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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Mar 04. 2024

홍콩 : 빛과 어둠의 도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이질적인 공간

*해당 기록은 23년 10월 기준입니다.


홍콩에 다녀왔다.

내게 홍콩은 딱히 무언가 강렬한 이미지가 남아 있는 곳은 아니다. 우리 세대가 홍콩 영화 세대가 아닌 점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내 또래라면 으레 보았을 법한 홍콩 영화도 나는 보지 않았다. 시대를 풍미한 홍콩의 배우들도, 한 번쯤 흥얼거릴 법한 노래도 나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게 홍콩은 금융의 도시, 최근 들어 중국의 입김이 강해진 도시 정도였다. 구룡반도의 매우 낡은,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덧칠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홍콩에 대한 느낌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겠다.



그만큼 꼭 가야겠다 싶은 도시도 아니었다. 나에게 여행지를 고르라 한다면, 홍콩은 분명히 뒷 순위였다. 그런 내가 홍콩에 가게된 건 애인의 홍콩 마카오 일정에 발을 맞추기 위함이었고, 큰 기대 없이 떠난(물론 늘 그렇듯, 여행을 떠나며 여러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며 준비는 했다) 여행이었음이 사실이었다. 3박4일의 일정은 그리 길지 않기도 했지만, 때 마침 홍콩에 상륙한 태풍 탓에, 여행은 더더욱 제한적이었다. 특히 마지막 날은 애초에 호텔에 갇혀 있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 탓에 많은 걸 돌아보지는 못했고, 계획한 일들도 모두 어그러졌으나 홍콩에 대한 풍경은 여럿 남아 있다. 그건 아마도 홍콩의 풍경을 보며 '세상에 이런 곳은 홍콩 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겠다. 좁고 높은 도시, 새로움과 낡은 것이 섞여 있는 도시, 강렬한 색채보다는 콘크리트가 덮고 있는 도시, 긴 시간 자본이 쌓아온 빛과 그만큼의 그림자, 어둠이 섞인 도시, 밤이 되면 더욱 빛나는 도시. 



1. 빅토리아 피크


홍콩의 이미지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힐 곳은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보는 홍콩의 마천루가 아닐까. 첫 날 방문한 빅토리아 피크는 그동안 갔던 전망대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꽤나 옛날에 만들어져 군데군데 낡은 흔적이 보이는 점도 신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빅토리아 피크가 품고 있는 그 풍경이야 말로 가장 생경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이나 도쿄 모두 야경으로 나름 한 포인트를 가져갈 수 있는 도시지만, 홍콩의 빅토리아 피크는 아예 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바로 오밀조밀함이다. 



서울의 야경은 남산을 중심으로 한, 도시 전체를 전망하는 뷰가 대표적이고, 도쿄는 시부야 스카이에서 보는 넓은 도쿄나 스카이트리/도쿄 타워 등 메인 피사체를 중심으로 한 뷰가 대표적이겠으나 홍콩은 다른 곳에서라면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될 수많은 초고층 빌딩들이 '모여 있다'. 압도적인 자연이 인간의 건축물들에 비해서는 더 감동을 주기는 하겠으나, 수십 개의 마천루와 그 사이를 흐르는 바다를 보고 있자면 이 공간이 품은 수많은 인간의 역사와 모습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욕심과, 돈과, 사람과, 물건과, 역사와, 감정들이, 그 모든 것들을 긁어모은 삶들이 저 바다를 따라 넘실거렸을지, 저 빌딩들이 품고 있고 또 품지 못하는 그 수많은 삶들은 어떻게 이 도시를 만들고 또 유지시켜 왔는지. 이 거대한 도시를 움직여왔던 힘은 무엇이고, 그 힘의 결과물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름의 경건함이 든다. 사람은 적당히 많았고(메인 뷰는 시간을 기다리면 적당한 자리를 얻어낼 정도), 시스템은 적당히 편했으며, 굉장히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피크트램은 경이로웠다. 



