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해도 좋다고 말해 주는 증인
13년 만에 만난 로마는 변한 게 없었다. 현금만 받던 가게들이 신용카드를 받게된 것 빼고,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길과 유적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김영하 작가도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이유를 비슷하게 말하더라. 20대에 와도, 30대에 와도, 40대에 와도 이탈리아는 변하지 않는데 본인만 계속 변해간다고 하더라. 도시는 그대로인데, 우리가 느끼는 인상은 매 번 다르다. 그렇게 스스로가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는 나라가 이탈리아랄까.
'쇠사슬의 성베드로 성당'이라는 곳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돌아보는 조각이 있다. 비장한 표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세의 얼굴을 보려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모세의 표정이 “저요? 제가요?.. 저 지금 막 자리에 앉았는데...”라고 팀장을 쳐다보는 팀원의 얼굴로 보였다.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웃겨서, 그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나, 퇴사하고 여행오길 잘했네. 라는 안도감이 이어졌다. 로마는 정말이지, 거울같은 곳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배낭여행으로 처음왔을 때의 나는 설명문의 한글자라도 빼 먹으면 움직이지 못할만큼 공부 하며 여행하는 학생이었는데 말이다. 그 땐, 오래된 이야기의 압도감에 안절부절했었다.
난 로마에 대학 시절 친구인 보연을 보러왔다.
보연은 소셜미디어를 잘 안한다. 나의 오랜 친구들은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이 많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유튜브 프리미엄”을 서비스를 처음 썼을 때,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떤 광고도 잡음도 없는 세계. 사진이나 게시물로 소식을 전해 들은 게 없으니, 우리는 만날 때마다 할 이야기가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나면 소셜미디어 밖에도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지천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게 된다. 자신의 삶을 ‘올릴만한 것’과 ‘올리지 못하는 것’으로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디톡스를 한 것처럼 속이 잠잠해지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보연은 제일 큰 위안이었다. 나는 그에게 “너 유튜브하면 대박난다니까. 너 스토리 완전 대박이야.”라고 자주 말했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는 나와 같이 국문학을 전공했었다. 연극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하던 그녀는 취업할 때가 되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로마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가 처음 그 말을 했던 저녁 자리가 생생하다. 나는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가이드? 너가 왜? 굳이? 로마? 너의 마음은 확실한거야? 나는 그녀가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한 건지 몇번이고 되 물었던 것 같다. 이번 로마 여행에서 그녀에게 다시 물어봤다. 왜 로마에서 가이드를 했던 거냐고. 그녀는 “글쎄, 외국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 별 다른 이유는 없었어.”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4년 정도 관광 가이드로 산 그녀는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이유는 ‘가이드라는 직업을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가 한국에 돌아오겠구나 생각했다. 나의 생각의 그릇은 그정도였다.
하지만 내 예상은 틀렸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코딩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년 동안 코딩을 독학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더니 그녀는 이탈리아 스타트업 회사에 개발자로 취업을 하더라. 그는 인간 나이키같았다. 고민하기 보다 일단 실천하는 사람. 인간 “JUST DO IT”. 내가 이렇게 칭송하면 그는 손사레를 치겠지만, 부정할 수는 없을 거다.
로마에는 노란색 건물이 많다. 태양과 흙과 오렌지의 색이다. 생기가 가득하다. 10월인데도 땀이 뻘뻘 흐르는 로마의 날씨를 닮은 여름의 색깔들. 흙과 돌로 빚어진 오랜 유적들도 노란 빛을 띤다. 보연도 그런 곳에 살고 있었다. 로마 6년차 보연의 방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엔 이탈리아 국기를 세워둔 어떤 노부부의 집이 있다. 친한 친구 앞에서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내게 보연은 경고를 던졌다.
“건너편 할머니들이 다 보고 있어. 여기 할머니들은 낮에 맞은 편 집 구경하거든.”
그래?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그 때 였다. 이번엔 어딘가에서 성악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에서 부르고 있다고 믿어도 될만큼 가까이서 들렸다. 성악을 전공하는 유학생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라서 오후에는 항상 연습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나름, 엄격한 규칙도 있어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만 연습이 가능하다고 했다. 가끔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연습을 하면, 맞은편 할머니가 "그만해!"라고 소리지르기도 하신다고. 왠지 따라하고 싶어지는 소리였지만, 내가 따라하면 상대방이 기분나쁠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아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이탈리아스러운 아파트잖아!
나는 재택근무를 하며 열심히 컴퓨터 언어를 쓰는 보연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랑 국문과 에세이를 같이 쓰던 자네가 어찌하여 로마에서 컴퓨터 말을 쓰고 있는가. 말로만 듣던 개발자 보연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인생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보연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내게 힘이 된다. ‘대기업을 때려쳤다’는 나의 변화는 변화 축에도 못들만큼, 보연은 진취적인 변화를 이뤄왔으니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게될지 하나도 모르겠는 나에게 그는 존재만으로 감사한 사람이다. ‘변화하며 살아도 된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증인같은 존재.
보연은 샐러리를 투박하게 썰어서 접시위에 담아 놓았다. 그 위로 호두를 뿌리고, 치즈를 넣고, 건포도를 넣더니 12년 숙성된 발사믹 식초를 꽤나 건성으로 뿌렸다. 사실 나는 건포도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 그래도 한 입 해본다. 음, 와. 뭐야.
- 맛있지?
- 이거 완전. 여름의 맛이야.
10월의 마지막 주였지만 로마는 아직도 더웠고, 보연의 샐러드에서는 분명 여름의 맛이 났다.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여름의 맛.
- 보연아, 나 샐러리를 좋아하네.
- 샐러리가 얼마나 맛있는데.
내 취향에 이렇게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맛. 역시, 오길 잘했어. 기다렸던 모카포트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윗집에서는 다시 성악 연습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보연은 눈을 마주치고 웃음이 터졌다.
2022년 11월 로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