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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스팟

이토록 소소하고 수다스러운 SF

by 아쉬타카
season-1.jpg © 닛폰 테레비


핫 스팟 (ホットスポット / THE HOT SPOT, 2025)

이토록 소소하고 수다스러운 SF


커다란 후지산 위에 더 거대한 U.F.O. 가 드리워져 있는 포스터. 거기에 우리말 제목으로 더해진 '우주인 출몰주의!'까지 더해져 닛폰 테레비의 일요드라마 '핫 스팟'은 또 어떤 SF드라마일지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무언가 결이 다르다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이치카와 미카고가 연기한 주인공 '엔도'의 내레이션으로 차분하게 풀어내는 일상은 언제 우주인과 SF가 등장하려나 기다렸던 것이 무색하게, 금세 이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에 스며들게 했다. 재밌는 건 그렇게 외계인은 미끼로만 활용한 작품이구나 오인할 때쯤, 본격적인 외계인의 이야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녹여낸다는 점이다. 이런 게 진짜 현실적인 외계인 SF드라마가 아닐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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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팎으로 좀처럼 웃을 일이 없는 요즘, 내 유일한 큭큭 거림의 소스가 바로 '핫 스팟'이다.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처음 좋아하게 되었던 이유를 이 작품을 보며 새삼 떠올렸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극적인 요소로 채워져 있는 작품들 사이에서 '이렇게 소소한 내용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일본 작품들을 여럿 접하게 되었고, 그 소소함과 저자극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됐다. 이 드라마는 거창한 우주선을 배경으로 한 포스터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지만, 사실은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아주 작은 관계 집단들의 제법 복잡한 이해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679F723B27E151738502715.jpeg © 닛폰 테레비


'핫 스팟'의 큰 두 가지 줄기(집단)를 꼽자면 하나는 주인공 엔도가 일하는 레이크 호텔을 배경으로 한 호텔직원들의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엔도의 절친한 친구 집단의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엔도와 친구 두 명, 이렇게 셋이서 동네의 익숙한 식당과 카페 등을 배경으로 벌이는 수다는 이 작품의 백미다. 이 수다가 흥미로운 건 단순히 소소한 것, 그러니까 소소하기만 해서 오히려 공허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함을 나누는 가운데 앞서 말한 것처럼 '큭큭' 댈만한 작은 재미들이 꾸준히 출몰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말 그대로 '절친'관계이지만 동시에 오묘하게 이기적인 관계라는 게 디테일이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데, 이해관계가 앞선 비즈니스적 관계는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위해 죽고 못 사는 의리까지도 느껴지지 않는, 진짜 묘한 이들의 이 관계설정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이 흥미로운 관계 속에서 나누는 대화들 역시 그렇기 때문에 깨알같이 재미있을 수 밖에는 없다. 별 것 아닌 일도 대단한 일이 되고, 외계인 같은 대단한 일도 아주 평범한 일상으로 빨아들여 버리는 이 친구들의 관계와 대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종일관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小鎮星熱點-the-hot-spot》04-750x500.jpg © 닛폰 테레비


호텔을 배경으로 한 직원들의 관계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특히 카쿠타 아키히로 배우가 연기하는 '타카하시' 캐릭터는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인데, 근래 본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마음이 쓰이는 캐릭터 중 한 명이다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임에도 가장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걸 왜일까). 이제는 타카하시의 얼굴만 봐도 '또 어떤 배려를 요구당할까?'싶은 생각에 웃음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극 중에 등장하는 배경은 대부분 실제로 존재하는 곳들이 많아 벌써부터 팬들 사이에서 성지순례 코스가 되고 있다. 나 역시 이미 2화쯤 감상했을 때 '이거다!' 싶어 성지순례 지도를 확인했을 정도인데, 언제쯤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레이크 호텔 앞과 호수 주변, 그리고 몽블랑 식당 앞을 서성거리며 혹시나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가져보며 말이다.


vs-netflix-11-219_49022348667b30f1ed0dff-1024x575.jpg © 닛폰 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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