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보았다.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감독의 말처럼 모든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자주 또 은연 중에 사용하는 말인데, 그동안 이 문장을 제목으로 한 영화가 없었다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어쩔수가없다'라는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 각자가 그럴 수 밖에는 없는 이유로 행동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사건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정말 어쩔 수가 없었겠네'라며 얼핏 인정하게 되지만 그 행동의 수단이 절대 인정받을 수 없는 살인으로 전개되는 순간 이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한 이야기가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연 만수(이병헌)는 어쩔 수가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영화는 비교적 초반에 노출한다. 만약 살인밖에는 방법이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묘사했다면 이후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이 이야기는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을 수 밖에는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하나의 자리를 놓고 두 명 혹은 세 명이 서로 다퉈야 하는 상황이 애초부터 아니었음을 드러내며 도덕적으로 해이해질 수 있는 비판으로부터 살짝 비켜간다.
보통 때처럼 영화를 보며 느낀 여러 감정과 인상에 대해 쭉 정리하려다 결국 포기했다. 그것보다는 단 한 시퀀스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이유로. <어쩔수가없다>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라면 아마 조용필의 너무나 유명한 곡 '고추잠자리'가 삽입된 시퀀스일 것이다 (평소 이 곡의 전주 부분을 너무 좋아하던 이로서 극장 사운드로, 그것도 큰 볼륨으로 이 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특히 더 좋았다). 이 시퀀스의 의도는 명확하다. 극 중 만수(이병헌)와 구범모(이성민) 그리고 그의 아내 이아라(염혜란) 이 세 사람이 각자의 이유로 부딪히게 되는데, 만수는 자신보다 앞서 있다고 판단되는 경력자 범모를 제거하려 하고 범모는 만수가 자신의 아내와 바람이 난 후배연극배우로 오해하고 있으며, 아라는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려는 남자를 발견하고 공격하려던 중 남편이 자신의 바람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순간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 이전 장면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만수는 제거하려던 범모를 염탐하는 과정 중 펄프맨으로서의 범모의 자부심과 삶 그리고 실직으로 인해 아내와 겪는 부부생활의 위기까지 여러모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후 두 번째로 제거하게 되는 고시조(차승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범모에게서 앞선 언급한 동질감을 느꼈다면 시조에게는 딸과의 어려운 관계에 대해 동질감을 느낀다.
즉, 다시 말하면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두 사람을 제거하는 과정은 결국 만수 본인의 일부분을 살해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주저하지만 만수는 스스로가 결정한(오해한) 규칙으로 인해 '어쩔 수가 없다'며 이들을 살해한다. 나중에 결국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최선출(박희순)의 살해과정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선출의 모습(하지만 실상은 홀로 남아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은 아마도 미래의 만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점점 인간적으로 각박해지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 자신 만의 어쩔 수 없음을 들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한 인간의 비극의 관한 것이다.
고추잠자리 시퀀스에 대해 이야기하려다가 너무 확장되어 버렸는데, 다시 본래 하고 싶은 이야기로 돌아온다. 이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백미이자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이 가장 도드라진 장면이다. 극 중 인물들은 각자 비극에 놓여있지만 이걸 전지적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관객은 인물들의 오해가 만든 일종의 '웃픈'상황을 보며 말 그대로 웃지만 뒷맛은 씁쓸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이번엔 좀 달랐다. 이 시퀀스는 그렇게 보라고 만들어졌고 실제로도 많은 관객들이 웃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 장면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건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범모의 절규가 너무 절절했기 때문이었다. 블랙코미디를 뚫고 나오는 범모의 슬픔과 고통, 후회 등 모든 감정이 120% 전달되어, 세 사람의 입장이 고루 이해되며 제법 웃겨야 하는 이 시퀀스가 오로지 범모의 감정들로 채워졌다.
그러면서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슷한 사회적 문제를 장르적으로 다룬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나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기생충'은 여러 모로 인상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좋은 영화지만 나는 불편함이 더 큰 작품이기도 했다. 가난을 다루는 방식을 장르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긴 했지만 감정적으로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싶은 생각에 장르적 장점으로 받아들여지기 이전에 감정의 동요가 더 컸다.
그런 비슷한 느낌을 이번 영화의 고추잠자리 시퀀스에서도 느꼈다. 이렇게 가해자가 주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피해자들 간에 서로 다투는 을과 을의 싸움 이야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새삼 실감했다. 더불어 삶의 무게를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이런 이야기를 점점 더 장르적으로 보기 힘든 것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실제 삶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다투고 고통을 겪게 되는 일은 강자나 가해자와 싸우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 약자끼리, 피해자끼리 싸우게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런 진짜 같은 이야기를 점점 더 코미디로 소비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분명 비극이다.