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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그로토

by 정희권


지난일은 다 잘된 일이다. 그래도 가지않은 길에 대한 후회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예를 들면 학부 1학년 2학기 교양 체육강의 마지막 날, 한 학기 내내 파트너로 댄스를 배운 예쁘고 날씬한 무역학과 여학생 번호를 따지 않은 것. (아마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아니라 삐삐였을 것이다.)


나는 상관없는 여자들 이름을 대부분 기억하지 않거나 못하는데 그 여학생은 이름이 꽤 특이해서 아직도 기억난다. 평생에 들어볼까 말까 한 특이한 이름이다. 아시아게임 선수단장을 했던 여자교수님께서는 첫 수업 때 여학생들을 먼저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게 하고, 남학생들이 파트너가 되고 싶은 여학생 앞에 서서 인사하도록 했다.



요즘 애들이야 그런 거 신경 안 쓰겠지만, 당시에는 남녀가 유별하다는 생각이 흔적 정도는 남아있을 때라 남자애들이 쭈뼛쭈뼛하면서 나서지를 않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맨 앞에 있는 제일 예쁜 여학생 앞에 자리를 잡았다.



수업이 시작되면, 파트너에게 인사한 후 내 왼손으로 상대의 오른손을 잡아 살짝 올리고 내 오른손으로는 상대방의 등을 감싸 안고 (탱고에서는 아브라소라 한다.) 시작한다.


반드시 그 파트너와 하는 것은 아니니 파트너가 언제든 바뀔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과 한번 파트너로 춤을 췄는데 이번에 선택을 안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아니, 나만 그랬던 것인가? 다른 이들은 매번 파트너를 바꿨나? 그건 알 수가 없다. 그 수업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예쁜 여학생이고, 나는 여자친구가 없었으니 서로 호흡을 맞춰 춤을 추는 동안 설레는 순간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변명을 하자면 나는 연애나 학교 공부 말고도 항상 뭔가에 꽂혀 있었다. 그때는 비트겐슈타인과 검도에 미쳐있을 때다. 새벽에 삼성동에서 잠실운동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도장에 가서 새벽 수련을 하고 나서는, 운동삼아 경희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고, 강의가 끝나면 저녁에 검도부에서 운동을 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땀냄새나는 나날이었다.



한 학기를 같이 보내고 종강날 분명히 서로가 무언가 머뭇 거린 순간이 있었는데 난 그때만 해도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정도가 심한 등신이라, '상대가 마음에 없는데 공연히 그런 말을 해서 그나마 재미있게 한 학기 수업을 잘 듣고 나서 인상을 망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만나지도 않을 거면 인상이 좋고 나쁘고 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발레로 시작한 우리 수업은 자이브와 룸바까지 배우고 끝났는데, 룸바 특유의 따라라닷, 하면서 끌리듯이 감아치는 리듬을 다들 어려워했지만 고등학교 때 밴드를 한 덕인지 나는 곳 리듬을 몸에 붙이는 일을 해냈다. 머릿속에서 '달나라닷' 하고 따라 하며 동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은 우리 커플? 팀?을 칭찬하곤 하셨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시연할 때 사람들이 누군가 '홍식이다.'라고 중얼거리고 킥킥 거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홍식이는 당시 히트 친 드라마 서울에 달에서 제비족으로 등장한 한석규가 맡은 역 이름이었다.



마지막 시간은 기말 평가를 위해 그동안 배운 모든 춤을 순서대로 추는 날이었다. 왈츠와 자이브, 그리고 룸바까지 추는 동안 나는 몇 번씩 생각을 뒤집어 구우며 망설이고 있었다. '아 한번 밖에서 만나자고 해볼까?'



내가 굽던 생각의 불판은 새까맣게 타버렸던 것 같다. 아무 일 없이 마지막 강의는 끝났고 나는 공교롭게도 2학기를 연달아 수강했던 (이전 수업은 에어로빅이었는데 남자가 2명이었다가 한 명이 탈주하는 바람에 기말에는 나 혼자 남아버렸고, 볼륨 댄스 수업에서 다시 만난 교수님께서는 "희권아 너 재미 들였지?"라고 놀리셨다.) 교수님께 인사를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문과대학 건물로 걸어가던 나는 갑자기 방향을 돌려서 다시 체대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근처를 둘러봐도 그 여학생을 찾을 수는 없었다.



