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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28. 2017

Ep.1_여성임을 실감하기

타슈켄트


어느새 우즈베키스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나는 타슈켄트에 도착해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익숙한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3년 전 홀로 떠났던 첫 강릉 여행 이후로 몇 번을 혼자서도 여행길에 올랐던 나이지만, 여태 외로움을 안 타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다. 그 것에 익숙해지고 관조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면 배웠을까. 하지만 혼자의 여행에서 담을 수 있는 것들을 늘 사랑했기 때문에 스스로 택했던 만큼 후회는 없었다.


  입국심사 줄에서부터 느낀 우즈베키스탄의 첫인상은 약간의 걱정스러움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이미 바로 옆 나라 키르기스스탄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신부를 보쌈해 결혼을 하는 문화가 남아있다는 기사를 접했고, 우즈베키스탄도 만만치 않는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나라라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터이다. 특히 그런 분위기 속에서 혼자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는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는, 아니 아예 혼자서는 '절대' 가지 말라는 내용의 글들이 제법 보였기에 불안감은 더했다. 여성 문제에 민감하면서 늘 나의 이상향과는 거리가 먼 곳을 가고 싶어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경찰의 힘이 강한 나라고, 도시 곳곳에 경찰들이 있기 때문에 치안이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말에 조금 안심을 할 수는 있었지만, 가부장적 공기 속에서 겪는 불쾌한 경험들로부터 자유로우리란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그런 긴장 속에서, 한편으로는 괜찮으리라 마음을 달래기도 하면서, 입국심사대에 줄을 섰다.


  우연히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봉사를 하러 온 여성분 두 분을 만나 약간의 동질감을 느끼며 짧은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앞서 있던 남성 무리들이 우리를 보더니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길을 비켜주며 우리를 모두 앞줄로 보내주었다. 감사하고 고마울 호의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미 머릿속에는 인도에서 겪었던 익숙한 장면들이 스치며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잊어버리려고 애를 써도 온 세상이 나를 가리켜 '여성의 몸을 가진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단단히 옭아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던 기억들. 어느 기차역에서 표를 사려고 줄을 섰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들 사이에 껴 줄을 서 있다가, 역무원이 앞으로 불러 사무실 내에서 따로 표를 구해준 일이 떠올랐다. 검색대는 남녀가 나뉘어 있고, 거리에는 남성들만 가득했으며, 나는 남자 동행의 허락을 구하고 손을 잡아도 되는 대상이었다. 하나하나 나열하면 끝도 없을 이 경험들은 결국 여성으로서의 내 정체성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곰곰히 되짚어보기 시작하는 계기가 될 정도였으니, 내가 당시 매일같이 받았던 크고 작은 충격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정도였다. 지금 우즈베키스탄의 공항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은 처음 겪은 일이 온정적 가부장주의에 기반한 호의였음을 다행스럽게 여기자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애초에 내가 만들어 놓은 온실 속에서나 겨우 느낄 수 있는 종류의 편안함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여성의 몸을 가진', '짝이 없는', '혼자인' 여행자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불안감이 나의 여행을 구성하는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는 것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민감하지라도 않았으면, 차라리 몰랐더라면, 든든한 동행이 있었더라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차라리 안전하기로 소문난 곳이라면, 내가 만약 근육질의 키 크고 튼튼한 남성이었다면…… 따위의 생각을 아무리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들을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여행


  밤 공기는 좋았다. 아니 좋았다로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긴장은 잠시 접어두고, 향긋한 공기를 한 껏 들이쉰 다음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할 무렵 택시 기사는 불현듯 차를 멈췄다. 그러고는 나에게 환전을 요구했다. 시장에서 바꾸면 경찰이 잡아간다고, 택시에서는 안전하다며 내가 알고 온 환율보다 훨씬 적은 돈을 요구했다. 한사코 거부하다가 그럼 좀 적은 돈을 바꾸겠다고 말하자 그정도로는 부족하다며 훨씬 많은 돈을 바꾸길 요구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늦은 밤 혼자 택시를 탄(그러나 탈 수밖에 없었던) 이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인적은 드물었고, 내가 안전하다는 보장을 받을 수 있는지도 불확실했다. 강압적인 기사의 태도가 무서웠다. 울며 겨자먹기로 100달러를 일단 환전하고 나서야 택시에서 내릴 수 있었다. 마음을 더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도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은 친절했다. 친절한 스탭인 알리는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으며, 또 다른 스탭인 아잠은 자신의 일이라며 짐을 들어 방까지 안내해 주었다. 방을 드나드는 동안 왠지 나를 흘끗흘끗 쳐다보며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언어로 대화하며 키득거리는 사내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걱정되었지만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괜히 움츠러들어 긴장한 탓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실례잖아.


  아까 방을 안내해 주었던 스탭인 아잠에게 다음날 가고 싶었던 차르박 호수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어느새 친해진 우리는 서로 동갑인 것을 알게 되어 왠지 더 가까워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처음 그 냄새가 좋았던 밤공기를 마시며 같이 밤 산책을 하기도 했다. 향긋한 밤 냄새를 한 가득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이 공기를 마시려 여기 왔나봐. 혼자임에 불안하고 모순되는 욕망들에 괴로운 여행의 시작이었지만 그래도 여행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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