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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19. 2016

너의 찰나를 만든 것


  이모댁에 잠시 살며 이모 얼굴을 볼 때마다 우리 엄마랑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얼굴을 떠올려 본다. 기억 속의 외할머니 눈매나 얼굴 선이 엄마 얼굴에서도, 이모 얼굴에서도 보인다.


  새삼 나는 엄마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문득 나의 이야기는 나에게서 홀연히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우리 이야기는 어딘가 이렇게 닮은 모습을 한, 엄마에게서, 그리고 아빠에게서, 그 분들의 엄마 아빠에게서, 그보다도 훨씬 전부터 흘러 내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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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생기면 나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 이야기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를 지어 7남매를 키우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도, 소를 먹이는 시간동안은 책을 볼 수 있어 소를 데려 나가는 일을 가장 많이 했다는 아빠 이야기도, 엄마 아빠가 전셋방 몇 칸에서 시작해 우리 삼남매를, 그러니까 너희 엄마랑 외삼촌이랑 이모를 이렇게 길러내셨다는 이야기도. 전쟁을 피해 도망다니셨던 할머니대의 이야기나, 아름다웠던 엄마 아빠 고향이 모두 댐 속에 수몰된 이야기처럼 조금 아픈 이야기들도, 그 모든 게 있었기에 우리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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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우릴 닮은 아이들을 타고 흘러내려가고,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잊혀질 것이다. 내가 할머니의 할머니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듯 내 이야기도 흩어지고 희미해져 언젠가 더는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게 되는 날이 오겠지만, 나를 아주 조금이라도 닮은, 그러니까 내 엄마와 아빠도 아주 조금씩 닮은 그들이 여전히 살아서 우리 이야기를 이어 살아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한 눈에 알아보지는 못하더라도 어쩌면 날 닮아 유난히 갈색인 눈이나, 볼에 패인 보조개나, 옅은 쌍꺼풀 하나쯤은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것들 모두 나도 엄마나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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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설령, 아이가 자라서 짧은 것이 덧없다 한다면, 그러니까 지금 너의 찰나같은 삶을 만든 건 수없이 오랜 시간들을 타고 흘러 내려온 영원에 가까운 세월들이었다고 말해 주리라. 그 오랜 시간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이 겹치고 겹쳐, 도저히 서로가 아니면 안되었던 기막힌 우연들이 모두 한데 모여 찰나의 네가 살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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