빅토리아 피크를 트램으로 오르고, 내렸다. 여러 방법들을 검토해보고 결정한 것인데, 둘 다 트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떄 그 방향에 따라 도시를 조금 더 잘 조망할 수 있으니 자리를 잘 잡으면 사진 찍기에 유리하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최종 전망대와 트램 정류장을 오가는 길이 조금 헷갈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2. 센트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홍콩의 빛을 상징하는 공간은 센트럴이었다. 자본의 흔적이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곳. 높은 빌딩들과 수많은 쇼핑몰이 곳곳을 둘러싼 공간. 센트럴 IFC 몰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구경했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아라비카라거나, 전 세계의 식료품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시티슈퍼가 기억에 남는다. 특히 시티슈퍼는 일본 제품과 브랜드가 굉장히 많았는데, 홍콩 곳곳에서 일본의 소프트 파워를 확인했던 경험의 연장선이었다. 그래도 한국 제품도 꽤 많아서 으쓱하기도 했다.



센트럴을 방문한 건 주말이었는데, 말로만 들었던 모습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바로 홍콩에 일하는 동남아 출신 가정부들이다. 주로 필리핀 사람인데, 이들은 센트럴 인근의 수많은 자투리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누군가는 혼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싸온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법적으로 쉬는 날에는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센트럴의 다양한 공간에 몰려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센트럴은 어둠을 동시에 품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홍콩이 품은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셈이니까. 세계에서 손꼽힐만한 빌딩들과 쇼핑몰, 그 바로 옆을 메우고 있는 '갈 곳 없는' 가사 도우미들. 홍콩은 세계로부터 많은 자본을 품을 수 있었지만, 갈 곳 없는 이주노동자들을 품게 되기도 했다. 그들 사이를 걸으며 나라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은 자본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자본과 활력을 잃은 나라의 사람들은 자본과 활력이 있는 나라로 향한다. 홍콩은 그 좁은 땅에 꿈을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찾아온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필리핀은 무엇을 잃고, 홍콩은 무엇을 얻었을까.



센트럴에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까지는 걸어서 이동했다. 다른 지역에서보다 도시를 지나는 트램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홍콩은 개인 차량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도시였다. 2층 버스와 트램이 주로 차도를 다니고, 사람들은 전철과 버스, 트램에 몸을 싣는다. 높은 건물, 그 안에 담긴 강렬한 한자와 네온사인, 도로를 오가는 영국풍 2층 버스와 트램. 동서양이 뒤섞인 이 국제 도시만이 가진 색다른 풍경임에는 틀림이 없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그 풍경의 정점 중 하나였다. 깎아지른 듯한 도시, 그 좁은 길과 구불구불한 언덕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 그 안을 무심하게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 양 옆으로 펼쳐진 수많은 좁은 골목과 골목 어귀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보이는 수많은 아파트들까지. 출근 시간에는 윗 동네 고급 주택 지역에 사는 이들을 도시 중심으로 내려보내고, 그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을 다시 올려보내는 기나긴 에스컬레이터. 



3. 소호, PMQ



소호의 정확한 범위는 잘 모르겠으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와 할리우드 거리 인근을 거닐다 보면PMQ가 나온다. Police Married Quarter의 줄임말로, 처음 공립학교 부지로 활용되었던 공간이 기혼 경찰 숙소로 이어졌고, 현재는 예술가들을 위한 문화/실험의 공간이 됐다. 직각의 건물, 탁한 색깔, 낡은 모습으로 가득한 홍콩에서 PMQ는 조금 숨통을 트일만한 공간인데, 수직으로 높기보다는 수평으로 넓고, 조금 더 밝고 다양한 색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간 구석구석엔 예술가들의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공간에 있는 물건들이나 가게들이 모두 눈을 홀릴만한 것이었냐고 하면 개인적으로는 아니었다. 홍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감성임에는 틀림 없으나, 곳곳에서 예술가들이 모인 공간에 가면 느끼는 수준에서 엄청나게 진보해 있다고 하긴 어려웠다. 홍콩의 살인적인 물가 특성상 가격도 쉽지 않은 것들이 많기도 했고. 하지만 홍콩에서 이러한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PMQ는 그 가치를 충분히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관되기보다는 다양함을, 채우기보다는 비움을, 규칙보다는 어그러짐에서 우리는 때로 재미를 느끼고, 모든 것이 정렬된 홍콩 같은 도시에서는 그 매력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정상 오랜 시간을 있을 수는 없어서 빠르게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자리를 나섰다. 아래는 다양한 홍콩의 풍경들.


위에는 한자, 아래는 영어의 기묘한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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