기획과 개발, 출시라는 큰 3단계의 과정을 거쳐 한 게임이 0에서 1로 등장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는 당연하게도 개발사가 위치한 나라의 언어로 게임이 출시된다. 그리고 해당 게임이 자국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하여 자금과 인력이 충분히 준비됐을 경우, 많은 개발사들이 더욱 넓은 시장의 확보(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 확보)를 위해 해외로의 진출을 선택한다. 이때 당연하게도 해당하는 제품(게임)을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할 필요성이 생기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현지화라는 업무이다.
그렇다면 게임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내용은 어떤 모습으로 적용되고, 이를 위해 요구되는 작업자의 능력이란 무엇일까?
먼저 현지화를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소스 언어(기존에 게임에 사용 중인 언어)와 타깃 언어(바꿔야 할 언어), 총 두 종류의 언어적 능력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스 언어보다 타깃 언어의 실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스 언어의 실력이 더욱 뛰어나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현지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담당자는 소스 언어를 해석하고, 이해해서, 타깃 언어로 변환하는 일을 맡고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소스 언어에 대해서는 해석하는 해석 능력과 이해하는 이해 능력만 존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후 진행될 타깃 언어에 대한 작업이다.
담당자는 타깃 언어의 문화적 사용, 사회적 사용, 언어적 사용을 모두 고려한 후 타깃 언어를 작성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타깃 언어의 언어적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만약 소스 언어 실력은 뛰어나지만 타깃 언어의 실력이 뛰어나지 못할 경우, 그 결과물은 번역기와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이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해석 능력과 이해 능력은 번역기가 사람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작업자는 해석 능력과 이해 능력은 기본으로 갖춘 상태에서 타깃 언어에 대한 능력이 가장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능력이 가장 빛나는 업무가 게임 현지화 업무이다.
게임에서는 필수적으로 그 게임만이 가진 각각의 독특한 세계관이 존재하는데, 이 세계관을 유저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많은 게임들이 ‘퀘스트’라는 소재를 이용한다. 퀘스트는 대부분 캐릭터들 간의 대사와 행동, 그들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현지화 작업자는 그것을 모두 이해한 상태로 세계관을 유저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그 문화권에 맞는 언어와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언어적 특성(예를 들어 한국어의 경우, 평어와 경어가 엄격하게 존재함에 반해 중국어는 경어가 있긴 하지만 애초에 한국만큼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도 적지 않아 이를 해결하는 것도 담당자의 업무이다.
요약하면 중한 현지화 담당자는 중국어를 이해한 상태에서 세계관을 입히고, 캐릭터의 나이, 출생, 말투 등의 캐릭터성까지 모두 살린 상태에서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파악하고, 평어와 경어를 먼저 정한 뒤에 현지화를 진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충분한 수준의 한국어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번역 관련 업무 외에도 민감한 문화적, 사회적 문제들을 가진 아이템이나 일러스트가 존재한다면 사전에 변경할 수 있도록 진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개발의 외적인 부분(게임의 이벤트 기획, 운영 이슈 등)을 포함한 해외 서비스의 모든 업무(기획, 개발, 운영 등)에 한국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현지화 담당자의 손길이 닿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MMORPG 게임의 경우 세계관이 방대하고 내용의 양 자체가 많다. 현지화 담당자 한 명으로는 충분히 작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다른 협력 업체들과 함께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게임에서 다양한 번역상의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혼자서 처리할 수 없는 분량의 작업물을 협력 업체에게 제공함과 동시에 일반적으로 그 결과물을 검증할 충분한 시간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 현지화 작업자는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작업물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고, 그로 인해 우선순위가 낮은 작업물이 유저들에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게임 업계에서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마지막 단계인 QA(품질 보증, 일반적으로 버그를 찾고 보고하는 업무를 가지고 있음)를 천대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 개발의 마지막 단계에 진행될 수밖에 없는 현지화도 그와 비슷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상술한 능력을 가진 인재가 적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력 문제가 있고, 기업 자체가 현지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현지화 직무는 단순 번역 직무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현지화 직무는 단순 번역이 아니다. 수많은 변인을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언어적 배경을 기반으로, 확인하고, 조정하며, 수정하는 직무이다. 사실상 해외 서비스를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에 속한다.
만약 이 직무에서 제대로 작업이 처리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게임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좋은 현지화는 어불성설일 것이다. 게임이 가진 게임성조차도 훼손될 것이 분명하다.
현지화의 관점에서 좋은 게임이라는 것은 게임이 가진 게임성을 해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언어적 배경을 기반으로 하여금 기존 프로젝트의 완성도까지도 올려놓은 프로젝트를 말한다. 그렇기에 현지화 담당자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도 이와 같다.
병욱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