두 번째 후회는 바로 이 사진의 동굴과 관련되어 있다. 석회암 절벽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휴양지 카프리 섬에는 블루 그로토라는 해상 동굴이 있다. 나는 첫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딱히 구체적인 목적 없이 이태리를 향했고, 로마 떼르미니 역 뒷골목 중국인 거리의 헌책방에서 산 Lonely Planet에서는 이곳을 꼭 가보라고 권하고 있었다.



항구에서 손님을 태운 조각배에는 중년의 뱃사공과 작은 노 하나밖에는 없었다. 블루 그로토 까지는 너무 멀어, 어찌할 것인가? 하고 보고 있는 순간 갑자기 배주인아저씨가 바빠졌다. 블루 그로토가 있는 곳으로 가는 여객선이 출발하자 잽싸게 그 곁으로 가더니 그 여객선의 난간에 로프를 묶는 것이었다.



제대로 계약이 된 것이라면 처음부터 묶고 시작할 건데,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 모종의 묵인과 드러나지 않은 계약이 있을 것 같았고, 이태리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스럽게, 도저히 인력으로서는 갈 수 없는 속도로 나아가는 조각배에서 맞는 바닷바람은 상쾌했다.



블루 그로토는 절벽에 난 작은 동굴이다. 너무 동굴이 작고 낮아 파도가 칠 때는 입구가 바닷속에 잠겨버린다. 파도가 왔다가 나가는 짧은 순간이 블루그로토로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이다. 동굴 천장에는 쇠사슬이 들여져 있고, 그 쇠사슬을 잡고 기다리던 배주인은 파도가 가라앉을 때, 하나 둘 하고는 억센 팔로 쇠사슬을 당겨 자기 배와 함께 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들어가자마자 왜 사람들이 반드시 여길 가야 한다고 하는지 깨달았다. 동굴 속은 어둡지 않았고,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석회암 절벽 이곳저곳에 뚫려 있는 구멍 때문에 햇볕이 바닷속에서 올라왔다. 바닷속에서 올라오는 햇볕은 하얀 동굴벽을 파랗게 물들였다. 그래서 블루 그로토 (Blue Groto. 파란 동굴)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빛은 바닷속에서 올라왔다. 저 안에서 헤엄을 치면 빛 속을 헤엄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헤엄을 금지한다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그게 위험하다는, 그러나 누구나 그걸 해보고 싶어 한다는 뜻이리라.


내 옆에 있었던 또래 젊은이들 중에는 망설이지 않고 그 빛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나는 옷을 제대로 입고 있고, 안경도 쓰고 있다. 또 망설이는 사이 시간이 지나갔고 우리는 다시 동굴 입구를 나와 카프리로 출발했다.



나는 다시 배를 타고 숙소인 소렌토를 행했다. 카프리, 소렌토, 폼페이 이 지역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별장들이 있던 지역이고 절벽 위에 건설된 소렌토의 아름다움에 비할만한 풍경은 세상에 많지 않다. 온통 하얀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절경인 카프리는 과거 로마시대에 그랬듯이 지금도 거부들과 셀럽들이 개인 요트를 끌고 절벽사이에 있는 프라이빗한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곳이다. 이런 곳을 여행하고 있으니 굳이 블루 그로토에서 금지된 헤엄을 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즐겁다고 생각했다.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지 생각해 보면,


어떤 일을 해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아서 하는 아쉬움이 더 큰 것 같다. 그러니 다음 생에 다시 그곳에 가게 되면 이번에는 그 푸른 바닷속으로 뛰어들도록 용기를 갖기를 기원한다. 어떤 식으로 건 서로의 끌림을 느낀 상대라면, 적어도 전화번호라도 물어보도록 하자. 상대가 내게 관심이 정말로 없다 해도, 예의 바르게 대하면 큰 폐가 아니고 쪽팔린다고 한 들 잠시뿐이다.



혹시 블루 그로토에 가게 될 젊은 벗이 있다면, 거기서 미리 빠른 속도로 옷을 벗고 바닷속에 뛰어들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금지된 일이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오히려 박수를 쳐준다.


그곳은 이태리고, 머리나 입이 아니라 마치 가슴에서 나오는 것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감정에 충실한 바보짓에 대해 우리보다 너그럽다. 나중에 팁을 조금 더 드리면 뱃사공 아저씨가 엄지손가락을 세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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